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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다른 농담을 보면서 좀 진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음.

요즘 시대에 이 글이 필요할 정도의 로그라이크 뉴비가 얼마나 되겠냐마는, 로그라이크갤은 내 일기장이므로 마음 편하게 적도록 하겠음.


일단, 돌죽이 기준이긴 한데 다른 로그라이크 게임도 마찬가지임.





메타진행구조가 없고 퍼마데스가 적용된 로그라이크는 알다시피 유저와 소스코드 말고는 딱히 성장하지 않아.



근데 이게 짧으면 2시간, 길면 10시간씩 박은 캐릭터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증발한다는 게 사람에게 꽤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주거든?

그러면 이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안 할수가 없더라. 죽어도 괜찮다. 어차피 로그라이크는 죽으면서 성장하는 거 아니겠느냐.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게 돼.


소울라이크 게임에서는 n트 박다보면 패턴도 외우고 패링 타이밍도 외우면서 조금씩 밀어지기 마련이잖아? 깨기 전에 접지만 않으면 깬다고. 



근데 로그라이크 게임은 소울라이크에 비해 연습이 필요한 요소는 거의 없지만,

대신 배우고 익혀야 할 요소들 자체가 오목이랑 바둑의 경우의 수 차이 만큼 차이가 나는 게임이라서, 저 마인드로 플레이하면 과장 안하고 연 단위로 3룬클도 못해볼 수 있어.


왜냐면 턴제 게임에서 유저의 성장은 그냥 트라이를 박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매번 이해하고 넘어가야 이루어지니까.

 

아직 n층이니까, 이번에는 초반에 템이 별로 안 나왔으니까. 그런 이유로 조금만 답답하다 싶으면 그냥 다음장 보자는 생각으로 대충대충 넘기다 보면, 오탭질 안 했으면 죽을 일이 없었던 곳에서 픽픽 죽어나가고, 역경에 저항하는 건 시도조차 하지 않고, 대충 탭질하다 이기면 좋고 아님 말고 마인드로 도박적인 싸움만 반복하게 되거든.


적어도 나는 그랬어.



그것만 반복하다 보니 좋은 기회가 왔을 때에도 약간의 역경을 견뎌내는 방법을 익히지 못하고, 머리로는 알아도 관성적으로 플레이 하다가 죽고 그러게 되더라.




그러니까 마인드를 바꿔보자.


자격증 시험 치면서 '이번에는 분위기만 보려고 왔어요' 하는 것 처럼 던전으로 마실나가지 말고, 위기의 순간일수록 마지막까지 저항해보자고.

시험에서 너무 어려운 문제가 나와서 못 풀 것 같아도, 생으로 찍으면 1/5 확률일 거 2/5 확률로 만들어보려고 내가 아는 선에서 걸러낼 오답 없나 고민하는 그런 거 있잖아?


대부분의 경우 그러다 죽겠지. 어쩌면 탭 꾹 눌러서 살아남았을 확률이랑 비슷할 수도 있어. 왜냐면 네 생각이 정말 나쁜 판단일 수도 있거든.



근데 그렇게 죽으면, 내가 이번 판에 왜 죽었는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잖아.

'하.. 이번판 또 안일사했다' 라고 갤에 글 쓸 시간에 말야.


탭질보다 못한 선택지를 골랐으면 이 게임은 즉각적으로 너한테 피드백을 먹일 거고, 그 결과를 본 너는 다음부턴 그러지 않게 되겠지.

죽은 다음에야 인벤토리에 수목화의 물약이 보일 수도 있고, 저 녀석 한테는 주력기를 날리는 대신 이 주문을 썼으면 이겼을 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네가 고른 빌드, 아이템, 신앙이 네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어.



인벤토리를 보면 한숨만 푹푹 나오는 상태로, 다이스 갓의 농간으로 좋은 포션과 스크롤을 크게 소모해버린 어정쩡한 초반에 에롤챠에게 추방을 맞은 상황이라면, 분명 여기서 필사적으로 플레이해도 살아남아서 좋은 아이템으로 보상을 받아서 첫 올룬클과 금의환향 할 가능성은 높지 않겠지.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한 턴까지 버티다 보면,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실력을 가진 네가 남을 지도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