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달리기를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축은 러닝 이코노미입니다.

몸에 축적하고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앞으로 전진하느냐이죠.


대부분의 잘 뛰는 러너들은 가장 러닝 이코노미가 높은 자세로 뛰게 됩니다.

멋있어 보이는 그들의 자세를 뜯어보면 대부분 롤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오 롤링을 하면 러닝이 효율적이 되고 더 멋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죠.


근데 저 생각이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과연 맞는 생각일까요?




러닝은 양 발을 교대로 지면으로부터 비스듬하게 점프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결국 러닝 이코노미는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 없이 이 점프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가에 달렸죠.


각 다리는 매 스텝마다 발로 땅을 딛고, 지면을 밀고, 발을 다시 앞으로 가져오는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는 빨라지기 위해 땅을 딛고, 지면을 미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미드풋이니 리어풋이니', '땅을 발로 끌어오니 뒤로 차넘기니', '탄력있게 뛰니 수직진폭을 낮춰 깔아 뛰니' 이런식으로요.

직접적인 작용-반작용의 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 두 과정에 대해서는 대부분 직관적인 이해가 쉬운 편입니다.


하지만 '발을 다시 앞으로 가져오는 과정'은 조금 다릅니다. 이 과정은 관성의 영역입니다.

이 과정에 대해 이해를 쉽게 하려면, 다리의 '왕복운동'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면이 아닌, 달리고 있는 우리 몸을 기준으로 보면

다리는 고관절을 축으로 진자처럼 끊임없이 짧은 회전운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달리기를 할 때, 지면을 차는 힘 뿐만 아니라 이 회전운동을 위해서도 당연히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얼마나 많은 힘을 쓰게 되는지는 다리의 회전 각도(보폭과 관련 높음), 회전 속도(페이스와 관련 높고, 케이던스와도 일부 관계있음), 그리고 다리의 관성모멘트에 달렸습니다.


관성모멘트가 딱히 어려운 개념이 아니고, 다리를 일정 각도, 일정 속도로 움직이기 위해 들어가는 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롤링'의 역할은 이 관성모멘트를 줄이는 데에 있습니다.


1미터짜리, 무게 10킬로짜리 곤봉이 있다고 해봅시다. 이 곤봉의 한쪽 끝을 잡고 휘두르는 건 힘이 꽤 들겠죠?

만약 이 곤봉을 반으로 접어서 50센티미터 두개로 만들어 휘두르면 어떨까요? 훨씬 쉽겠죠?

이론적으로는 길이가 반이 되면, 똑같은 속도와 각도로 회전시키는데 들어가는 힘은 1/4이 됩니다.


제자리에 서서 한쪽 다리를 쭉 펴고 앞으로, 뒤로 스윙해보시고

무릎을 구부린 채로, 같은 속도와 각도로 스윙해보시면 들어가는 힘의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롤링은 관성모먼트를 줄이는 데에 있어 중요합니다. 그럼 롤링 좋으니까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다시 말씀드리면, 

얼마나 많은 힘을 쓰게 되는지는 다리의 관성모멘트 뿐만 아니라, 다리의 회전 각도(보폭과 관련 높음), 회전 속도(페이스와 관련 높고, 케이던스와도 일부 관계있음)에 달렸습니다.

만약 다리의 회전 각도가 적고, 회전 속도도 느리다면 (보폭이 크지 않고 페이스가 느리다면)

관성모먼트가 클지라도, 즉 다리가 구부러진 상태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다리를 앞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느릴 때는 롤링을 하지 않아도 그로 인한 에너지소모가 많이 커지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롤링을 하면 에너지가 줄어드니 이득 아님? 하실 수 있는데,

롤링을 위해서 일부러 무릎을 굽히고 펴는 데에도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위에서 고관절에 고정된 다리를 회전하는데 드는 힘을 따져본 것처럼,

무릎에 고정된 종아리, 정강이, 발을 회전하는데 별도의 힘을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페이스가 빠르다면, 그래서 땅을 찰 때 무릎이 뒤로 갔다가 앞으로 나오려는 힘이 강하다면

허벅지와 무릎을 다시 앞으로 가져오려 할 때 무릎 아래는 관성으로 인해 원래 가던 방향(지면을 밀어낸 뒷쪽 방향)으로 가려고 하니

별도의 힘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무릎이 구부러지면서, 롤링이 이루어지면서 다리가 앞으로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페이스가 느려서, 무릎이 앞으로 나오려는 힘도 약하고 속도도 느리다면

당연히 무릎 아래가 이에 저항하는 관성도 작기 때문에 순순히 따라오게 됩니다.

무릎이 덜 접힌 채로, 롤링이 거의 안 된 채로 따라오죠.


그러니까 느린 페이스에서는 롤링이 되지 않는 것이 러닝 이코노미 측면에서 효율적입니다.

느린 페이스에서 인위적으로 롤링을 하려다 보면 인위적으로 무릎을 구부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종아리와 햄스트링에 추가 부하가 생깁니다.

또한 충분히 롤링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체공 시간도 중요한데(다리를 뒤로 말아올릴 시간이 필요하므로),

이를 의식하다 보면 케이던스가 자연스레 낮아지고, 수직진폭이 상승하기 때문에

무릎과 발에 불필요한 부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썬코치의 조깅 롤링 영상을 보면 케이던스가 160대 중반으로 상당히 낮은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러닝자세를 몸에서 받아준다면 문제없지만, 낮은 케이던스와 높은 수직진폭을 동반하기 때문에 하체 근력이 부족하거나 과체중인 사람에게는 무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 자세로 케이던스 상승 훈련까지 하려고 든다면 물리학적으로 부자연스러움의 총집합이 되어 부상행이라고 봅니다...)


빠른 페이스인데 롤링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페이스 대비 보폭이 너무 작거나(케이던스가 매우 높아 회전 각도가 충분히 나오지 않음)

다리를 가져올 때 무릎 아래로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발 착지 부위, 위치 등 무릎 아래 움직임을 신경 쓰다 보면 이런 경우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혹은 케이던스를 올리는 훈련을 하면서 발을 앞으로 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수도 있고요.

이렇게 빠른 페이스에서 롤링이 되지 않으면 관성모멘트가 불필요하게 커지고, 다리를 회전시키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됩니다.

에너지 뿐만 아니라 하복부와 대퇴사두에 필요 이상의 부하가 걸려 러닝 후에 해당 부위가 유난히 심하게 뻐근할 수 있습니다.


러닝 이코노미 상 자연스러운 롤링을 위해 다리를 가져올 때 무릎 아래의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이해가 쉽도록 하기 위해 '무릎을 앞으로 내는 느낌으로 뛰어라' '무릎 아래는 없다고 생각하고 뛰어라' 라고들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나치게 무릎을 앞으로 내면 러닝 이코노미 상 좋을 수가 없죠. 그래서 '무릎을 앞으로 내라'는 의미는 '무릎보다 발을 먼저 앞으로 내려 하지 말아라'에 가깝다고 봅니다)


정리하자면 롤링은 빨라지면 자연스레 따라오기 때문에 일찍 신경쓸 필요 없고,

내가 4분대를 무난히 뛸 정도로 빨라졌는데 더 빨라지기 힘들다면 그때 체크해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빠른 페이스가 아닌 상황에서의 롤링은 에너지 소모 측면에서 비효율적인데,

만약 그래도 멋있으니까, 리드미컬하니까 라는 이유로 롤링을 하고 싶다면

낮은 케이던스와 높은 체공시간(강한 킥력)을 버텨줄 수 있는 다리가 받쳐줘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