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란 곧 구속을 의미한다" -이름없는 성자-
고대로부터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꼽으라면 당연히 신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고대의 사람들은 신들을 상상할때면 드높은 천상의 궁전과 같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신자들을 인도하고 징벌하는 불멸의 존재를 주로 상상했다.
그런 위대한 신들 사이의 이야기는 신앙인들이나 비신앙인들에게나 매우 흥미롭거나 때로는 깊은 감명을 주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선지자로부터 들은 매우 흥미로운 아셴자리에관한 신화가 있다.
먼 옛날 선사와 역사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세상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었다.
당시 혼란했던 시대는 그에게 있어 혼돈 그자체 였으며 그는 그러한 세상을 경멸하곤 했다.
어느날 그런 그에게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는 그의 삶 속의 경험에서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진리의 편린을 발견했다.
그의 작은 진리는 현재의 우리가 보기에는 별것 아닌 정도의 지식 수준이겠지만 그에겐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의 작은 진리를 세상 앞에서 시험 했을때 그리고 그 작은 진리가 찬란히 빛날때 그는 깨달았다.
당시에는 그 깨달음을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했지만 그의 이후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그의 경험 혹은 남의 경험을 통해서 진리를 다시금 찾아 나섰고 그의 이해를 시험하고 진리를 발견 할때마다 세상의 혼돈이 사라져감을 느꼈다.
아니 혼돈 그러니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이 진리 앞에서 멈춘 부동의 존재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 순간 그는 그의 깨달음을 말로 표현 할 수 있었다.
"나는 혼돈을 구속했다"
그 이후로 그는 그의 삶을 구속했고 진리를 따르는 삶은 점차 커져나가 사회를 구속하고 세상을 구속했다.
그의 삶에서 구속은 이미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고 진리 그자체이자 진리의 집행이었다.
그는 오로지 구속 속에서만 세상을 진실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지상에서 제일 번영했을 무렵에 그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그는 진리 속에서 힘을 찾았으며 그는 그 진리로 그를 구속했다.
그는 더이상 혼돈의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불변과 불멸의 세계에 있었다.
그는 최초의 신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진리의 눈으로 혼돈의 세상을 관찰하였다.
위대한 치유사, 성전사, 성직자
마법의 기초를 닦은 마법사들
위대한 상인과 진노한 자
그는 세상 속 위대한 인물들을 그와 같은 불멸의 세계에 구속했다.
그가 구속되어 온세상을 바라볼수록 그의 진리의 탑이 견고해져감을 느꼈다.
그는 마침내 한계를 초월하여 관념 그 자체를 구속했다.
폭풍을 구속하고
어둠을 구속하며
파괴를 구속했고
심연이 구속되고
마침내
혼돈을 구속했다.
그는 최초의 신이자
모든 신들의 창조자이고
가장 위대한 예언자이며
가장 많은 족쇄를 단 자이다.
맨위에 언급했던 이름 없는 성자의 구절을 이 신화로 해석하자면 신앙은 신의 구속이며 우리는 이러한 신의 구속을 통해 신의 진리와 힘을 이 세상에 실현 할 수 있다.
아셴자리의 권능은 어쩌면 구속을 통한 진리를 우리에게 전달하려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본의 아니게 구속과 진리란 말을 남용하게 된것 같으나 종교에 관한 해석이니 상징적 표현의 통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라 일축하겠다.
그리고 아셴자리 신도들은 제발 해석이 틀렸다고 집으로 찾아와 물건에 저주 좀 걸지 마라.
펜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망할놈들아
-《흥미로운 신화전집》에서 발췌-
재만
더줘 - dc App
새거는 아닌데 더 가져옴
이런거 올만이다 개추
개추 - dc App
두번째줄부터 거름 어휘력 ㅆㅎㅌ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