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달려라 하니의 마지막 영화관 관람을 마치며... 간만에 1차 관람 때의 초심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 평론가들이 말하길 영화를 볼 때 스스로 ‘왜?’ 라는 질문을 멈추지 말라고 한다. 해당 장면이 왜 저렇게 만들어 졌는가, 어째서 저 소품이 들어가고 어째서 구도가 저런지 등을 스스로에게 묻다 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르지만 이번 글에서는 나쁜 계집애: 달려라 하니의 몇몇 상징들과 연출에 대해 스스로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찾아본 답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품 전반에 대한 스포가 있으니 유의하길 바란다.






1. 교복



작품 중반의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 홍대런. 예고편에서도 비중 있게 나왔고 대다수의 관람객들도 이견 없이 호평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장면을 볼 때마다 종종 이런 질문이 들곤 한다.


[왜? 어째서 교복을 입고 뛴 거지?]


곧바로 떠오르는 답은 그야, 작품의 비주얼적인 요소 때문이다.


하니와 나애리의 작중 복장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달리기 때 입는 운동복(소위 전투복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는 일상복(나애리의 경우 돌핀 팬츠와 붉은 저지. 하니의 경우 후드티에 청바지). 그리고 세 번째가 교복이다.


모처럼 준비한 3가지 주요 복장인 만큼 제작사는 3가지의 달리는 모습 모두를 영화 안에 넣고 싶었을 것이다. 

이중 운동복은 에스런을 위한 훈련과 하이라이트인 에스런 대회에서, 일상복은 영화의 첫 부분과 나애리의 개인훈련 및 하니의 길거리 에스런 장면에서 사용된다.



--전투복을 입은 훈련의 나날들--



--일상복으로 대결에 임하는 두 사람--



하지만 교복은 입는 곳이 학교라는 특성상 달리는 장면을 넣을 수 없다. 교내 복도에서 하니와 나애리가 전력질주를 했다간 이번에야말로 정말 선생님께 정학을 당할 테니 말이다.



--혼나는 두 사람--



그렇기에 홍대런인 것이다. 교장실 앞에서 벌을 서던 두 학생들을 그대로 홍대로 데려가 3판 2선승의 마지막 대결을 시키는 것이 시놉시스이기에 '옷을 갈아 입힐 새도 없이 바로 경주를 하게 되었다'는 설정으로 교복런 장면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작품의 외향적인 요소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 내적인 요소로 들어가 또 한 번 생각을 해보자면, 우리는 교복이란 어떤 옷인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모두들 한 번쯤은 학생들이 교복을 입게 된 이유에 대해 들어 봤을 것이다.


학생 간의 위화감을 지양하고 통일성과 소속감, 유대감을 함양하기 위해 모두가 같은 디자인인 교복을 입는다는 말을 학교 선생님들께 분명 들어봤을 것이다.


홍두깨에게 필요했던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너무나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두 명의 학생들. 비록 개그적 요소긴 하지만 둘이 합체, 즉 화합할 수 있다면 분명 굉장한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하는 것은 한 사람의 전 육상선수이자 코치로서 당연한 기대일 것이다.


하지만 빈말로도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는 두 학생. 결국 쌓이고 쌓인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하고 폭력 사태에까지 이르자 홍두깨는 코치보다도 우선 '선생님'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구태여 에스런처럼 길거리에서 승부를 보게 하는 것은 모두가 제각각인 수많은 군중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같은 옷을 입은 또 하나의 상대를 바라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수 없이 지나치는 무수한 사람들 속. 달리기를 멈출 때까지 변치 않는 것은 나와 함께 달리는 경쟁자이자 동료라는 것을 같은 옷을 입은 두 사람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과연, 하니와 나애리 두 사람에게 은연중에 그 효과가 나타난다.


하니는 나애리가 넘어진 틈을 타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을 만큼 앞서갈 수 있음에도 일부로 멈춰 선다. 메롱~이라는 명백한 도발을 날리지만 그 도발의 숨은 뜻이 '힘 좀 더 내봐', '이대로 쉽게 이기진 않겠다', '좀 더 정정당당히 너를 꺾겠다'라는 것을 관객들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하니가 나애리를 무조건 짓밟아야 하는 나쁜 계집애가 아닌 한 명의 경쟁자로 여겨가고 있음이 메롱 하나로 나타나는 것이다.



