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스포일러 주의)
아래 창작이랑은 다른 시리즈야. 이 글은 3.5스토리 본편 이후의 이야기로 상상해봤어.
재건감옥에서 로렌츠와 재회한 라리사 보고 싶다
0. 재회
설원에서 불어온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도는 날이었다.
"... 마르그리트 설마 너야?"
"안녕 라리사? 오랜만이네."
재건의 손 임시 감옥을 순찰하던 라리사는 옛 인연과 재회했다.
그녀의 오랜 악몽, 마르그리트였다.
***
1. 과거와 현재
오래 전의 이야기다. 두번째 폭풍우 이후의 이야기.
라리사는 자신의 상관을 쏘아 죽였다.
상관에 대한 살인은 후회하지 않았다.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으니.
후회가 있다면, 그렇게 도망쳐 닿은 곳이 하필 재건의 손이었다는 비극이었다.
마르그리트가 알았다면 소리 없이 비웃었으리라.
도망친 끝에 낙원 같은 건 없었다.
그녀의 상관은 마도학자들을 생포해 실험용 쥐처럼 실험실로 실어 보내는 자였다. 라리사는 그 마도학자들을 빼돌려 구해 냈고, 그들과 함께 설원을 빠져나왔다.
마르그리트가 그녀에게 용기를, 혹은 달콤한 속삭임을 불어넣어준 덕분이었다.
그때 구했던 마도학자들은, 이제 다른 사람들을 실험실로 떠밀어 보내고 있었다.
참으로 우수운 농담이었다.
마르그리트는 이런 결말을 내다보고 자신을 부추긴 것일까.
마르그리트와 헤어진 지는 오래였다. 그런데도 그 존재는 좀처럼 라리사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서늘한 미소와는 어울리지 않게 귓가를 간질이던 나직한 음성. 종잡을 수 없으면서도 끝내 시선을 앗아 가던 사람. 섬뜩한데 아름다웠고, 두려운데 그리웠다. 떠올릴 때마다 마르그리트의 잔상은 라리사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특히 라리사가 잔혹한 선택을 강요받는 날이면, 그 잔상은 한층 또렷해졌다.
재건의 손의 신도로서, 생명을 구하려면 먼저 생명을 해칠 줄 알아야 했다. 재건의 손에서 신념을 유지하려는 자가 마주한 모순이었다.
잔인하고 무자비할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쥐여 주는 재량으로, 그녀는 불필요한 희생 몇 줌을 겨우 막아 냈다.
그 몇 줌을 위해 라리사는 옛 전우에게 총을 겨눴고, 난민에게 갈 식량을 강림 의식에 먼저 돌렸으며, 탈영병을 제 손으로 처단했다.
마르그리트가 더는 부추기지 않는데도, 라리사의 손은 늘 피로 젖어 있었다.
그럴 리 없었다.
그래서 라리사는, 지금도 마르그리트가 제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다고 믿어야만 했다.
때때로 라리사는 마르그리트라는 존재 자체가 제 잔혹한 무의식이 빚어낸 허상은 아닐까, 제 기억마저 의심했다.
그날 상관에게 총구를 겨누던 자신의 모습은, 아무리 돌이켜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고작 누군가의 부추김 한 번에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다니.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너의 목표지, 라리사."
그러나 그날이 환상이 아니었다고, 마르그리트의 또렷한 한마디가 세월을 건너 귓속에서 메아리쳤다. 오른쪽 귀에 표적을 짚어 주던 그 음성만큼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라리사의 죄책감과 무력감이 커질수록 마르그리트의 환영도 선명해졌다.
재건의 손과 재단은 내건 목표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똑같은 족속이었다.
그러나 저항할 용기라도 있던 과거의 라리사과 달리, 지금의 라리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방관뿐이었다.
과거의 용기조차 온전히 제 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무력한 현실은 과거의 선택을 날마다 배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망가지기 직전이던 어느 겨울, 라리사는 끝내 혼돈의 나비와 다시 마주쳤다.
***
2. 위선
시베리아에 버금가는 냉기가 들이닥치는 몰아치는 재건의 손 수용소.
재단 포로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라리사는 순찰이라는 명목으로 수감자들에게 방한용품이나 식료품이 모자르지는 않은지 살피고 있었다.
그들 모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해 겁먹고 위축된 상태였다.
단 한명을 제외하고.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왼쪽 눈 아래 찍힌 눈물점, 핏기 없이 매끈한 뺨, 추위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 쇠창살에 갇힌 처지가 무색하게도, 그 여자는 제집 응접실에라도 앉은 듯 느긋했다. 서늘한 눈동자가 라리사를 향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 마르그리트 설마 너야?"
