콜드 스틸 읽고 후닥닥 써보는 분석글.


저번 글은 읽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지만, 아주 살짝 이번 글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코르부스 개인스의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가 될 수준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걱정된다면 이야기를 읽고 오시길 바랍니다. 





오스만 치하 발칸


사실 발칸이라는 말은 오스만 침략 이전 까지 쓰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발칸이라는 말이 터키어로 '산악 지대' 거든.  그러니까 자기 나라의 '산 많은 반도' 정도 되는 어감이 발칸 반도인거지. 



그냥 척 봐도 산맥으로 빽빽하다. 

 


오스만 치하의 발칸에 대해 아주 가볍게만 알아보자면 중요 키워드는 이거다 다종교성. 


이슬람교는 일단 경전상으로는 '성서의 백성들' 그러니까 유대교랑 기독교에 대한 관용이 있다. 그 관용이라는게 "이교도는 죽이지는 말고 세금 더 걷어라"기는 한데. 


아무튼 경전에서 허용한 세금 두 배 이벤트를 놓치고 싶은 지도자는 없었다. 그런 고로 술탄은 고작 세금 내기 싫다고 위대한 가르침에 기웃거리는 나이롱 신자들을 열심히 걸러가며 기독교인에게 세금을 열심히 거뒀다. 



거기에 종교는 이 시대에 행정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했는데, 들어봤을런지도 모르겠지만, 기독교고 이슬람이고 현대 국가라면 동사무소에서 해야 할 일을 얘들이 자체적으로 다 하고 있었거든.


기독교만 해도 태어나자마자 세례 줘야하니 출생신고 받고, 결혼하면 또 축복해줘야하니 결혼 신고 받고, 노인들 죽을 때 천국가라고 빌어주니 사망신고 받고, 또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해야하니 복지도 해주고, 진짜 리틀 동사무소가 교회였다.


이건 동유럽이라고 예외도 아니고, 따라서 오스만도 그냥 종교인들 관할 구역을 그대로 행정구역으로 만들어서 자기들이 꾸려가도록 했는데 이게 바로 "밀레트" 제도다. 


그러니까 마을 이장님이 이슬람 동네면 이맘이고, 교회 동네면 주교님이고 그런거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이렇게 발칸에 이슬람 동네, 정교회 동네, 가톨릭 동네가 마을 마을 세워진거지.



이번 이벤스에서 고증된 밀레트 제도. 


허나 밀레트 제도는 훗날 오스만이 갈라지기 시작하자, 그 자체로 문제가 되었는데, 각 민족들이 서로 엉켜 살다 보니 각 국가들이 서로 "우리 민족이 저 땅에 있다"고 주장하는 명분이 되어버렸기 때문. 


그리고 그 말은 둘 다 맞았다. 그 땅에는 아마 높은 확률로 두 민족 모두가 살고 있었을 테니까. 


허나 아직은 먼 이야기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유럽의 환자




오스만이 영원할 것 같은 성세를 잃어버리기 전 까지는 말이지. 조선이 삼정 문란으로 개판 오분전이 되는 시기, 정확히 같은 꼬라지가 오스만에 펼쳐지고 있었다.


세금이 착취가 되고, 착취 피해서 사람들은 유민이 되거나 산적으로 변신하고, 주민이 도망가니 남아있는 농민들을 더 강하게 착취하고, 그러니까 도망가서 산적 되고...


온 발칸이 도적으로 들끓었는데, 이 도적에는 물론 윗대가리도 포함이었다. 나라 꼬라지가 정상이 아니었다. 


"못 살겠다 엎어보자!" 라는 목 소리가 온 나라에 들끓었는데, 문제는 오스만이 다민족 국가라는 점이었다. 따라서 지식인들의 생각은 바로 이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우리 민족이 독립해야 정상 국가를 세울 수 있을거야."



할 수 있다 나라면!


망해가는 나라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루아녹스는 자연 발병이나 다름 없어서 오스만에도 여럿 있었다. 


