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카본화는 베이퍼플라이 넥스트% 1 이었음. 그 전까지 러닝화의 반발력은 딱딱한 밑창에서 나오는 것이었는데 4%에 이은 베넥% 의 등장으로 이 공식은 완전히 깨지게 됐음. 물론 지금도 타사질이나 타사재팬이 훌륭한 반발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베넥% 나 아디오스 프로, 메타스피드 스카이 같은 러닝화를 따라갈 수는 없지.


보통 카본화를 신으면 기록이 엄청나게 단축된다고 함. 반발력이 워낙 크니까. 근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을 잘 못하겠음. 일정 수준에 오른 러너(130 정도)라면 정말 넉넉하게 잡아도 하프 기준 평균페이스 5초 이상 단축하기 힘들다고 봄. 5초도 사실 말이 안됨. 3초 정도는 단축되려나? 나 같은 경우에도 10k 나 하프나 카본화를 신었을 때랑 일반 미니멀 레이싱화를 신었을 때랑 기록에 큰 차이가 없었음. 컨디션에 따라서는 미니멀 러닝화의 기록이 근소하게 나마 빨랐던 적도 있었음. 반발력도 크게 체감이 안됐음. 체감상 레이싱화도 그 정도 반발력은 줬다고 느꼈음.


근데도 내가 카본화를 즐겨 신는건 카본화가 충격을 흡수하는 정도가 진짜 미친 수준이기 때문임. 아무리 단련이 잘 된 러너라도 타사질 신고 15k 뛰면 무릎 쪽이 얼얼해짐. 근데 같은 사람이 베넥이나 메스스 신고 15k 뛰면 무릎이 뽀송뽀송함. 과장 좀 보태면 다 뛰고 나서도 숨만 차지 다리는 멀쩡해서 뭐 뛰었다는 생각이 안들 정도임. 


이 점에서 최상위 엘리트 레벨 선수와 마스터즈 선수 간 카본화에 대한 체감 차이가 나는게 아닌가 싶음. 카본화가 없었을 때 키메토는 미니멀 러닝화를 신고 2시간 2분대를 뛰고, 카본화가 생긴 이후에 킵초게가 4년 만에 1분10초 정도를 줄였음. 근데 사실 따져보면 마라톤 세계신기록은 줄곧 4-6년 텀을 두고 1분 10초 정도씩 단축되었음. 예를 들어 호나우두가 2:06:05를 뛰고, 5년 뒤 폴 터갓이 2:04:55를 뛰고, 5년 뒤 게브시엘라에가 2:03:59를 뛰고, 6년 뒤 키메토가 2:02:57을 뛰고, 4년 뒤 킵초게가 2:01:39를 뛰었음. 이렇게 놓고 보면 카본화가 마라톤 기록 단축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지 의심이 됨. 그냥 훈련법의 진화로 카본화가 있기 전에도 선수들은 5년 정도가 지나면 세계기록을 1분 넘게 단축해왔음. 심지어 현재 로드 10k 세계신기록은 미니멀 레이싱화를 신고 세운 기록이지. 엘리트 레벨에서는 카본화가 기록 단축에 최선이 아니란 것임.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는 솔직히 잘 모르겠음. 다만 엘리트 레벨에 비해 마스터즈 레벨 선수들이 카본화를 신었을 때 기록 단축의 폭이 커지는건 사실인듯 함. 개인적으로 추측해보면 엘리트 선수들은 미니멀 레이싱화를 신어도 그 반발력을 유지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역동적인 러닝폼을 유지할 수 있어서 그런듯 함. 이게 무슨 소리냐면 위에서 말했듯 카본화가 사기인 이유는 충격 흡수력이 미친 수준이기 때문임. 뛰어 보면 알겠지만 다리에 데미지가 거의 쌓이지 않음. 근데 엘리트 선수들은 매우 튼튼한 하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니멀 레이싱화를 신어도 10k든 하프든 마라톤이든 그냥 처음 자세 그대로 밀고갈 수 있다는 거임. 


마스터즈는 이게 안됨. 심지어 카본화를 신어도 데미지가 쌓여서 뒤로 갈 수록 점점 퍼짐. 마스터즈 입장에서는 다리에 데미지가 얼마냐 덜 쌓이느냐가 엘리트 보다 기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임. 예를 들어 똑같이 풀코스를 뛴다고 했을 때 한 명은 타사재팬, 한 명은 베넥%를 신었다면 하프 정도까지는 비슷한 페이스로 달릴 수 있음. 근데 하프를 지나면서 부터 타사재팬을 신은 사람은 다리에 데미지가 쌓여서 점점 다리가 굳기 시작하고, 베넥%를 신은 사람은 뽀송뽀송한 다리를 가지고 이전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임.


물론 이건 내 뇌피셜인데 내가 카본화를 직접 신고, 주변을 관찰한 결과 이게 최선의 설명인거 같음. 누구나 3k, 2k 같은 비교적 짧은 거리를 뛸 때면 미니멀 러닝화가 더 기록이 잘 나온다고들 함. 왜? 반발력이 좀 별로여도 역동적인 러닝폼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임. 퍼지기 전에 딱 그정도는 유지가 되는거지. 최상위 선수들은 이걸 풀코스 마라톤 까지 유지할 수 있는거고 마스터즈는 그게 안되니까(하체가 너무나도 빨리 퍼지니까) 5k, 10k 같은 짧은 거리에서도 카본화가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임. 특히 막 카본화 신자마자 페이스 20초 단축 하고 이런 사람들은 하체가 유난히 약한 런린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됨. 적어도 내 주변에서 고수들 중 카본화로 엄청난 기록을 단축한 사람은 한 명도 못봤거든..


세줄 요약

1. 카본화가 사기인 이유는

2. 반발력 때문이 아니라

3. 미친듯한 충격 흡수력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