--굳이 달리다 멈춰서서 돌아선 하니. 이후 혀를 삐죽 내밀긴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그녀 나름의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한편 나애리는 자신의 패배 후 '분한데 즐겁다'는 기존의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된 감정을 느낀다. 그 후 나애리는 선언한다. "한 번 더해." 꼭 이기고 말 거라고. 



--어쩌면 하니와 나애리 모두에게 자신과 대등한 수준으로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또래 학생은 지금껏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니는 빛나리 육상부의 유일한 여자부원이라서, 나애리는 육상계의 별이라 칭해지는 자신을 따라잡을 만큼 빠른 학생이 없었기에--



적에게 지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적이 아닌 동료나 친구에게 진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어느새 하니와 나애리는 서로를 배척해야만 하는 적이 아닌 동질감을 가진 상대로 여기고 있음이 교복을 입고 달린 홍대런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작중 교복은 하니와 나애리의 동질감과 동료의식, 유대감 회복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2. 풍선껌



"너, 정~말, 재미없게 달린다."


주나비가 첫 등장에서 하는 대사와 함께 푸우~하고 풍선껌이 부풀어 오른다.


주나비의 풍선껌이야 작중 내내 등장하는 장면이기에 그리 특별한가 싶겠지만 역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주나비는 왜 풍선껌을 불까?


껌을 왜 씹냐니? 라고 물어도 사실 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하니의 대사를 빌려와 각색하자면 '껌을 씹고 싶어서 씹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 일 테니까 말이다.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조금 더 자세히 질문을 바꿔보자.


[주나비는 '어떠한 상황'에서 풍선껌을 부는 걸까?]


이 질문을 하는 건 주나비라 한들 언제나 풍선껌을 불고 있지는 않다는 데 있다.


우선 껌을 씹는 행위는 사회 통념상 엄격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오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가능한 일이고 그렇기에 상시 껌을 씹는 캐릭터는 늘상 자유롭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불량스럽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주나비는 분명 건들건들하고 능글맞으며 거칠기까지 한 불량아 스타일이다. 거친 대사와 대담한 의상, 그리고 풍선껌으로부터 이러한 이미지를 구축한 캐릭터이다.


하지만 이런 주나비라고 한들 언제나 풍선껌을 불진 않는다.


가령 나애리와의 첫 만남, 경찰서 장면, 하니의 부상 장면 등에서 주나비는 특유의 비릿한 미소와 함께 풍선껌을 분다.


반면 달릴 때, 암벽등반을 할 때, 에스런에서 터치를 대기할 동안 등엔 이런 풍선을 부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각 장면의 공통점을 찾자면 그 이유는 명확해진다.


주나비는 나애리에게 처음으로 도전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 자세를 보인다. 경찰서에서는 도망친 자신과 달리 경찰서까지 끌려왔다 훈방된 하니와 자신에게 한 번 졌던 나애리에 대해서 조롱하는 모습을, 그리고 남산의 차량 안에서는 부상을 입고 뒹구는 하니에 대해 비웃는 자세를 보인다.



--"결과가 뻔~해졌네요?"--



종합하자면 이는 자신이 시시함을 느낄 때, 그리고 상대를 조롱할 때 나타나는 행동인 것이다. 주나비의 풍선껌은 이러한 자신의 무료함과 따분함의 표출이며, 더 직접적으로 말해 눈 앞의 상대를 얕볼 때 드러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을 곧바로 풍선껌을 불지 않는 때에 대입하면 주나비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흡사 스릴 중독자와도 같이 에스런이나 암벽 등반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주나비. 이 때 만큼은 주나비는 풍선껌을 불지 않는다. 이미 그 자체로 자신의 따분함을 날려버리고 충분한 자극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특이한 건 마지막 2번 주자로서 이서연의 터치를 기다릴 때다.


분명 달리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는 건 주나비의 입장에선 따분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나애리보다 다람쥐 쪽이 더 재밌었을 거라니, 나애리에게 그녀는 자신을 이기지 못한다느니 트레쉬 토크를 계속해서 건네는 모습은 자신감의 표현이자 상대를 얕보는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속마음도 과연 그랬을까?


대회 시작 전만 해도 이서연과 함께 기다리며 불고 있던 주나비의 풍선껌은 터치를 기다리는 동안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자신의 도발에 "시비 거는 건 자신이 없어서지? 왜, 내가 무서워?" 라는 나애리의 응수에 안광을 번뜩이며 신경질적으로 웃는 모습을 보인다.



