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ㅍ) 주의

3.2 결말부 IF (집착, 피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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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펠리시엔느는 아델의 몸 밖, 거친 폭풍우 속으로 내쳐졌다.

이대로 폭풍우를 맞이한다면 그녀가 진정한 죽음을 맞이할 것은 자명했다.

펠리시엔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의 그녀는 입조차 열 수 없을지 도 몰랐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아델은 그 모습을 처음 봤다. 익숙한 오만한 표정이 사라진 것도 알 았다.

짜증, 피로, 갈 곳을 잃은 분노가 덮쳐왔다. 그리고 남은 것은 힘없는 애원의 목소리뿐이었다.

"아델..."

그 순간, 아델은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잘못했어.... 아델..."

자신이 펠리시엔느를 원망하는지조차 불확실했지만, 저렇게 굴복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은 뚜렷했다.

펠리시엔느의 가장 연약한 밑바닥.

이 광경을 볼 자격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있었다.



***



묵묵부답인 아델이 유일한 동아줄이라도 된다는 듯, 펠리시엔느는 절.박하게 아델의 발목에 매달렸다.

먼지 투성이의 더러운 신발. 평소의 펠리시엔느라면 만지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 비참함을 느낄 겨를 따위는 없었다. 혹여라도 아델이 뿌리칠까 봐, 펠리시엔느는 아델의 오른쪽 다리를 꼬옥 감싸 안았다.

긍지 높은 바롱 가문의 여식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굴한 행태였다.

"응..? 아델...? 제발..."

"……."

"……제발 아델, 난 죽고 싶지 않아……."

아델의 침묵을 거절로 받아들인 펠리시엔느는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아델은 그저 그 달콤한 애원을 더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늘 당당했던 목소리가 가여운 흐느낌으로 변하고,

표독할 정도로 콧대 높았던 표정 대신 엉망이 된 얼굴로 울먹이는 모습,

심지어 두려움에 떨리는 펠리시엔느의 어깨까지.

그 모든 것이 새로운 자극이었다.

"아델..."

자신을 찾는 그 비굴한 목소리가 너무나도 애틋하게 들려서, 아델은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만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빌게...."

"흐음~"

"네가 원하는 게 뭐든 다 해줄게... 제발 살려줘, 아델."

"뭐든?"

아델의 감상을 끝낸 것은 펠리시엔느의 입에서 나온 '뭐든'이라는 단어였다.

궁지에 몰린 사람은 으레 무의미한 공수표를 남발하기 마련이다. 베릴 부아닉이 펠리시엔느를 무시하고 떠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델은 펠리시엔느가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 오로지 그녀만이 들어줄 수 있는 소망이 있음을 깨달았다.

"응, 응! 뭐든 해줄게...!"

이윽고 아델의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에 펠리시엔느는 희망에 부풀기 시작했다. 아델은 그런 모습조차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게 뭐야 아델? 돈? 보석? 부동산?"

그깟 가격표 붙은 사물 따위를 바랄 리가 없는데.

펠리시엔느는 아델을 잘 몰랐다. 사실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였을 때는 알 필요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교육'할 내용이 많겠구나, 라고 아델은 생각했다.

"원하는 게 뭐든 내가 다 가져다줄게...!"

"펠리시엔느 바롱."

"어?"

"내가 유일하게 바라는 건 단 하나, 펠리시엔느 바로 너야."

아델 자신이 원하는 것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펠리시엔느 바롱의 전부였다.



***



펠리시엔느가 아델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 대명문가 출신답게, 아델의 요구가 갖는 저속한 의미를 단번에 이해했다.

"나를 원한다고....? 내가 몰락한 가문의 계집애들마냥, 팔릴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응 맞아. 제대로 이해했어, 역시 펠리시엔느야."

"내가 우스워...?"

"아니, 사랑스러워."

펠리시엔느는 느닷없는 아델의 고백에 경악했다.

본래 펠리시엔느도 아델에게 호감이 있었다. 이쁘장한 얼굴과 쾌활한 목소리. 패션 센스는 영 모자라지만 아델이 매력적인 여성임은 틀림없었다. 아델을 자신이 부활할 육체로 선택한 배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이 고백은 기만이자 모멸이었다.

