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이키 플렉스 컨택트3
뛰는 재미를 살짝 알아갈 때쯤 예전부터 신던 일반 운동화를 벗어나 뭔가 전문적인 러닝화를 신고 싶어서 가까운 나이키 아울렛 매장에 갔다. 러닝 코너에 놓인 휘황찬란한 러닝화에 눈을 뺏겼다가 가격을 보고 퍼뜩 정신이 들더라. 그러다 저 구석탱이에 있는 (잘 기억은 안나지만) 5만원 미만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 운동화와는 다는 니트 소재의 갑피에 힐컵 부분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상하로 움직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바로 이거다 싶더라. 물론 가격이 싼 게 제일 맘에 들었고 뭔가 내가 전문적인 러닝화를 신었구나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요소들이 있었다. 특히 언덕길을 달릴 때 힐컵이 자연스럽게 상하운동을 해서 "아 이게 기술력이란 걸까?"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2. 나이키 줌 플라이3
5km에 성공하고 10km에 간신히 도달할 무렵, 사실 이때가 가장 도파민 풀충전되더라. 러닝이란 거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싶더라. 다시 나이키 아울렛 매장으로 가서 나이키 공식홈 회원만이 살 수 있다는 문구마저 우쭐하게 만드는, 이전 러닝화 가격의 무려 5배 정도되는 이 신발을 질렀다. 신세계더라. 쿠션이 쫀득한 느낌이 뭔지 알려줄 게 바로 줌 플라이 3다. 이 러닝화는 내게 평생 못 잊을 첫사랑과 같다. 첫 10km 대회, 첫 하프 대회, 첫 풀코스 대회, 모두 이 신발과 함께 했다. 그런데 달사남 같은 유튜버는 이 신발에 저주를 퍼붓더라. 톱으로 썰기까지 하더라^^ 그걸 보면서 러닝화는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인 걸 깨달았다. 유명한 리뷰어라도 참고만 할 뿐 직접 신어보고 판단하는 게 답이다. 줌 플라이3는 다시 구할 수만 있다면 몇 켤레 쌓아놓고 평생 신고 싶다. 그 쫀득한 쿠션감, 조금 묵직하지만 가속도가 붙으면 진짜 안정감 있는 세단을 운전하는 느낌이다.
3. 써코니 앤돌핀 프로2
정말 좋은 레이싱화다. 이 신발은 매번 내 능력이 신발의 능력보다 떨어지는구나 하고 느끼게 했다. 한껏 가볍고 탄성이 뛰어나 나도 모르게 질주하다 부서질 것만 같은 느낌. 좋게 말하면 이게 바로 질주하는 맛을 알게 하는 신발이고, 나쁘게 말하면 안정성은 떨어진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2번의 줌 플라이3와 비교해서 느낌 점이다. 여러 모로 줌 플라이3와 엔돌핀 프로2는 대극점에 있는 카본 레이싱화다. 줌 플라이3가 묵직한 세단이라면, 엔돌핀 프로2는 쿠페 스포츠카다.
4. 호카 마하4
다 이미지겠지만 호카는 왠지 러닝에 특화된 흔하지 않은 브랜드 느낌이라 꼭 한번 신어보고 싶었다. 플릿 러너에서 슈핏 분석받고 추천받아 산 신발인데 편하긴 편하더라. 그런데 내구성은 진짜 형편없다. 아웃솔은 원래 지우개라고 불릴 만큼 잘 닳는 걸 감수했지만 힐컵 부분도 얼마가지 않아 너덜너덜해졌다. 그만큼 막 신으면서 마일리지를 높여준 신발이기도 하다.
5. 호카 카본X2
호카 신발 몇 개 더 경험해보고 싶어서, 그리고 마하4의 포근한 쿠션감을 기대하며 산 신발. 그런데 처음 신어보고 대실망이었다. 첫 느낌은 "뭐 이렇게 딱딱해"였다. 돈 아깝다는 생각만 들지 않았다면 몇 번 신고 구석에 처박아 버렸을 테지만 샀으니 신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계속 신으니 이게 장난이 아닌 신발이었다. 딱딱하게만 느껴지던 쿠션이 신을수록 점점 기분 좋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탄탄하게 고정된 바닥이 롤링을 굉장히 손쉽게 했다. 마치 자동적으로 발이 굴러지는 느낌이랄까? 찾아보니 이 신발은 50K이상의 울트라마라톤에 특화되어있다는 걸 알았고 나같이 스피드보다는 꾸준한 페이스로 지구력 싸움을 하는 러너에게 적합하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이 신발 신고 서브-4 달성했다. 이 신발은 풀코스 내게 전용이라는 생각이 들어 평소에는 전혀 신지 않고 보관해 둔다.
6. 호카 로켓X
어쩌다보니 3연속 호카 신발인데, 이게 다 나이키 베이퍼플라이나 알파플라이가 사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번 경험해보고 싶기는 한데 사람들 안달나게 만드는 그 마케팅 방식이 영 맘에 들지 않아서 계속 이런 식이면 그냥 안 사고 만다는게 내 취향인 것 같다. 그리고 호카가 가끔 세일을 많이 하는 시기와 내게 러닝화 지름신이 찾아오는 시기가 우연히 일치했던 것 같다. 아무튼 로켓X는 유튜버들이 워낙 호평을 해서 큰 고민 없이 샀는데 역시 신발은 취향이었다. 살다 살다 이렇게 무색무취한 러닝화는 처음이다. 가볍고 페이스도 높여주는 좋은 신발인 건 맞다. 그런데 재미가 하나도 없다. 어찌보면 모든 요소가 다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 내게는 한쪽 요소가 느낌이 팍 와야 뛰는 게 재밌다고 느껴지는 모양이다. 이 신발은 뛰면서 하품이 나온다^^
이상 보잘 것 없는 러닝화 연대기였는데 중요한 건 확실히 신발이 사람을 더 뛰게 만든다는 거다. 새로 산 신발 느낌이 궁금해서라도 뛰러 나가게 되니 말이다. 돈만 있다면 매일 새로운 러닝화를 신고 어떤 느낌인지 확인해보고 싶다. 그러니까 나이키는 물량 가지고 장난 좀 치지 마라.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식상하다.
이상 끝.
노력추
나도 아울렛에서 산 플렉스컨택트가 첫신발이고 아직도 헬스장용으로 쓰는데 반가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