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ing is Fun!"이란 구호는 로그라이크 게임 커뮤니티, 그 중에서도 특히 드워프 포트리스 커뮤니티에서 널리 쓰이곤 한다.
겉으로만 슬쩍 보기에도 이러한 구호가 나타내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로그라이크에선, 게임 플레이 매커니즘 자체를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여정 그 자체가 목적이다. 대부분의 캐릭터는 여행 도중 죽게 됨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현대 비디오 게임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구조를 가진 것이다.
이제 그러한 "패배 과정" (다른 말로 하면 "영구적인 죽음")에 대해 따져보자.
이것이 재밌어야 한다는 말은 한 마디로 과정을 겪는 중에 흥미로운 결정을 수도 없이 내릴 수 있음을 뜻하고,
그러면서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사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특성들은 딱히 로그라이크만의 특성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하나 하나 따져보면 이미 수많은 보드 게임과 멀티 플레이 경쟁 게임에서 적용되고 있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싱글 플레이 게임의 영역에선... 컷신과 화려한 시청각 자료, 즉각적으로 들어오는 보상 체계, 도전과제 시스템 등으로 점철된
스토리 위주의 게임과 샌드박스, 퍼즐 게임들이 점거한 영역에선 로그라이크는 거의 마지막 보루나 다름 없다.
패배 과정이 즐거운 게임이란 다른 말로 하자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그 자체에 게임을 지속하게 만드는
동력원을 품고 있는 게임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진행할 수록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강해질뿐만 아니라
플레이어 그 자체, 하나의 생각하는 존재 또한 기량을 증가시켜 나간다.
아래의 글은 모두 이러한 차이점을 조명한 것이다.
그나저나 "패배"한다는 게 뭘 말하는 걸까?
많은 수의 로그라이크에선 특이하게도 특정한 승리 조건 외에 점수가 따로 매겨지는 스코어 시스템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넷핵에선 "옌더의 아뮬렛"이라는 걸 찾아낸 다음 되돌아가는 걸로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지만,
이른바 "패배"한 게임에서도 점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매겨진다.
결론적으로 플레이어는 매번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과거의 자기 자신을 상대로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니, 따지고 보면 미래의 자기 자신 또한 경쟁 상대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전의 하이 스코어에 대해서 1점 차이를 내는 거나 1000점 차이를 내는 거나 아무 차이가 없을 테니까.
어쨌거나 그러는 도중에 하이 스코어가 갈아치워질 경우 해당 판은 "승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넷핵은 승리 조건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두 개의 승리 조건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승리 조건(클리어 조건)을 만족한 판이 점수가 더 높을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러한 판이 "여러 개" 있다면 그것들 사이에선 도대체 어떻게 우열을 나눌 것인가?
이전의 하이 스코어를 넘어서지 못한 판은 게임을 깼다고 해도 패배한 걸로 간주해야 하는 걸까?
이러한 갈등은 게임 시스템에 좋은 영향을 줄 리가 없다.
특히 스코어링과 관련된 부정행위가 남발되는 경우 (넷핵에서 특히 그러하다)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애시당초에 해당 게임이 스코어링 시스템을 상정하지 않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이 스코어를 승리 조건으로 내거는 행위는 불분명한 게임 디자인을 초래할 확률이 상당히 높을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에게도 여러가지 문제점(링크)을 동반시킨다.
이것이 내적 동기를 통해 플레이어를 유도하는 게임은 일관되고 뚜렷한 승리 조건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이다.
(*이 문단은 주제랑 결론이 일치가 안되는데 하여튼 단순하게 "점수 경쟁"에서 밀려나는 수준은
"Losing is Fun!"이라는 구호에서 말하는 "패배"와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인 것 같다)
내적 동기
내적 동기에 초점이 맞춰진 게임은 게임 플레이에 대한 보상을 보다 근본적인 단계에서 갖추고 있는 종류다.
그 말인 즉, 플레이어가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재미")이 플레이어의 정신 속에서,
게임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느끼는 흥미로움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과정은 많은 수의 독립된 판*을 겪음으로써 이루어지는 정신적인 성장과정,
(*Self-contained match. 자립적인 매치. 게임 한 판, 두 판 할 때 판을 말함.
독립(자립)돼있다는 건 각 판마다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뜻.)
특히 플레이어가 그 과정 속에서 무언가 학습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론 이런 관점이 성립하려면 게임이란 것 자체가 일종의 학습 가능한 훈련 과정이라는 인식이 먼저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게임이란 플레이어가 내부의 시스템에게 입력을 보내고, 그 입력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 자신의 머릿속에 구성해낸 시스템에 대한 모델을 조정하고, 그러면서 점진적으로 게임에 대한 기량을 향상시키고
경쟁하는 시합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내적 동기에 치중한 게임의 고전적인 예시
내적 동기에 치중한 게임은 "그 자체로"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오로지 자신의 기술을 활용해 어려운 도전과 맞서 싸우도록 제공해주는 게임은
(밸런스가 잘 맞는다면) 패배하던 승리하던 간에 그 과정 자체가 재밌다.
