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말, 7장 스토리를 읽고 릾뽕에 취해있던 나는 별 생각없이 중섭 스토리 관련 주저리 글(스포주의 없었음)에 들어갔었어.


뭔 내용인지도 잘 기억이 안나는데, 거기 댓글이 하나 달려있었어. "소네트 재건의 손에 들어가서 배신한게 어쩌구저쩌구..."


나는 그걸 보고 새파랗게 질렸고, 곧장 뒤로가기 버튼을 연타했지만 머릿 속에는 이미 재건의 손 복장을 깔롱하게 맞춰입은 소네트의 신규 일러스트까지 그려지고 말았지.


심란한 그 순간 나는 또다른 이야기가 떠올랐어.


캐릭터 2통찰 일러스트가 그 캐릭터의 본질, 영혼을 나타낸다는 가설이었지. 그리고, 그 가설에는 한가지 이야기가 더 붙어있었어.


소네트의 2통찰 일러스트가 없다는 것.


나는 그걸 떠올린 순간 뇌의 스토리 작가가 미친듯한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지.



 소네트, 그녀는 계속해서 나아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자신에 대한 의문을 품었어.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던 그는 자기 자신의 처지가 그저 목줄 채워진 한 마리 충견에 불과하단 걸 여실히 느끼고 있었지. 


 그녀의 앞에 나타난 가슴 큰 레즈 포식자이자, 재건의 손의 선지자인 아르카나는 달콤한 제안을 해왔어. 노력해온 타임키퍼의 비서인 그녀의 행적에 대한 보상이자, 그녀가 가장 바라는 한 가지 소원을 이룰 힘을 주겠다고. 


 한 마리의 충견으로 남을지, 아니면 타임키퍼의 곁에 선 사랑받는 하나의 여성이 될 것인지를 소네트는 고민했어.


 그리고 선택했지.


 재건의 손에 들어간 소네트는 버틴과 대적하게 되었고. 확신, 분명한 믿음이자 목표를 갖게 된 그녀는 지금껏 보여주었던 기량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어. 이어지는 몇 줄의 소네트는 마법으로 이뤄진 가시나무를 거둬냈고, 로큰롤 해적의 광학 마법 또한 그 빛을 발휘하지 못했어. 몇번의 합 끝에 밀려난 것은 그들이었지.


 궁지에 몰린 타임키퍼 소대 앞으로, 소네트는 마지막 구절을 읊기 시작했고, 가벼운 모습은 온대간대 없이 처절해진 발걸음으로 달려든 레굴루스는 타임키퍼를 대신해 마도술을 맞아 하나의 석상이 되어버렸어. 그래, 익숙한 그 마도술이었어. 버틴의 잊을 수 없던 그 어린 날에도 함께 했었던 그 마도술. 


 끝내 그녀를 따라나서지 못했던 한 겁쟁이 소녀가 쏘아냈던 마법. 다시금 적중한 그 마법이 빗자루에 몸을 맡긴 마녀를 돌로 굳혔어.


 타임키퍼의 눈가에서 떨어진 그것을 마주한 소네트의 얼어붙은 마음은 요동쳐. 재건의 손에 대한, 선지자에 대한, 그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고, 눈에 보이는건 차가운 돌로 변해버린 레굴루스와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재단의 직원, 마틸다. 그녀는 울음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어. 떨리는 손으로는 지팡이를 쥐고 자신을 겨누고 있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에 밟힌 것은, 주저앉아 절망한 타임키퍼와 손에 들려있는 푸른 잉크로 가득찬 유리 펜 뿐이었어.


 마지막 전투를 처절했고, 마침내 주저앉은 소네트에게 버틴은 천천히 다가왔어. 소네트는 배신자에게 어울리는 끔찍한 최후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고, 기대와는 달리 차갑게 식은 입술에 따뜻한 무언가가 포개져 왔지. 그 감각과 함께 그의 기억은 끊겼어.


 일어난 곳은 익숙한 곳이었어. 소독약 냄새와 거즈냄새가 코를 찌르는 곳, 한때 깊게 잠든 회색머리 여인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그곳. 따뜻하게 데워진 이불을 움켜쥐고 주위를 둘러봤어. 마주친 회색 눈동자에 따뜻한 빗방울이 맺혔고, 곧이어 온 몸에 무게가 덥쳐져 왔지. 소네트는 길게 울었어. 자신의 선택과 잘못된 믿음에 대한 사죄의 눈물이었지. 울음으로 순결을 증명해낸 순간이었어.


 수십번의 해가 뜨고 지고, 마침내 그녀의 타임키퍼 소대 복귀 날이 왔어. 새로 맞춘 복장은 어색했지만, 타임키퍼와 레굴루스의 강한 지지발언으로 용기를 내보려 노력했지. 거울을 보며 몸을 이리저리 돌려 옷매무새를 정리했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어. 차가운 초겨울의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주었지. 문을 열고 첫 걸음을 내딛으며 그녀는 이제는 흔들리지 않겠다 다짐했어.


그렇게 6성 지능영감 서포터 타임키퍼 소대 소네트가 출시한다는 망상까지 떠올렸을 때, 나는 눈물을 짓고 말았지.


그리고 그 화근이 된 중섭 스토리가 한섭에 도착했을 때 깨달았어. 개같이도 속았구나.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