자신이 아끼는 드레스는 넝마가 되었고, 본인은 그보다도 비참하게 한낱 운전기사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평소의 기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을 전리품 따위로 취급하다니, 펠리시엔느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사랑?"

"……."

"감히 너 따위가?"

"……."

"내가 누군지 기억하고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는 거야?"

"나는 번개의 사제, 태양왕의 총신, 안내자의 충실한-"

"그래서?"

분노에 찬 펠리시엔느의 열변을 끊은 것은 아델의 무미건조한 한마디였다. 분에 못 이긴 펠리시엔느는 따지고자 아델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를 마주 보았을 때, 비로소 펠리시엔느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살고 싶지 않아?"

"아... 아니...."

관계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아델은 승리자였고 펠리시엔느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펠리시엔느 말마따나, 스스로가 아델의 '전리품'이었다.

"그렇지? 그러면 나에게 할 말이 있지 않아?"

"...어떤 거?"

"펠리시엔느도 참~. 나에게도 대답을 들려줘야지."

패배자인 자신을 취할 거면서, 고백에 대한 대답까지 요구했다. 아델의 상기된 얼굴이 더없이 뻔뻔하게 느껴졌다.

"윽..."

펠리시엔느는 자존심 때문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비굴함은 자신이 평생 추구한 바가 절대 아니었다.

아델은 그런 알량한 자존심조차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으나, '교육'을 위해서는 티를 내지 않기로 했다.

"그게 네 대답이야?"

"...."

"알았어. 그러면 잘 있어."

아델은 펠리시엔느의 손을 걷어내고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전투로 탈진한 펠리시엔느는 아델을 붙잡지도, 따라잡을 수도 없었다. 멀어지는 뒷모습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아, 아델 어디 가!"

"……."

"아델!!!"

"……."

"당장 돌아오라고!"

아델의 발소리가 희미해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펠리시엔느는 외칠 수 있었다.

"사랑해..."

아델에게는 결실의 순간이었다.

황홀한 표정을 갈무리할 겸, 짐짓 못 들은 척 아델이 돌아오지 않자 펠리시엔느는 다시 한번 악을 써서 소리쳤다.

"사랑한다고! 아델...!"

그제야 아델은 펠리시엔느에게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최후의 기력까지 쏟아낸 펠리시엔느는 땅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가만히 가까워지는 아델의 모습을 지켜봤다.

펠리시엔느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아델은 펠리시엔느의 가녀린 손을 잡고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생존했다는 안도감 혹은 따스한 아델의 체온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아델이 주는 다정함이 나쁘지 않다고 펠리시엔느는 생각했다.

"아델 빨리... 구해줘..."

"그전에 잠깐,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어."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아델이 답했다.

"...어떤 게?"

"잘 생각해봐, 펠리."

마지막 관문이었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초조함이 차오르기 시작한 펠리시엔느는 필사적으로 아델이 원하는 답을 주고자 했으나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사랑한다는 거 말고..?"

"응. 비슷한데 조금 달라!"

"살려줘서 고마워?"

"아니야"

"셀리아 일은 미안해... 진심으로 사죄할게..."

"아니야 아니야."

아델이 변심하기 전에 답을 찾아야 했으나 펠리시엔느는 오답을 남발했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아델의 입술에서 정답을 찾을 때까지.

"사랑...해줘?"

"그래, 맞아!"

"나를 사랑해줘, 아델..."

"응응, 그거야 펠리시엔느!"

환희에 찬 아델은 펠리시엔느의 뒷머리를 받치고는 욕망에 찬 키스를 퍼부었다. 펠리시엔느의 허약한 상태에 대한 염려는 전혀 없었다.

"읍, 아델, 잠깐만..."

마카롱보다도 달콤한 키스였다.

동시에 환자에 대한 배려심은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최악의 키스였다.

"콜록콜록... 하아..."

토닥토닥.
숨 가쁜 펠리시엔느를 품에 안은 아델은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소망했다.

"명심해 펠리시엔느. 내가 사랑해줘서 우리의 관계가, 그리고 너의 존재가 유지되는 거라는 걸."

"응 고마워... 사랑해줘서."

아델의 선언은 평소의 펠리시엔느보다도 오만했으나, 그녀에게는 그런 것은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아델의 품속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마침내 펠리시엔느는 아델의 품 안, 고요한 지옥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