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늦었지만, 23년 JTBC 마라톤 후기를 올립니다.

이전의 풀코스 경험과는 다르게 일차적인 목표의 달성을 실패하였기 때문인지 후기가 쉽게 적히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가장 느렸던 이번 마라톤이 제게는 가장 소중하게 기억되는 마라톤이 될 듯합니다.

근육통이 회복되고 나면, 다시 내년의 동아마라톤을 위하여 힘차게 달릴 생각입니다.


많은 훈련과 노력으로 대회에서 열정을 불태우신 모든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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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발 전

숙면을 취했다. 일어나 보니 시각은 4시 10분.


항상 그래왔듯 대회의 아침식사는 식빵 두 쪽 반이다. 저지방 우유와 함께. 혹시라도 소화에 어려움이 있을까 봐 매일 먹던 삶은 계란은 먹지 않는다. 대신, 대회에서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고 싶은 마음에 설탕이 가득 든 딸기잼을 듬뿍 빵에 발라먹는다.


일반 커피와 디카페인 커피를 반씩 섞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려먹으니 이내 배속에서 소식이 들린다. 좋은 신호이다. 화장실에 가서 기분 좋게 볼일을 마쳤다.


어느덧 집에서 나설 시간이 되었다. 미리 예약해둔 카카오택시를 타고 대회장으로 향한다. 창밖으로는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야속하게도 날씨는 너무나 포근하다.


<월드컵 경기장 아래와 물품보관트럭>

대회 출발 장소는 상암 월드컵경기장 인근이다. 신혼살림을 시작한 곳이 근처라 괜스레 반갑다. 체력을 아끼기 위하여 간이의자에 앉아있다가 6시 30분이 되자 러닝화로 갈아 신고 환복을 하였다. 22년 제마 때는 환복하고 느껴지는 한기에 온몸을 덜덜 떨었는데, 오늘은 아무렇지 않다. 찾아보니 22년 제마 때는 출발 온도가 4도였더랬다.


7시에 카페인 알약을 한 알 삼키고 대회장을 향해 이동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광장과 대로에 모여있다. 대로 근처 화장실에서 마지막까지 소변을 보고 출발대 앞에 선다.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빌며 오픈핏을 연결했다. 어느덧 사회자의 안내 멘트가 들린다. 이제 출발이다. 성호를 긋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2. 시작

계획한 대로 미리 봐둔 3:00 페이스메이커를 따라갔다. 22년 대회 때보다 왠지 모르게 사람이 더 많은 느낌이다. 부대끼는 사람을 이리저리 피해 달려나가는데, 야속한 페이스메이커는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달려나간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스메이커의 풍선이 뜯어져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페이스메이커와 처음부터 같이 달렸던 사람들 말고는 3:00 페이스메이커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나야 처음부터 그를 따라 달렸고, 올해 동마에서도 그를 본 적이 있기에 다행히 계속 같이 갈 수 있었다.


양화대교를 건너 여의도 남단에 이르자 길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저번 대회만 해도 이렇게 병목이 있지는 않았던 기억인데,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내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더욱 체력이 빨리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마포대교로 오르는 야트막한 언덕부터 숨이 차다는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원래 이 속도에서 이 정도로 힘이 들면 안 되는 것이다. 더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페이스를 조절해야만 하는 대회 초반부에, 이런 느낌이 들면 안 되는 것이다.


이미 머리로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으나, 전략을 금방 수정할 수 없었다. 달리다 몸이 풀려서 대회 중에 컨디션이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쉽게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꾸역꾸역 페이스메이커를 따라갔다.


마포대교를 건너고 나면 애오개 고개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시각적 강렬함 때문에 천호대교 직전의 터널로 올라가는 오르막을 제마에서의 가장 어려운 코스로 꼽으나, 실제로는 애오개 고개가 가장 높은 경사의 오르막이다. 애오개 고개를 지나고 나니 눈에 띄게 체력이 빠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진짜 힘이 든다. 종로로 접어들고 야트막한 내리막이 시작되자 페이스메이커 그룹은 4:10 페이스를 유지한다. 그들에게는 그게 쉬웠으리라. 나도 8개월 전에는 쉬웠다. 서에서 동으로 종로를 관통할 때 4:05 페이스를 내기가 어렵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쉽지 않다.

버티고 버티다 동대문쯤에 다다랐을까? 페이스메이커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3. 위기

페이스메이커를 떠나보냈다는 것은 대회의 첫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서브-3를 포기하였다는 뜻이다. 만약 대회 전에 완주를 다짐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멈추고 집으로 갔을 것이다. 마침 매일 훈련하던 정릉천 다리 위에 있던 시점이기에 방향만 틀어 15분만 달리면 집에 갈 수 있었다.


완주라는 두 번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그런데 한번 둔화된 발구름은 끝도 없이 처졌다. 어느덧 실시간 페이스는 4:40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 컨디션이 좋을 때의 조깅 속도보다도 못한 속도였다. 많은 주자들이 나를 추월해 나가는 것을 묵묵히 직시하였다. 하강하는 속도를 멈추기 위한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Positive split strategy, 즉 초반에 시간을 벌고 후반에 유지하는 전략이 얼마나 허황된 계획인지 많은 러닝 사이트나 교본에서 강조한다. 완주를 위해서 나는 의도치 않게 positive split으로 달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초반에 무리한 페이스로 상당 기간(약 16km)을 지속했기 때문에 후반부에는 더욱 페이스가 둔화될 것이고 나는 고통의 시간을 더욱 오래 견뎌야 할 것임은 자명했다.


