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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스카이림을 실행시킨 저는 무언가 색다른 걸 시도해보고 싶어졌어요.
최고 난이도, 세이브&로드 금지
목숨 하나로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 지켜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물론 그렇게 많이는 못 갔습니다.
저는 순록이랑 귀여운 여우 같은 위험한 야생 환경을 돌파하며 화이트런에 도착했는데,
그러고는 강도 두 명과 맞닥뜨렸거든요.
죽으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에, 좀 더 전술적으로 싸우게 됐는데
이러는 과정이 스카이림의 무미건조한 전투 시스템에 매운맛을 약간이나마 더해주더군요.
아무튼 전투에선 지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치려고 시도했지만 그럴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끝이구나, 나의 한심한 인생은 시작된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아 끝을 맺는구나...
하지만 이런다면... (강물에 뛰어듬)
강물에 휩쓸려가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게 얼마나 강렬한 장면인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 같다구요.
다른 게임에서 나올만한, 스크립트로 짜여진, 강제로 봐야만 하는 이벤트에선 전혀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죠.
(0:53)
일반적인 게임, 죽으면 세이브&로드로 되살리는 게임은
플레이어가 도망쳐야만 하는 순간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타입입니다.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은? 그 때가 바로 죽어라 전투하는 시간이죠.
흑백논리에요, 도망치기 아니면 전투하기 둘 중 하나입니다.
영구적 죽음을 차용한 게임은...
'로그라이크'
'로그라이트'
'철인 모드'
어쩌면 '림월드' 같은 게임도 포함될 수 있겠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프레이 문크래쉬' 같은 게임들은
일종의 회색 영역을 제공해주는 타입입니다.
이 게임들은 플레이어에게 언제 도망쳐야 좋을지 직접 얘기해주는 종류가 아닙니다.
대신에 질문을 하죠.
"거기서 도망치는 게 좋은 선택일까?"
"보안 드론 두 마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어."
"하지만 정신 없이 싸우는 도중에 모래바닥을 건드려서
말도 안되게 강력한 문샤크가 튀어나오면
너는 큰일나는 거야."
"싸울래? 도망칠래?"
게임에선 말이죠, 플레이어에게 명령하기보단 질문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플레이어가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내고, 스스로 표현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게 질문하는 게임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거기서 도망치는 게 좋은 선택일까?" 라는 질문 말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플레이어가 무언가 잃을 것이 있을 때에만 성립하는 거예요.
일반적인 게임에선, 플레이어는 딱히 도망칠 이유가 없습니다.
보상은 있는데 책임은 없기 때문에 아무리 위험한 전투라도 돌격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상황이 잘못 돌아가면 로드를 하던지, 이전 체크포인트로 되돌아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게 되죠.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두 개입니다.
해당 전투를 이길 때까지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한 때는 긴장됐던 인카운터를 그저 지루한 순간으로 만들어버리거나,
나중에 더 강해졌을 때를 위해서 눈도장을 찍어두고 싸움을 회피하는 거죠.
(2:13)
하지만 재밌는 전투를 대충 시작했다가 대충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리는 행위는
굉장히 실망스럽고 흥미가 뚝 떨어지는 짓임에 틀림 없어요.
반면에 영구적 죽음이 차용된다면, 플레이어는 행위에 책임을 지게 되는 겁니다.
이 때부터 여러가지 굉장히 창발적인 이야기와 상황 반전의 가능성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케이브스 오브 커드'의 예를 들어봅시다.
방금 스냅죠 (7시 방향 빨간 도트) 를 겨냥한 제 화살이 빗나가서 적대적이지 않은 거대 풍댕이를 맞추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이놈의 벌레가 거대한 턱을 저에게 들이대고 있네요,
그래서 저는 "스프린트" 스킬을 사용한 다음 근처에 있는 계단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런 다음 바로 위층의 안전해보이는 복도에서 치료를 시작했는데,
그놈의 벌레가 다시 튀어나오더니 터미네이터처럼 길목을 가로막는 게 아니겠습니까.
등 쪽으로는 위험한 덩쿨이 길을 막아서고 있고, 전방에는 괴물 벌레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죠.
그래서 저는 "페이즈" 스킬을 사용한 다음 벽을 뚫고 달려서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염병할 호러 영화처럼 벌레가 다시 튀어나왔어요.