"안녕 라리사? 오랜만이네."
정말 마르그리트였다.
마르그리트, 라리사의 가장 오래된 상처이자, 가장 찬란했던 악몽. 라리사의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였다.
포로 명단에는 기상관측관 로렌츠 버터플라이라고만 적혀 있어, 라리사는 그 이름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너가 왜 여기에…”
반가움보다 불길함이 먼저 엄습해왔다. 라리사가 아는 마르그리트라면, 수용소에서 대책없이 한가롭게 갇혀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라리사님 왜 그러십니까?”
근처를 순찰하던 추종자가 물었다.
“이 여자가 왜 여기에 있죠? 이 수용소는 위험등급이 낮은 사람만 수감된 것 아니었나요?”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위험등급이 높은 사람들은 모두 처분했습니다. 사도께서 제물로 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무고한 희생이, 라리사의 업보가 쌓이고 있었는데 라리사 혼자만 모르고 있었다.
“이자는 평범한 기상관측관일 뿐인데, 제물로 보내버릴까요?”
“아니요. 순간 착각했습니다. 수감자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으니 물러나세요.”
라리사가 단호히 명령했다.
단둘이 남게 되자, 쇠창살 너머에서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상냥하네 라리사. 포로들에게도 인도적이야. 보기 좋아.”
달라진 점도 있었다. 메마르기 짝이 없던 옛날의 말투와 달리, 오랜만에 듣는 마르그리트의 말에는 감정이 묻어났다.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감정이었지만.
“너는… 변했네 마르그리트.”
“그래? 난 한결같다고 생각하는데."
“옛날에는 일개 허쉬 분대원. 이번에는 평범한 기상관측관. 무슨 꿍꿍이야?”
"어머. 오랜만에 만났는데 딱딱한 얘기보단 서로 안부가 먼저 아니겠어?"
마르그리트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말장난은 필요없어.”
“그렇게 나오면 섭섭하지, 라리사. 난 반가워서 이러는 건데."
“내 질문에 대답해줘.”
라리사가 추궁했다.
"글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네 말마따나 난 그저 힘없는 기상관측관일 뿐인데."
주도권은 분명 라리사에게 있었다. 그런데 정작 초조한 쪽도 라리사였다.
마르그리트는 감옥에 갇혀 있었고, 라리사가 원한다면 고문도 가할 수 있었다.
그런 사소한 우위 따위로는, 마르그리트가 풍기는 불길함을 조금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 대체 여기서 뭐하는 건데?”
"그러는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는데?"
“어?”
라리사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기억하는 라리사는, 어린아이들을 구하겠다고 소대장에게 총구를 겨눌 줄 알던 올곧은 사람이었는데."
마르그리트가 옛 기억을 헤집기 시작했다. 다만 이번엔, 그 목소리가 환영이 아니라 눈앞에 실재한다는 점이 달랐다.
“생명을 실험체로 쓰는 것을 거부하고, 살인을 하고, 설원을 탈출하여 돌고 돌아 닿은 곳이 여기구나 라리사. ”
“...”
"생명을 실험체로 쓰고, 사람을 죽이는 바로 그런 곳으로 말이야."
라리사는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 달라진 점도 있었지.”
마르그리트는 감탄하듯 덧붙였다.
“곧 죽을 포로들에게 담요 조각이나 한줌의 빵을 나눠주고. 어차피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실험체들인데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라리사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런 적선을 위안으로 삼는 거야? 위선을 떠는 법을 잘 배웠어.”
“그럼!”
더는 견디지 못한 라리사가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갈 곳 없는 울분을, 마르그리트라면 받아 줄 수 있으리라 믿기라도 하듯이.
“내가 무엇을 했어야 했는데…! 나도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어!”
“구해 준 쪽이 다시 다른 쪽을 죽이고, 재단이든 재건의 손이든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희생시키는 판에…… 이딴 폭풍우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고……."
마르그리트는 잠자코 라리사의 울분을 들어 주었다. 실은, 붉게 충혈된 그 눈매를 느긋이 구경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속눈썹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 눈물이 얼마나 달콤할지, 마르그리트는 한가로이 가늠해 보았다.
“예전보다 그 얼굴이 더 마음에 드네.”
“... 마르그리트, 너 사실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거대한 시대적 폭력 앞에서, 선량한 소시민은 발버둥 쳐 봐야 결국 방관자나 가해자로 굴러떨어진다. 그러지 않은 이들은 이미 무고한 희생자가 되어 죽었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끝나는지, 마르그리트에게는 처음부터 뻔한 일이었다.
