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인대를 다쳐 달리기를 못한게 정확히 한 달이 지났다. 매 달 100KM씩 뛰어내겠다며 스스로 현관을 박차고 나간지도 7개월이 넘었건만, 부상으로 인해 못뛰어낸 지난 한 달이 내겐 밉다.


  발목은 거진 다 나았지 싶다. 발목을 꽤나 거칠게 돌려도 큰 무리는 없다. 일상으로의 복귀 내지는 취미로의 몰입이라는 타이머가 있다면 다시금 시작 버튼이 눌린 셈이다.


  물론 100KM를 뛰어내지 못한 한 달에서 ‘나의 부상’이라는 개념을 제외하고 본대도, 꼭 스스로의 성취를 이뤄냈으리라고는 장담치 못한다. 그간 폭우며, 폭염이며, 업무며, 기타 등등의 사유로 분명 피치 못할 까닭들이 산재해 있던 나날들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공식적으로 일주일이 더 지나면 난 다시금 현관을 박차고 나갈 수 있게 된다. 8월에도 폭우며, 폭염, 각종 업무들이 이어진다만 나 스스로의 까닭이 사라진 것으로도 충분한 심리적 충만감을 느낀다.


  한참 달리기를 뛰고 있던 지난 봄의 중간 즈음에서, 문득 컨디션이 안좋아 5KM 지점에서 멈추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42KM를 뛰어내겠다는 녀석이 고작 컨디션 난조로 5KM에서 멈추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러다 한 달을 달리지 못하니 나의 지난 달리기들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왜 취미에 의무감을 가졌을까?


  생각해보면 그간 다른 내 취미들도 그랬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반드시 마음에 드는 사진 3장은 건져내야 했고, 책장을 한번 넘기면 반드시 그 책을 주파해내야 했다.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자기 만족을 위한 행위들이니 말이다.


  내가 마라톤 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상금을 받으러 대회를 나가는 것도 아니다. 내가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며, 책을 읽고 내일까지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에겐 달리기로서 얻는 동적 명상, 속도감 있는 산책이 소중한 것이며, 그게 내가 추구하는 달리기의 본질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스스로에 쫓기지 말자. 스스로 벼랑 끝으로 내몰면 소중히 가꿔온 내 취미는 내 뒷걸음질에 사라져버린다.


  기다려라 주로야 더위야 비야 곧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