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한 손가락이 코르셋을 쓰다듬는다. 그저 희고 옅은 흰색의 장갑을 낀, 그 순수한 날갯짓에 이졸데는 그 시선을 빼앗겼다.
“선생님, 그 코르셋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이졸데와 다르게 순수한 눈망울을 조용히 가리는 안경 너머로, 카카니아는 그녀 자신의 시선을 이졸데의 시선과 직선으로 겹쳤다.
“하하, 아니요. 그냥 신기하다, 싶어서요.”
신기하다. 무엇을 그리 일컫는 것 일까. 나비 고치처럼 단단한 코르셋은 나비에게 필요가 없다. 고치란- 애벌레에게 필요한 것. 그러나 그녀는 이미 나비 성충이 되었음에도 고치와 해체되지 못한체 융합하여 어제도, 어저께도 그 답답한 합일을 이루었다.
‘그런데 어째서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신걸까. 신기하다니, 어째서? 선생님도 우화스럽게 분리되지 못한 저를, 융합의 상징인 저를 비웃는걸까요.’
어서 선생님께서 다음 단어를 이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오렌지가 굴러떨어져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풍기고, 그걸 모방한 카벙클이 오랜지 카벙클로 의태하듯, 이졸데는 그녀 스스로를 탈피하고 카카니아의 몸짓과 손짓, 그리고 그 아름다운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하나씩 새기어 그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거셌다.
사랑이란, 다른사람의 욕망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라던가. 그 말이 맞다면 그것은 이졸데에게 어울리는 말이였다. 그녀는 카카니아의 말 하나하나에 좌지우지되는 것이였다.
“… 힘들겠다 싶어서요.”
축 처진 눈썹, 안쓰럽다는 눈빛, 이내 스르륵, 가슴부근에서 치맛단 부분으로 내려가는 그녀의 흰 검지. 내쉬는 한숨. 들이쉬는 위로. 스스로의 우악스러움과 정 반대로 우아함의 극치인 그녀의 모든 것을 눈과 코와 피부로 느낀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서마저 그녀의 광채는 나오고 있었다.
“…힘들…지 않아요. 저는 배우고, 또 세상이라는 무대에 서야하는 저는, 이 틀을 받아들였어요.”
“틀이라니, 그럼 더욱 힘들잖아요. 이거, 엄청 갑갑하지 않아요?”
“세상이 창살이라면 무대는 짚단, 집단이 바라보는 저를 가두는 코르셋의 무대의상은 동물의 표피, 그 안의 저는 심장. 아아, 저는 그러니 4중의 그림과 비슷한 거에요. 물감과 유약과 캔버스와 유리에 가로막힌 양피지. 그게 저랍니다. 선생님…”
...그리고 그걸 봐주는 건 선생님이시죠. 라며, 이졸데는 스스로 생각했다.
더 이상 박아서 움직이지 못하는 나비와 같은 처지, 그것이 이졸데이다. 어쩌다 간혹, 먼지라도 앉으면 솔로 털어짐당하는, 그런 슬픈 처지. 처져가는 못을 바로새우기 위해 달구고 망치로 두들겨 어떻게 해서든 무대에 세워버리는 그들에게 가로막힌 그녀. 이졸데.
“하지만 저는 그림은 영 잘 모르겠어서요.”
“…농담도 잘하시네요 선생님. 선생님은 서클의 설립자이시고, 테오필처럼 교양이 있으시잖아요.”
“하하, 과찬이에요 이졸데. 저는 그저 그림은 답답하다고 느끼거든요. 최근 해체주의라는걸 보았어요.”
그녀는 곧 이어서,
“외부에서 바라본게 꼭 옳지만은 않지 않을까요? 우리는 결국 우리모두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니까요. 스스로 정의한게 스스로를 잘 나타낸다고 생각해요. 최근 샤갈이라는 화가의 그림을 본적 있는데, 꽤나 인상깊더라고요. 파리의 사람인데…”
외부에서 바라본게 옳지 않다니. 그럼 무대의 관객은 왜 있으며, 자신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먼지만 쌓여가는 표본이란 말인가. 선생님은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걸까.
“…궁극적으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유리를 깨고 나와야한다. 사각틀에서 나와야한다. 그것이 곧 앞으로의 미술이라고요. 이졸데도 그래요. 이 상담시간에 꼭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관객이나 빈의 다른 사람들은 잊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마치 밤에 휩싸인 그림자처럼, 저는 이졸데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면 좋겠어요.”