"너에게 선택지를 줄게, 라리사. 그러면 네 마음이 편해질까?”
다정하게 가라앉은 그 음성은 위로하듯 귓가를 어루만졌다.
"선택지?"
"머잖아 재단 쪽 폭격이 시작될 거야. 이 수용소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불태우겠지."
"……!"
"막고 싶으면 간단해. 날 죽이면 돼."
마르그리트는 쇠창살 틈으로 권총 한 자루를 라리사의 손에 쥐어주며 나직이 속삭였다. 오래전 그날과 꼭 같은 손길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총구가 방향이 마르그리트 본인 쪽이라는 점만 달랐다.
“...뭐라고?”
"재단은 날 구하러 오는 거거든. 내가 이미 죽었다면, 굳이 전력을 드러내면서까지 이곳을 침공할 이유가 없어지지."
“난…”
라리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로렌츠는 그 침묵의 이유를 단번에 꿰뚫었다.
“아니… 너한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겠구나.”
“저 바깥에 있는 수백 명을 생각해봐. 그들 사이에는 어린 아이들도 섞여 있을 테지만, 전부 살인자들이야. 자의에 의해서든, 세뇌당해서든 그들의 손은 피로 흥건하지.”
“네가 방관한다면, 폭격은 저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재로 만들 거야. 수백 명의 살인자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셈이지. 거대한 시대에 짓눌려 망가진 채, 서로를 갉아먹으며 겨우 연명하는 살인자들. 비참하지만 결국은 재건의 부역자들이잖아. 너가 내심 바라던 일이잖아? 감히 실행할 능력이 없던 것뿐이지.”
마르그리트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니 네 양심으로 골라. 무고하지만 한명뿐인 나야? 아니면 저 바깥의 불쌍하고도 추악한 생존자들이야?”
***
엔딩 1. 망설인다.
라리사는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과거와 달리 더 이상 선택이 불러올 대가를 마주할 자신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재단의 폭격기들이 대신 선택해주기 전까지.
콰아아앙-!!
수용소 전역이 폭격음으로 뒤흔들렸다.
철컥
뒤이어, 뜨거운 탄환 하나가 라리사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갔다.
"아..."
가슴께를 더듬자 손바닥이 피로 흥건히 젖었다. 라리사는 맥없이 무릎을 꺾으며 쓰러졌다. 회색지대의 방관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선홍빛 결말이었다.
"허억.... 서, 선생님 구하러 왔어요."
의식 저편에서 어린아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 내리던 그 어느 날, 자신이 처음으로 방아쇠를 당기던 날과 똑닮은 울림이었다.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이기고 생명을 위해 또 다른 생명을 쏘았다.
라리사는 제 상관을,
저 아이는 라리사를.
모두 누군가의 달콤한 격려 없이는 불가 했으리라.
라리사는 깨달았다.
'이 아이가… 내 대체재구나.'
이것은 초식동물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포식자가 사냥을 끝마치고 취할 행동은 다음 먹잇감을 탐색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마르그리트는 배부를 줄 모르는 여자였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마르그리트는 이글의 걱정에 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턱을 괸 채, 무너져 가는 라리사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심연 같은 두 눈동자가,
천천히 음미하듯 라리사에게 온전히 머물렀다.
"으윽..."
힘 빠진 손이 마르그리트의 바짓단을 가까스로 붙들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보네."
마르그리트가 나직하게 웃었다.
"너, 너는..."
"내가 맞혀 볼까?"
마르그리트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맞아,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어."
잔인한 여자, 유언을 남길 마지막 기회마저 자기 방식대로 앗아 간다.
라리사는 울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라리사는 신념도, 미래도, 끝내 목숨마저 모두 나비에게 삼켜진 채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쓰러진 자리에는 흘러나온 피가 나비 날개 모양으로 번져 남아 있었다.
"이렇게 끝나 버리다니, 정말이지 안타까워. 라리사."
마르그리트가 애도하듯 중얼거렸다.
‘이제야 그 표정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는데.’
'사람은 어쩜 이렇게 빨리 죽을까.'
그녀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
엔딩 2. 도망친다.
라리사는 자신에게 내밀어진 총을 버렸다. 대신 마르그리트를 가두던 쇠창살을 풀었다.
그리고 마르그리트의 손목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거센 눈보라가 얼굴을 후려쳤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체격도, 힘도 자신보다 우위인 마르그리트는 군말 없이 끌려와 주었다.