특히 복잡한 상호작용들을 손수 통제하고, 그런 것들을 학습하는 플레이어 자신이 성장한다는 게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암시적인 성장 과정(링크))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게임에서 패배했을 때 오히려 더 강한 보상이 들어온다는 것이 이해가 갈 것이다.
오히려 플레이어가 너무 베테랑일 경우에는 패배할 수가 없기 때문에 딱히 게임을 하면서 얻는 것도 없을 테고,
그 때까지 가고 나면 "얻을 거 없는 상황"에 대한 인간의 전형적인 감정 - 지루함이 나타기 시작하는 것이다.
외적 동기
정반대로 게임에서의 외적 동기는 게임 플레이적인 측면에서 지루함이 나타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에서도
그 지루함이란 걸 빗겨가기 위한 일종의 획책(링크)으로 사용되곤 한다. 하나의 도구인 것이다.
(*해당 영상은 Braid, The Witness 등을 개발한 조너선 블로우의 강연이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칼럼은 해당 강연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므로
영어 듣기가 된다면 한번 끝까지 봐보는 걸 추천함.
영상의 28분부터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것도 아닌 오직 스토리 단락을 추가적으로 얻기 위해,
경험치 바를 한 칸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어쩌다 한번쯤 나와주길 바라는 아이템 한 무더기를 얻기 위해,
멋있는 필살기를 감상하기 위해,
아니면 아예 그냥 승리하고 정복했을 때의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만
어떤 게임을 하게 될 경우, 그건 분명히 해당 게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뭐가 됐든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 복잡한 결정을 여러번 내려봤자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고
애초에 그런 일에 투자한 시간은 별로 가치가 없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적인 외적 동기 중의 하나가 바로 "도전과제(업적)"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도전과제라는 것들이 독립적인 판들 "너머에" 존재한다는 건 아주 분명한 사실이다.
승리 조건에도 영향을 주지 않으며 게임 매커니즘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
이러한 도전과제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우선 게임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얻어지는 단순한 것들.
이것들은 플레이어가 그다지 의미 없는 일을 수행한 것에 대해
"기분이 나아지게" 만들어주는 약간의 심리적인 트릭에 불과하다.
두 번째로는 어려운 난이도를 가진 실질적인 도전과제라 할 수 있는 것들.
이것들은 게임 그 자체가 갖는 변수들에 대한 나름 효과적인 설명체계가 될 수 있으며
숨겨져있는 액션과 전략에 대해 탐구할 것을 장려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내적 동기의 하나로써 설명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적합한 방법론(링크)을 기반으로 삼아 명쾌하게 디자인돼 게임에 대한 흥미를 극대화시킨다면
그건 어느 게임에 투입돼도 훌륭한 첨가물이 될 것이다.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현존하는 대부분의 게임은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요점은 외적 동기를 완전히 제거하라는 게 아니라, 외적 동기에만 치중해서 게임을 만들 경우
그 결과물이 도대체 어떤 모습이 되냐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게임들은 가용할 수 있는 외적 동기를 모조리 소진하고
코어 매커니즘의 허술함이 바깥으로 노출되는 순간 산산히 와해되어 부서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일회용품일뿐인 것이다.
더 곤란한 점은 해당 게임들이 플레이어에게 한도 이상으로 "동기 부여"를 하는 바람에
이미 게임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면서 그저 시간만 버리도록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도전과제가 게임을 침공하고 있다
반면에 내적 동기에 치중한 게임들은 훨씬 오랫동안 의미 있는 게임 플레이를 제공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물론 체스나 바둑 같이 순수하게 내적 동기로만 이루어진 게임들이 될 수 있을 테고,
대체로 많은 수의 보드 게임들 또한 현대의 비디오 게임과 비교했을 때 훨씬 오랫동안 의미 있는 플레이를 제공하는데,
이건 디지털 게임들이 얼마나 시청각 자료 제공과 영화적 연출을 가지고 외적 동기를 남발해대는지를 생각해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패배는 불가능을 요구한다
근본적인 단계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동기"에 대해서 설명했으니 이제 둘을 잘 활용해서
승리와 패배라는 요소에 대한 유의미한 관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 비디오 게임에선 말이다, 플레이어는 사실상 패배란 걸 할 수가 없다.
거기에선 오로지 스토리와 스펙타클한 영상, 끊임없는 "+1" 스탯 경쟁이 있을뿐이고,
핵심적인 게임 플레이 매커니즘에 대해선 애써 무시할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플레이어가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할" 때에만 그렇단 얘기다.
남아 있는 컨텐츠를 계속해서 경험하고 또 경험하고, 공격력에 대한 수정치를 계속 올리고 또 올리고...
이러한 게임들에선 "진행"이 계속해서 누적되어야만 한다.
어느정도 진행하면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독립적인 판이란 건 애초에 다루지조차 않는다.