게다가 계단까지 틀어막고 있어서, 저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알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밖에 남지 않았죠.
하지만 때맞춰 적을 아군으로 만드는 "유혹" 스킬의 쿨다운이 돌았기 때문에...
(유혹 사용)
짜잔, 이제 터미네이터가 제 것이 됐습니다.
아주 좋은 한 쌍이었죠... 둘 다 오래가진 못했지만.
(3:24)
여기서 '커드'라는 게임이 그냥, 있었던 일을 맘대로 되돌리게 해준다고 치고,
잘못 날아간 화살을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 있게 된다고 해보세요.
훨씬 지루한 모험이 됐을 겁니다.
"페이즈"처럼 멋있는 스킬도 딱히 써먹을 구석이 없어지고 말겠죠.
필요는 플레이어의 창의력의 어머니입니다.
시도를 무한정 반복할 수 있다면 사실 어느 선택을 하던 상관이 없습니다만
모든 인카운터마다 영구적인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면
어느 인카운터를 겪든지 멈춰서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할 거예요.
"어, 불게다."
"불게랑 싸우면 질 거 같은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거죠, 적이 무슨 행동을 할까 예측해보며...
"불게가 문도 열 수 있나?"
"못 열 거 같은데."
"손이 집게인데 문을 어떻게 열어?"
이런 상황에서 해봄직한 선택은 다양하지만,
직접 실험해보는 건 위험한데다가 과정이 어떻게 됐든 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도하기 전에* 차근차근 상황을 계획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러니까 계획이..."
"... 이 방까지 유인한 다음에"
"석상을 빙 돌아서..."
"다시 나간 다음 문을 닫을 거예요."
(깔깔깔)
이건 시행착오를 통해서 전략전술을 발견해 나가는 게 아닙니다.
플레이어 자신의 독창성을 이용해서 *만들어 나가는* 거죠.
지루한 플레이는 지양하면서도 좀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플레이하도록 강제하는 시스템입니다.
(4:41)
위기상황에서 플레이어를 구출해줄 해답은 기발한 생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꼭 필요한 순간이 올 때까지 품 안에 숨겨두고 있었던 에픽 아이템이 될 수도 있죠.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험이 닥쳤을 때, 플레이어는 비로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일반적인 게임에선 성능이 너무 좋아서 잘 안 쓰게 되는 아이템까지도 말이에요.
저도 '파이널 판타지'를 하다보면 엘릭서가 17개씩 남고는 합니다.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요.
아무데나 깽판 놓고 다닐 때를 제외하면 '바닐라 폴아웃'에서 딱히 미니 뉴크를 써본 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필요한 순간이 없었거든요.
에픽 아이템은 영구적 죽음을 차용한 게임만이 진정한 사용처를 갖습니다.
영구적 죽음을 차용한 게임만이 진정으로 강렬한 위기상황을 갖기 때문이죠.
시도를 무한번 반복할 수 있어서 패배할 수가 없는 상황에선 용이랑 싸워봤자 그다지 강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곤 그냥 커다란 쥐랑 싸우는 거랑 다른 게 뭔가요?
정말로 강렬한 승리를 얻기 위해선
그만큼 강렬한 패배가 이면에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5:38)
솔직하게 말해서 영구적 죽음을 차용한 대부분의 액션 게임은
이러한 몇몇 장점을 살리는 데에 실패한 편입니다.
이런 게임들도 어느정도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약간이지만 계획을 세워서 대처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게임 플레이가 빠른 편이고, 사용 가능한 능력의 갯수 자체가 적어서
대부분의 상황을 창의력보단 반응속도에 의존해서 풀어나가는 경향이 있거든요.
이런 종류의 게임에선 어지간해선 마주치는 모든 적을 죽여야 합니다.
특히 방 안에 가둬놓고 싸우게 만드는 종류는 더 그렇죠.
그 결과로, 말도 안되게 강한 적은 애초에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에픽 아이템이 필요한 순간이 없다는 뜻이죠.
살기 위해 도망쳐야만 할 순간도 없다는 뜻입니다.