특히 진짜로 권력있는 지방관들은 마음만 먹어버리면 그대로 루아녹스로 변신하고 있었는데, 오스만 나라 꼬라지가 박살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야심가들 때려잡느라고 돈이 없어서 그랬다. 



루아녹스 대표, 이집트의 무함마드 알리. 


특히 이집트에서 독립한 무함마드 알리는 교과서에서 한 번 씩 짚고 넘어가니까 다들 알겠지. 근데 이집트에서만 이런 독립 시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당연히 발칸에도 들끓었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고를 친 녀석이 이름하야 알리 파샤다. 



알리 파샤의 존안.


알바니아 지역의 총독인 알리 파샤의 독립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문제는 이 작자가 독립을 하겠다고 그리스 독립 운동을 부추기고 말았거든. 


알리 파샤는 양동 작전을 생각했고, 실제로 거의 성공할 뻔 했지만, 알리 파샤가 전쟁 와중에 계략에 모살당하면서 알리 파샤는 그리스 독립 운동을 위해 일종의 탱킹을 해준 꼬라지만 되었다. 



파이 가르기


오스만이 민병대와 총독들의 반란으로 쪼개지기 시작하자, 이를 열강들이 절대로 가만 둘 리가 없었다. 특히 그리스 반란이 결정타였다. 


유럽 열강들은 '튀르크의 유럽'에 개입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고, "각 민족들의 독립"을 명분으로 오스만을 하나씩 잘라먹어갔다.


특히 오스만의 숙적인 러시아가 아주 적극적으로 오스만을 갈라먹으려고 시도 했다.


열강은 그리스 독립 전쟁에 뛰어들었고, 긴 전쟁 끝에, 그리스는 독립국이, 세르비아는 자치권을, 왈라키아는 반쯤 독립국이 되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후로 러시아는 오스만을 수시로 두들기며 세르비아와 왈라키아에서 '사실상'이란 단어를 치워버려 독립국을 건설했고, 불가리아 지역도 반 독립국을 만들어줬다.


오스트리아도 여기에 한 손 거들어서, 보스니아 지역을 오스만에게 뜯어내 꿀꺽했고. 





한 조각이라도 더!


가를 때는 다 좋았다. 그런데 막상 서로 가르고 나니까, 그 자체가 갈등의 시작이었다. 


영국은 그리스를 차지한 것은 좋았지만, 러시아의 지나친 팽창은 두려워했다. 오스트리아도 자기 국경 근처에서 러시아 영향력이 늘어나는 게 반갑지 않았다. 


그렇기에 둘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 러시아가 뜯어낸 영토들을 도로 오스만에게 되돌려줬다. 그리고 그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이번엔 또 신생국들이 난장을 쳤다.


그야 되돌려준 영토들이 자기 고토였으니까. 또 오스만 치하에 남게 된 소수민족 지식인들도, 원래 땅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강대국들이 파이를 가르고도 신생국들은


오스만과 수시로 영토 분쟁을 벌이기 시작했지. 




콜드스틸




콜드스틸의 배경은 8월의 크레셰보 전투다. 그런데, 8월이라는 시기나 작중에 언급된 트리키아라는 말을 보면 아마 이 전투의 모티브는  1903년 일린덴 봉기의 크루세보라고 생각한다. 


오스만 영토에 남아있던, 마케도니아와 트리키아 지역은 독립을 쟁취하고자 이 지역에서 일제히 봉기를 벌였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반란군은 크루셰보를 점령해 열흘간 자치 정부를 세웠지만 오스만의 군화에 짓밟혔다. 


봉기의 지도부들은 유럽 국가들의 개입을 기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일부 파벌은 불가리아에 손을 벌렸지만, 유럽 강대국은 오히려 불가리아 정부의 개입을 차단하고, 오스만에게 봉기 진압을 주문하고 있었다. 


결국 봉기는 실패로 돌아갔고, 얻어낸 건 "오스만은 기독교인의 처우를 개선하고, 불가리아는 게릴라를 더이상 지원하지 않는 대신 봉기 지도부를 모두 석방한다"는 조건이었다. 