자신보다 작은 체구로 앞서 달리는 라리사의 뒷모습을, 마르그리트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늘 제 품에서 휘둘리기만 하던 여자가, 처음으로 제 의지로 날개짓 하고 있었다.
라리사의 선택은 도망이었다.
하지만 회피는 아니었다.
마르그리트가 교묘하게 포장해 내민 두 개의 선택지, 그 바깥에서 라리사는 제 답을 찾아냈다.
재단이 원하는 것이 마르그리트라면, 그녀를 제 손으로 직접 재단에 데려다주면 그만이었다. 그 대가로 자신이 처분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르그리트를 조수석에 태우고, 라리사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늦기 전에, 재단 지부를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바리케이드를 들이받고 영내로 뛰어든 승용차에서 로렌츠 버터플라이와 재건의 손 간부가 나란히 내리자, 재단 병사들은 화들짝 놀라 총을 겨눴다.
라리사는 그 자리에서 곧장 구속되었다. 재건의 손에 가담한 이력에, 허쉬 분대원 시절 상관 살해 혐의까지 더해진 채로.
그러나 더는 생명을 저울질하지 않아도 되었다.
더는 누군가를 죽여야만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논리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된다.
망가지지 않은 채로, 제가 저지른 살육의 대가를 똑바로 마주한다. 적어도 자기 선택의 대가만큼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성공한 삶은 아닐지언정, 부끄러운 삶은 아니었다.
라리사는 담담히 자신의 최후를 기다렸다.
끼익.
유치장 문이 열리고, 판결문을 든 마르그리트가 들어섰다.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모습은, 마치 라리사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강림한 천사 같았다.
"너의 처분은 다음과 같아, 라리사."
마르그리트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재건의 손에 몸담은 사실, 유죄. 명령을 어기고 상관을 살해한 사실, 유죄. 절도, 방화, 테러 등 그 밖의 모든 혐의, 유죄."
라리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역시 사형이겠지. 혹은 실험실행이거나.’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하지만."
마르그리트가 잠시 말을 끊었다.
"재단 포로들을 인도적으로 대우한 점, 피해 난민들을 구조한 점, 체포 과정에 협력하고 정보를 공유한 점, 그리고 로렌츠 버터플라이가 제출한 탄원서를 참작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마르그리트가 라리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로렌츠 버터플라이의 감독하에, 라플라스 연구소 조수로 복무할 것."
뜻밖이었다.
“뭐?”
라리사의 눈이 커졌다.
"참고로, 종신직이야. 불만 없지?"
장난스럽게 덧붙인 마르그리트가 싱긋 웃었다.
"한낱 재단 간부에게는 과분한 처사인네... 마르그리트, 나를 위해 탄원서를 써준 거야? 대체 왜.. "
"나도 네가 죽는 걸 바라지는 않거든."
"... 고마워."
라리사의 감사에, 마르그리트는 만족스럽게 눈매를 휘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꾸밈없는 미소였다.
"자, 동의한 걸로 알고. 채용 건강검진은 바로 시작할게."
"어?"
마르그리트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굳어 버린 라리사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그녀를 가볍게 깔아버렸다. 그러고는 라리사의 제복 단추를, 한 겹 한 겹 천천히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 마르그리트, 잠깐만. 지금 뭐하는 거야."
"건강검진이라니까? 내 조수로 적격인지, 꼼꼼히 확인해 봐야지."
마르그리트의 부드러운 손끝이 라리사의 목덜미를 스치고, 쇄골을 따라 느릿하게 미끄러졌다. 검진과는 거리가 먼, 야릇한 손길이었다.
"할 거면…… 침대에서라도, 제발."
"그치만 라리사, 그런 야한 눈을 하고서는 그만해달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는걸?"
라리사는 더 반박하지 못했다.
"많이 참았거든."
마르그리트가 라리사의 귓가로 입술을 가져갔다. 늘 그래 왔듯, 악마처럼 달콤한 음성이 나직이 스며들었다.
"순수했던 너가 마음속 선의와 악의를 따라, 완전히 수렁에 빠져 단단히 벼려질 때까지."
라플라스 연구소 출근 첫날, 라리사는 곧장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정확히는, 마르그리트의 침대 위였다. 그 어떤 훈련보다도, 그 어떤 임무보다도 버거운 첫 근무였다.
해피엔딩 선호파지만 '이 아이가… 내 대체재구나'<-이 대사가 너무 맛있다 따흐흑...
본편에서 로렌츠, 이글, 라리사 삼자대면하는 거 꼭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