어린이대공원역을 지날 때 즈음 역 출입구로 바로 들어가는 한 명의 주자를 보았다. 이번 대회 최고의 사점이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도 따라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는 마치 없었던 일처럼 잊고 싶었다.


그러나, 발은 계속 쉬지 않고 구르고 있었다.


4. 회복

대회 초반 급수대에서 다른 주자와 몸이 부딪혀 오픈핏 한쪽은 이미 내 왼쪽 귀에서 탈출한 상황이었다. 오른쪽 귀에서만 미리 선곡해둔 신나는 kpop이 계속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회를 위해서 준비한 경쾌한 곡들이었다. 플레이리스트를 einaudi의 곡들로 바꾸었다. 평소 조깅할 때 듣던 곡들이다. 억지로 텐션을 유지할 시기는 지나갔고 그럴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비가 내기기 시작하였다. 가쁜 숨이 잦아든다. einaudi의 곡들은 실망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실시간 페이스가 조금씩 오른다. 170까지 올랐던 심박이 150대로 낮아졌다.


천호대교를 건너고부터는 4:30 페이스를 회복할 수 있었다.



5. 그리고 마라톤

둔촌동 즈음에 이르자 레이스 초반처럼 숨이 찬다는 느낌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출발지로부터의 거리가 30km를 넘기 시작하였기에 대회의 진짜 복병인 양 다리에서의 피로감이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주로 양옆에 엄청나게 많은 응원 인파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러닝크루, 마라톤클럽 등에서 나온 응원단들이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자신의 크루가 아닌 주자에게도 기꺼이 준비해온 보급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기에, 준비해온 에너지젤을 섭취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 이에, 감사하게도 한 응원단이 건네주신 꿀물 약병을 하나 받아 마셨다. 그렇게 한동안 달리고 나니 탄천이 보이기 시작했다.


탄천에 들어서니 이미 반환점을 지나는 주자들이 보인다. 이제 가공할 만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심박만을 보았을 때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다. 사실, 이미 러닝 폼도 조금 이상하다. 아마도 이번 대회가 끝나면 근육통이 상당 기간 지속되리라.


반환점을 돌고 달리다 보니 누가 옆에서 "OOO 파이팅"이라고 내 이름을 부르며 목소리가 떠나가게 큰 응원을 보낸다.

갑자기 얼굴이 울상이 돼버리고 말았다. 토라진 어린아이가 엄마의 품에서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들으면 이내 울음이 터지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마지노선이라 생각했던 목표의 실패, 그 실망감. 그럼에도 완주를 해야 하기에 버텼던 고통들은 불과 두어 시간 남짓이었으나 내게는 꽤 힘든 시간이었던 듯하다. 물론, 생리학적 측면에서 지속되는 피로와 낮아진 혈당 때문에 전두엽의 감정조절기능에 다소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단순히 치부할 수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순간에 내가 온전히 마라톤을 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젖은 신발, 피로한 다리를 안고 완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나의 주제와 사건만이 존재하는 짧은(10km, 하프) 레이스와는 다르게, 마라톤에는 서사가 있다. 누가 말했듯, 대회를 준비하는 개인만의 삶에서의 서사가 있으며, 대회 안에서도 3~5시간 동안의 서사가 존재한다.


주로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깨달았던 듯하다. 이번 마라톤의 기승전결에서 위기와 절정을 이미 넘어갔다는 사실을. 조금만 더 버티면 완주라는 결말에 이를 수 있음을 말이다.


39km 즈음에 이르자 초반부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뛰던 같은 그룹의 주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 역시도 대회 중반 어디 즈음에서 페이스메이커를 보내주고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대부분 나보다도 더 연배가 있으신 주자들이었다. 목표를 놓치고도 완주를 향하여 멈추지 않고 달리시는 어르신 주자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보내며 그분들을 앞서나가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1km는 더욱 힘을 내어 달렸다. 피로한 다리를 쿵쿵대며 마지막 스퍼트를 하여 골인하니 시계에는 3시간 6분 12초가 찍혔다. 나중에 휴대폰으로 온 문자를 보니 최종적인 기록은 3시간 6분이었다.



6. 다시 집으로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기록을 묻는다. 3시간 6분이라고 답해주었지만, 별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눈치다. 아들이 다시 물어본다.

"아빠, 몇 등 했어?"


"응, 583등이네" (최종 순위는 584등인데 당시에는 583등으로 찍혀 있었다.)


아들의 입꼬리가 금세 내려가며 시무룩해진다. 아들 기준에서 500이라는 숫자는 너무 큰 것이고, 평소 10등 정도 되면 꼴찌라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아빠의 등수가 꽤나 실망스러웠던 것이리라.


빙긋 웃으며 아들에게 답하였다.


"마라톤은 정말로 정말로 특별해. 다른 경기와는 달라.

마라톤에서는 완주한 사람 모두가 일등이야. 이렇게 번쩍이는 메달도 주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