이런 방법이 합리적인 방식이 되기 위해선 진행이 누적될 수록 가상의 캐릭터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 자체의 기량이 향상되도록 해야 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현대 싱글 플레이 게임에선 패배라는 걸 아예 삭제해버리는 것으로 결론을 내버렸다.
플레이어는 범접할 수 없는 무적의 영웅을 조종한다.
그리고 이 작자에겐 단 한 가지 결말만이 예정되어 있다. 압도적인 승리.
과정이 진행되는 도중 무언가 잘못 돌아간다 해도 플레이어에겐 최고이자 최강의 무기가 손에 들려 있으니,
세이브&로드 해버리면 그만이다.
로그라이크...라이크?
이렇게 무한한 힘을 가진 비디오 게임의 영웅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까닭에,
거꾸로 "패배"란 게 가능한 게임들에 대해 "로그라이크"라는 태그를 갖다 붙이는 일이 성행하게 되고야 말았다.
"영구적인 죽음"이란 아이디어는 잘 만든 게임이라면 응당 갖춰야할 요소이자
내적 동기를 좇는 플레이어에게 대체할 수 없는 셀링 포인트가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는 플랫포머 게임인 스펠렁키, 트윈 스틱 슈팅 게임인 바인딩 오브 아이작에게까지 "로그라이크"라는 꼬리표가 붙곤 한다.
오리지널 로그와 비교하면 그다지 유사한 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자면 테트리스가 오늘날에 발매됐을 경우 이것에도 로그라이크라는 딱지를 붙여야 한다.
아니면 뭐, "로그라이크-라이크"나 "로그라이트"라던지.
이 게임이 정말로 로그와 닮았을까?
약간 더 살펴보자면, 물론 이 게임들은 로그라이크 장르가 같는 특성을 몇 가지 더 공유하고 있기는 하다. 절차적 생성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냥 필요하기 때문에 쓰였을뿐이다.
시스템 단계에서 생성되는 불확실성이 없다면 싱글 플레이 게임은 얼마 안 가 붕괴되어
순전한 암기 경진 대회가 되거나, 누가 와서 풀어주길 기다리는 퍼즐 뭉치가 될뿐이니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새로운 걸 학습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기 위해선
어느정도의 랜덤화가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딱히 로그라이크만의 특성이라고는 하기는 힘든 부분인 것이다.
그저 흥미로운 싱글 플레이 게임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요소일뿐이니까.
희망적인 미래
최근 들어 "로그라이크" 또는 "영구적인 죽음"이란 용어가 이상한 방향으로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게임 환경의 발달은 꽤나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돌파하기 어려운 상황을 굳이 포함하고, 한번 내린 결과는 돌이킬 수 없고, 매번 랜덤하게 달라지는 환경을 갖는 것이
상당히 특별한 것으로 취급받는 상황이 왔으며, 어느 때는 심지어 대단한 것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하니까.
많은 수의 게임이 자신의 "로그라이크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곤 한다.
그러한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이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의 차이점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그런 변화 자체가 게임 산업을 내적 동기에 치중하는 쪽,
그러니까 요즘 들어 보기 힘들어진 요소를 포함하는 쪽으로 견인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AAA 게임계는 여전히 게임 플레이에서 한참 벗어난 동기 부여 방법을 강하게 선호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적어도 소규모 인디 개발 스튜디오에선 요 몇 년 동안 꽤 해봄직한 우회로를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세상엔 피상적인 게임 플레이, 백인만 나오는 스펙타클한 영상, 정신나간 컨텐츠, (*2016년도에 나온 칼럼임)
스키너 박스(*동물 실험에 쓰이는 상자(링크)) 따위에 지쳐버린 플레이어들이 이미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아낸 것이다.
깊이 있는 시스템을 추구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성장과 학습 가능성에 대해 높은 값어치를 쳐주는 플레이어들이 존재한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이 물꼬를 틀었다는 건 한 마디로 말하자면,
게임 디자인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진보가 미래에 일어나고야 말 것임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읽고감
너무 유익한데
3줄요약
누가 쓴거임? 의미있는 플레이와 가치있는 플레이에 대한 정의부터 짚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원본 링크라는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나요?
ㄴ 못봤어 애미디진새끼야
급발진웃기농 ㅋㅋ
바로 패드립 튀어나오노 ㅋㅋ 물론 원본 링크가 글 맨 아래에 적혀있는 게 일종의 국룰이긴 한데 그거가지고 패드립할거까진 없지 친구야
정공 ㅋㅋ
시간박고 돈쳐바르는 것만 남은 게임들은 재미가 없어
너모 재밌는 글이야
첫짤이너무개똥겜이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간 에픽장비 정가 노리고 뺑뺑이 도는 게임도 나름의 맛이 있지만, 요즘은 옵치나 돌죽처럼 플레이 그 자체가 재밌는 게임쪽에 손이 가더라
개추
재밌는 내용이네 번역추
로갤러가 적은 글인줄 알고 기립박수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