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육상의 도시 대구 그 곳에서 개최된

세계대학경기 유니버시아드의

하프마라톤에 참가하기로 한 브룬디의 한 대학생이 있었다


국명도 생소한 아프리카의 최빈국 브룬디 수없이 많은 아픔을 가진 그 나라에서

내전으로 인해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은 그는 한국에 입국

아픔만을 가진 그 나라에서 탈출하고자 난민신청을 하였고 2년 후인 05년도에 받아들여졌다


중소기업 공장들은 전전하며 일을 하던 그는 달리기를 통하여 한국사회에 녹아들었다

곧바로 마라톤판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활동중인 마라톤 동호회의 도움을 받아

당시 경영자인 김평기 사장의 취미에 따라 마라톤동호인들을 후원하던 전설적인 회사 '현대위아'에 입사하게된다

(사내동호회에 서브3 주자가 50명이 넘는다는 전설적인 회사 잘뛰면 취직이 가능한 낭만의 시대였다)



(런붕이들에겐 꿈같은 회사지만 당연하게도 반발도 있었다)




본론으로 돌아와 도나티엔은 나가는 대회마다 엄청난 기록으로 우승을 휩쓸었고

마스터즈의 벽 220을 깨고 보스턴마라톤을 2시간19분으로 완주

그리고 2007년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18분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현재의 어지간한 엘리트들과 붙어도 이길수있을 엄청난 기록이다


그 뒤로도 국내대회에 참가하기만 하면 우승

최근 몇년 `어차피 우승은 허드슨`이란 말이 생긴것처럼

우승내정자 취급을 받으며 국내러닝판을 휩쓸었다



그리고 11년 한국 귀화시험에 통과

재직중인 회사가 위치한 창원김씨의 시조가 되며 김창원이란 이름을 갖게된 그는 모국인 브룬디의 한 여성과 결혼하여 3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재직 중 학업에도 매진하여 박사학위까지 취득

어느덧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중년이 된 그는 올해 24년 동아마라톤에서도 2시간35분이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완주하였고

간혹 경남권 마라톤 대회에 모습을 비추며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