물론 조약은 곧바로 휴지조각이 되었다. 


강대국들의 세력 균형 정치와 발칸 소국들의 충돌은 이 봉기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1차 발칸 전쟁


발칸 소국들은 결국 오스만을 완전히 끝장 낼 기회를 잡아버리고 말았다. 1911년 오스만은 이탈리아와 전쟁을 하느라 국력을 또 왕창 소진해버렸고, 발칸의 소국들은 이 기회가 오스만을 발칸에서 완전히 몰아낼 기회라고 여겼다. 


불가리아, 세르비아, 그리스, 몬테네그로는 고토 수복을 위해서 1912년 전쟁을 시작하고 오스만 유럽을 완전히 몰아내고 오스만이 가지고 있던 '고토'들을 수복하는데 완벽히 성공했다.





2차 발칸 전쟁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렇지만 발칸의 세력정치는 늘 그랬듯 또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세르비아는 이전부터 보스니아 지역의 소유권으로 오스트리아랑 갈등을 빚고 있었고, 성가신 세르비아가 더 세력을 가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르비아를 압박해 알바니아 지역을 뚝 떼어내었다.



불가리아는 트리키아와 마케도니아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는데, 1차 발칸 전쟁에서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된 건 그리스와 세르비아였다. 세르비아와 그리스는 '피 흘려 얻은 영토'의 반환을 거부했고, 불가리아는 격노하며 어제의 동지에게 전쟁을 선포하니 이것이 2차 발칸 전쟁이었다. 


불가리아-세르비아-그리스 3중 연합을 통해 오스트리아를 견제하고자 했던 러시아는 전쟁 발발을 막아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되려 러시아가 독립시켜준 루마니아(왈라키아)도 영토를 탐내며 이 전쟁에 끼어들어 불가리아에게 선전 포고 했고, 오스만도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고자 반 불가리아 연합에 뛰어드니 다시 발칸에 혼돈이 찾아왔다.



그리고 한 밤의 기적소리가 바로 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거지. 






마무리하며-혈통으로 저주받은 땅?



발칸의 역사는 일견 보기에 민족 갈등으로 점철된 듯 보인다. 


허나, 정녕 그런가? 


물론 그들은 민족을 입에 담아가며 전쟁을 치뤘다. 허나 그곳에는 민족만 존재하지 않았다. 


발칸에서의 전쟁은 강대국들의 세력 정치의 일환이었다. 그들에게는 민족은 일종의 미명에 불과했다. 


발칸 소국에게 있어서 고토는 정말 중요했을 것이다, 허나 그 이면에는 강대국들의 세력 정치에서 자신의 몫을 확보하고자 하는 야심이 존재했을 것이다. 


발칸의 민족들은 서로를 종교로 구분했고, 민족들을 나누는 기준은 결국 종교였다. 무슬림은 터키인이 되었고, 정교회를 믿으면 그리스인이었으니까. 어쩌면 발칸 전쟁은 종교 전쟁이었다.


그리고 발칸의 민중들이 진정으로 "새 나라"에 동조한 이유는 그 어떤 미명보다도, 새 나라에서는 삶이 나아질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민족보다 더 중요했을지 모른다. 


발칸은 정녕 민족으로 저주받은 땅인가?



작중에서는 그 대답을 명확하게 거부한다. 


그런 의미에서 피로스가 비추는 것은 단지 저주받은 혈통 뿐 만이 아니다. "그 모든 분쟁을 피로써 환원하는 것의 무의미함"을 피로스를 통해 비추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흐르는 피를 멈출 수 있는 것을 코르부스를 통해 강변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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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다....


아니 이게 원래는 발칸 전쟁만 가볍게 다룰까 했는데, 쓰다보니까 이게 절대 가벼워지지가 않아.


긴 글 읽느라 고생했고, 이 글이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즐기는 계기가 되었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