--"무섭게 달리는 게 뭔지 곧 보여줄게!"--



결국 주나비는 어쩌면 나애리의 도발처럼 은연중에 긴장을 하고 있었다고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비공식 승부에선 두 사람에 대해 각각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보인 그녀지만 어떠한 압박감 때문인지 실제 공식 경기에선 그때만큼의 여유를 갖지 못했고, 이것이 ‘너 따위가 육상계의 별이라고?’ 라는 열등감이 담긴 표현이나 나애리의 선전에 놀라 120도 커브에서 실수를 하는 모습으로 발현된 것이다.



--평정심을 잃고 실수하는 주나비--



이는 역설적으로 보자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주나비의 배경에 나애리와 하니를 공식적으로 꺾어야만 하는 어떠한 사연이 있음을 짐작게 하는 부분이다.


주나비의 상태표시 역할로서 풍선껌은 이러한 그녀의 캐릭터성과 내면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3. 왼발



나쁜 계집애: 달려라 하니를 수 차례 관람한 관람객이라면 다음의 퀴즈들을 풀어보자


하니가 과거에 부상 당한 발은 어느 쪽 발인가?

주나비가 저녁 에스런 당시 하니의 발을 걸은 건 어느 쪽 발인가?

주나비가 골인 직전 마지막 순간 나애리의 발을 걸은 건 어느 쪽 발인가?


질문의 의도를 눈치챘겠지만 세 질문의 답은 모두 ‘왼발’로 같다.


사실 답이 왼발이냐 오른발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묻고 싶은 건 [왜 작중에서 시련을 겪는 순간의 모든 발을 ‘같은 발’로 설정했느냐]다.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하니의 치명적 약점. 주나비라는 새로운 도전자와 얽히는 때. 하니의 의지를 이어받아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나애리에게 가해진 마지막 시련. 

이 모두가 같은 발로 설정되어 있는 것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3년 전 하니가 접질리며 부상 당한 왼발은 그녀가 단거리 육상계로부터 은퇴해야 할 만큼 큰 부상이었다.


전작을 기억하거나 작중 과거 회상 장면에서 하니가 부상 당했음을 기억하는 관람객이라면 마음속 한편에 해소하지 못한 불안을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야, 꼬맹아. 너 그 다리로 날 이길 생각이니?"--



과연, 하니의 부상은 완치가 된 것일까? 이제는 부상 걱정 없이 달려도 되는 몸일까?


주나비와의 첫 만남에서 갑작스레 발을 걸렸음에도 아슬아슬하게 착지하는 모습, 홍대런 당시 대로변 쪽으로 턴하며 강조되는 내딛기 전의 왼발과 무사히 턴을 할 때 안도하는 하니로부터 걱정할 필요 없는 듯 하면서도 해소 못한 불안감을 느낀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얼핏 보면 급격히 턴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잡기 위한 다급함으로 보이지만 다시 보면 왼발을 신경 쓰는 초조함으로도 보인다--



결국 중후반, 하니의 부상이 재발하며 대회의 참가마저 불투명해지는 상황이 다가온다.


또 한 번 발에 입은 부상이 자신의 발목을 잡으려는 순간,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하니의 곁에 나애리가 있었다. 


나애리와 티격 대며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서 어느새 하니와 나애리는 서로의 각오를 이해하고 각자의 의지를 맡길 수 있는 하나의 팀으로 성장한다. 


나애리에게 에스런과 관련된 여러 팁을 전수하며 자신 대신 주나비를 꺾어주길 바라는 하니의 마음은 ‘즐겁게!’ 라는 바람을 담아 그녀에게 전달된다.


경기의 후반. 결국 나애리를 다시 따라잡은 주나비가 그녀의 왼발을 거세게 걸어 재끼며 나애리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주나비의 레드카드성 태클--



어쩌면 나애리마저 하니처럼 왼발을 접질리며 패배하고, 나아가 선수 생명에까지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하니가 외친다.


“달려라, 애리!!”


하니의 응원 덕분일까? 나애리는 찰나의 순간을 넘어지지 않고 버텨낸다.


하니가 부상 당한 바로 그 왼발로. 


그리고는 역시 왼발로 추진력을 얻어 자신의 소실점을 향해 마지막 질주를 해낸다.



--'내가 비틀거린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고!'--



이렇게 같은 발에 가해지는 고통은 같은 시련을 겪는 동료이자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두 사람의 동질감의 드러내지만, 동시에 하니와는 달리 무사히 부상 없이 완주를 해냈다는 점에서 나애리의 안정적인 서사를 완성하는 차별점이기도 하다.






4. 색깔  



또 하나의 퀴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잠시 기억을 되살려 다음의 질문에 답해보자.