오해하진 말아주세요, 제가 이런 게임들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런 종류의 게임들은 영구적 죽음 시스템을 게임의 핵심 매커니즘으로 활용하기보단
그저 반복성(리플레이성)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요.
'프레이 문크래쉬'는 활용을 꽤 잘한 축에 속합니다.
게임의 베이스가 이머시브 심이기 때문이죠.
생각할 시간도 많고 이거저거 활용할 수 있는 것들도 상당하거든요.
흥미로운 문제상황에 맞서 고유의 해결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말로 무서운 적들이 등장하곤 하죠.
훨씬 강력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적은 아닙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랜덤으로 생성되지 않고 고정돼있어서 리플레이성이 좀 떨어지는 감이 있긴 해요.
(6:44)
결론적으로 영구적 죽음의 진짜 면목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어금니 꽉 깨물고 제대로 된 로그라이크를 해보는 겁니다.
물론 모두를 위한 게임은 아니에요.
입문하는 것부터가 상당히 어렵고, 악명높은 클리어 난이도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게임을 깨는 게 아니에요.
저는 수백시간 동안 '넷핵, 톰, 던전 크롤' 등등을 해왔지만
단 하나도 클리어에 근접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하는 매분 매초가 정말 즐거웠습니다.
도망도 치고
꼼수도 써보고
상황이 반전되고
나만의 해답을 찾고
정말로 강렬한 인카운터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영구적인 죽음의 위험성은 여정을 훨씬 더 흥미로운 무언가로 만들어주더군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에선 별로 안 그렇던데 말이에요.
그냥 로그만들때 메모리 없어서 개어렵게 만든게 시초 아님? ㅋㅋㅋ
그 때도 메모리는 충분히 있었던 걸로 암 세이브 파일 백업해놓는 사람도 있었고
옹 맵 저장할 메모리도 없어서 랜덤맵한걸루 알고있었는데 고건 아니었나보네 그럼
플레이어의 창의력을 게임내에서 발휘하려면 굉장히 다양한 상호작용이 필요한데 요즘의 그래픽기반 게임에서 구현하기엔 많이 힘들지. 그래서 플레이어의 행동은 1때리기 2마법 3소모품사용 4도망 정도로 귀결되는게 아닌가 싶음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험이 닥쳤을 때, 플레이어는 비로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ㄹㅇ 이런 상황에서 느껴지는 쾌감 때문에 로그라이크가 중독성 오지는것같음
악! 이건 너무 유용하다!
솔직하게 말해서 영구적 죽음을 차용한 대부분의 액션 게임은 이러한 몇몇 장점을 살리는 데에 실패한 편입니다. (중략) 이런 종류의 게임에선 어지간해선 마주치는 모든 적을 죽여야 합니다. - dc App
돌죽좌.. 어째서.. - dc App
킬 뎀 올 - dc App
화끈해진 베후
유익추
꺼라에서는 반대로 실험적인 플레이를 하다가 뒤질 수 있기 땜시 오히려 보수적인 플레이를 유발한다고 적혀있는데 꺼라한건가 - dc App
보수성에조차 평상시에 없던 절박함이 담긴다고 볼 수는 있겠지. 적어도 그런 선택에 이유가 붙고 지루하지 않게 되고
ㅇㅎ - dc App
아무리봐도 똥겜인 카타클이나 돌죽 다시 하게 되는 이유를 알게됬음 유익추
그렇지만 대부분의 게이머는 게임에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썼다간 현실에서 써야 할 힘도 뺏기기 때문에 로그라이크게 겜창전용 장르이기도 한거겠지
이거 그냥 저 유튜버한테 연락해서 자막 추가해달라고 해봐. 나도 그렇게 해서 넷핵 영상 번역한 거임.
추가해달라고 해볼 생각인데 정확히 어떻게 보내면 됨? 영어 스크립트 밑에다가 번역된 거 적어주면 되나?
잼게봤음 ㄱㅅㄱㅅ 님이 쓴 코볼트돌죽공략보고 돌죽 입문함 ㄱㅅㄱㅅ
옛날에 롤하다 이거랑 비슷한 생각했는데ㅋㅋ 한타지고 세이브로드해서 다시 한타해서 이기고 이랬으면 롤도 좆노잼이었을거 같다고 고갤에 쓴 글 있는데 갑자기 생각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