이졸데는 두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마도술에 걸린건가? 무엇을 말씀하신거지? 하지만, 미처 그 의문이 채 가시기 전-
“유화에 페인트를 뿌려버리죠. 아님 유리를 깨보는건 어때요? 대리석 석고상을 부수고, 음악을 망쳐요. 옥타브를 잊어버리고, 옷을 불태우죠. 이졸데는 나비나, 나비가 되기전의 애벌레도 아닌,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하늘을 날고 갈라버리는 한마리의 새이니까요… 음… 그래요. 앵무새는 어때요? 초록색 앵무새라고 생각해봐요.”
…새라니. 그것도 앵무새? 별안간 이졸데는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은 고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비, 박제되어 몇 겹씩 봉인된 나비라고 생각했는데 앵무새라니? 그녀에게 선생님은 역시 특별한 존재였다.
“나비는 제가 하면 돼요. 이졸데는 새장을 부수고 날아가는 앵무새니까요. 빈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모두가 우러러보는, 그렇기에 무엇이든 가고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앵무새.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할 수도 있지만, 제 싫으면 하지 않고 제 좋을대로 떠벌리고 자기만 모르는 앵무새. 저 멀리 호주에는 흰색 앵무새도 있는데, 마음대로 행동해서 여간 골치가 아니라고 들은 적이 있어요. 이졸데도 그렇게 행동하는거에요.”
“…하하하.”
“이졸데?”
“……하하하하하.”
“이… 이졸데? 괜찮아요?”
“아하하하하하하핫!”
그저 웃었다. 앵무새라니. 흰색이든 초록색이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였다. 그렇게 보아준 사람도, 앵무새따위나 되라고 말한 사람도 그녀가 처음이였다. 너무 하찮아서. 그 가벼움이 참을 수 없었다.
“아…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께선 저를 그렇게 보아주셨던 거군요…?”
“아…아하하. 뭐, 저는 이졸데의 행복을 바라니까요.”
얼마만에 웃은것일까. 이졸데는 스스로 생각했다. 그저 그 안에 갇혀 갑갑하게 있던 자신을, 이리도 꺼내주다니…
“그러니 이번 치료방법은 이걸로 해볼까요, 이졸데.”
그러자 선생님께서 뒷편의 코르셋을 가져왔다.
“이 코르셋을 불태우는거에요.”
“…네? 하지만 이건 4달전 입었던 의상의…”
“그럼 더 이상 입을 일 없겠네요! 자자! 부숨으로서 해방되는거에요!”
의상을 부수고 불태우다니… 그런 짓은 한번도 상상해본적도, 집에서도 가르침받아본적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카카니아 선생님께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코르셋은 고치. 그리고 그것을 여전히 간직한 이졸데는 유약한 나비. 때문에 박제되고 창에 갇히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그런 건 필요없어요. 이졸데는 나비따위가 아닌 앵무새니까요.”
그러면서 카카니아는 의사들이라면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손도끼를 이용해 그 자리에서 코르셋을 내동댕이 쳤다.
“자 이졸데. 어서요!”
더 높은 하늘로 이끌어주는 손과 같이, 그 뻗은 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티끌이라는 개념이 말소된 사전같이, 그 손을 이졸데는…
“… 여기서 하면 제 방이 어지럽혀지는 걸요. 밖에 나가야하지 않을까요?”
“앗!”
카카니아는 잊어버렸다는 몸짓을 취하며, 그녀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
“그럼, 뒷 뜰로 이동하실까요? 이졸데.”
그 손짓은 에스코트를 청하는 몸짓이였다.
하늘로의 비상,
벽을 깨부수는 파격,
세상을 해체해주는 당신,
이졸데는 그 손을 거절할리 없었다.
“후후… 고마워요. 선생님. 그럼... 뒷 뜰로 이동하실까요? 카카니아 선생님.”
그날따라 유난히 별은 따스히 빛나건만, 그저 앵무새와 나비의 대화는 그저 그뿐인 이야기였다.
때문에, 이 언어를 내뱉는 유령을 이졸데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그녀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끝-
여담;
화자는 이졸데에게 묶여있던 유령이라는 설정. 때문에 인칭이 바뀌지만 각성 이후엔 확실히 분리되어 3인칭으로 고정.
앵무새와 나비를 서로 뒤바꾸고, 졸데 스킨의 박제나비와 카카니아 스킨의 층이 있는 탑을 결합해 한번 글감으로 삼아보았음.
원래는 만화로 그리려고 했지만 도저히 어려워서 이렇게 글로 남김.
카광대 흥해라
와 이거거든
개추개추개추개추개추개추개추개추
어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