[나쁜 계집애에 나온 하니와 나애리의 운동화 색깔은?] 


고민할 것도 없이 각각 붉은색과 검은색이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달리기 선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물론 신발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운동화 디자인이나 색깔 등엔 자연스럽게 제작진의 의도가 담길 수밖에 없다.


하니의 붉은색 운동화야 오래전부터 그랬지만, 나애리의 운동화가 이번 작품에서 검은색인 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왜? 색깔을 검은색으로 했을까?


여기서 붉은색과 검은색이라는 색상에 대해 또 하나 떠오르는 게 있다. 캐릭터 디자인을 유심히 봤거나 LP펀딩 소개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나애리의 눈동자가 이번 작품에서 붉은색으로 새롭게 디자인 되어 있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나애리의 붉은 눈동자와 하니의 붉은 운동화.


나애리의 검은 운동화와 하니의 검은 눈동자.


재미있게도 서로의 눈동자 색과 상대의 운동화 색이 서로 대응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캐릭터 디자인을 새롭게 하면서 나애리의 눈동자 색을 하니의 운동화 색으로, 그녀의 운동화는 하니의 눈동자 색으로 맞춘 것은 분명 두 인물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 해석이 가능하다.




--서로의 눈동자와 운동화는 정반대의 색을 띄고 있다--



하니와 나애리는 과거로부터 3년, 서로를 만나지 않은 채 지내온 것이 암시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를 다시 만나면 무언가가 변할까?' 라는 독백이나 단거리로 복귀하면 "나애리와 다시 붙는 거야?"라는 반 친구의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에서 서로를 계속 의식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눈동자란 바라보는 것. 그리고 운동화란 달려나가기 위한 것.


결국 서로의 눈동자에 담겨 있는 것은 달려나가는 상대방의 색채.


서로를 만나지 않았지만 같은 달리기의 세계에서 상대가 달려나가는 모습만큼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그리고 의식하고 있었다는 암시가 가능한 장치이다.


‘어쩌면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우연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다음엔 이 질문에 답해보도록 하자.


[하니와 나애리의 머리장식 색깔은?]


역시 답은 어렵지 않다. 나애리의 노란색 머리띠와 하니의 붉은색 하트 머리핀이라는 답은 쉽게 나온다.


여기서 또다시 캐릭터 디자인의 변경점을 짚고 가보자. 


과거 애니메이션 방영 당시 나애리의 머리띠는 파란색, 하니의 머리핀은 분홍색이었다. 이것을 나쁜 계집애 버전의 캐릭터 디자인을 새롭게 하며 캐릭터의 상징과 같은 장신구 색을 의도적으로 새롭게 바꾼 것이다. 



--보다시피 두 사람의 머리장식 색깔은 지금과 달랐다. 나애리야 고등학생이 되며 머리띠를 바꿨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하니의 엄마 유품이 바뀔 리는 없으니 의도적인 디자인 변경이라 봐야 할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정말 흥미롭게도 새롭게 디자인한 이 색깔들은 제작진이 준비한 각자의 운동복과 서로 대응된다. 즉 나애리의 붉은 크롭탑, 하니의 노란색 슬릿 후드티가 역시나 서로의 상대방 머리장식 색과 대응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장신구는 사적인 영역이지만 운동복은 비교적 공적인 영역의 아이템이다.


엄마의 유품과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머리장식. 이러한 사적인 상대방의 표식을 자신의 운동선수로서의 얼굴과도 같은 운동복 색깔과 맞춘다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행위이다. 자신과의 어떠한 공통점도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상대방이 치가 떨릴 만큼 싫다면, 자신의 운동복을 바꿔서라도 차이를 만드는 것이 사람의 심리일 테니 말이다.



--가령 나애리가 하니를 정말로 증오하거나 혐오했다면 구태여 미나 패거리의 등장에 사냥꾼에게서 사슴을 숨겨준 나무꾼 역할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눈동자와 운동화, 머리장식과 운동복은 상대방을 부정하지만 사실은 서로를 의식하고 닮아 있다는 걸 은연중에 보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서로가 앙숙과도 같지만 사실은 서로를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으며 결국 진정한 라이벌은 서로를 은연중에 닮아가는 것이라는 메타적인 메시지를 아이템들의 색깔로 담아낸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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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 드디어 유튜브 vod 구매버튼을 눌렀다.


어디서나 하니와 나애리를 볼 수 있다는 기쁨은 있지만 어딘가 아쉬운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