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시반 기상하고 다섯시반쯤에 출발
출발이 일곱시 오십분인데 왜 집결시간이 여섯시 삼십분일까
러너들을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나무나 정물 정도로 생각하는 걸까
일단은 오라니까 시간맞춰서 간다
그래도 일요일 이른 오전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없었다
신대방에서 쭉 앉아서 책읽으며 갔다 삼십분쯤 걸림
종합운동장역 도착
개찰구 나오자마자 웅성거리는 소리들리고
벤치에 앉아서 신발 갈아신고 옷입고 스트레칭 하는 사람이 보였다
하긴 이 날씨에 탈의실보다는 역 내부가 더 따뜻하겠지
나도 벤치 하나 잡고 신발 갈아신고 나감
날씨? 걍 개추웠다
스프레이같은 비가 바람에 흩뿌림
그나마 바람막이 벗기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싱글렛에 반바지만 남기고 다 물품보관소 맡기고 나니까
추워서라도 계속 준비운동을 하게 됨
어쩌다보니 10k A 그룹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출발선에서 안내방송 하는 아나운서분이
길이 젖어있으니 안전한 러닝 하라고 몇번을 강조하셨다
나도 무리하지않고 기존 기록(45분) 비슷한 정도로 들어오자는 생각으로
페이스메이커 분 옆에 딱 달라붙어서 달리기 시작함
근데 스타트하는데 기분이 너무 좋은거임
그래서 그냥 페이스메이커님 제치고 3키로까지 펀런함
그뒤로는 그냥 죽는 줄 알았다
인생에서 뛴 것중에 제일 힘들었다
뛰는 곳 맞은편에서 말그대로 비바람이 들이닥치는데
손은 얼고 발목도 욱씬거리고 왜인지 배도 아팠다
아픈 곳을 주먹으로 퍽퍽 때리는데도 계속 아팠다
평소에는 그렇게 하면 안아팠는데 흠
10k가 이렇게 길고 힘들었나?
오킬로미터 반환점에서부터 그냥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냥 버티는 마음으로 계속 다리를 움직이는데
9킬로미터쯤에서 나와 같이 출발했던
'45:00' 풍선 단 페이스메이커님이 나를 따라잡음
난 당장 사망할 것 같은데.. 그와중에 오기가 생겨서
'딱 사분만 버텨보자' 라는 생각으로
페이스메이커님 한 발 앞에서 쭉 버티면서 뛰어보기로 했다
막말로 이 남자보다 아주 조금 먼저 들어가기만 해도 44분대 아니냐고 << 라고 생각함
근데 이 아저씨가 "결승선 보인다!" 하고 불쑥 외치더니
케이던스 빡 올려서 질주하는 거임?
허파터지기 일보직전인 나는 속절없이 제쳐졌고
결승선을 향해 멀어지는 페이스메이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45분 이븐페이스 아니었냐고....
막판에 그렇게 시간 맞추는 게 어디있냐고....
암튼 부상없이 완주한 게 어디냐
손이 깡깡 얼어서 주머니 지퍼열고 사진찍는 것도 힘들었다
출발할 땐 하늘이 어슴푸레했는데
간식받고 메달받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니 날이 밝아있음
그 난리를 쳤는데도 하루가 많이 남았네...
집에 가서 글이나 쓰자 (놀랍게도 본업은 작가이다. 장편마감 보름남았음)
글리코겐 다 빠진 하반신으로 비트적거리며
2호선에 몸을 싣고 잠깐 자다 일어났는데
스마트칩 기록이 도착하더라고
스바 한 45분 30초 나왔겠지 하고 보는데
뭐임?
기존 기록에서 1분 당긴 PB가 나와버림
확실한건 기록증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아니 페이스메이커님 막판에 왜그랬나요
그럴거면 풍선에 44:00 붙이고 뛰었어야죠
님때문에 진짜 뒤질뻔했잖아요
암튼 비바람도 맞고 배도 때리고 빵도 먹고
마지막에 깊은 좌절도 느끼고
그랬지만 PB세웠잖아 아름다운 러닝했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남은 하루가 너무 즐거운걸
좀 이따 간짜장 먹으러 가야지
하여간 집와서 샤워하고 글써본다
담주부터 눈 좀 오고 봄날씨 되던데
이번 시즌도 부상없이 안전하게 즐겁게 뛰어보자고
런갤 화이팅
소설쓰고있네(극찬임)
진짜 쓴다고...
페메 아저씨 결승선 보인다고 하고 뛰어가는게 캐웃기네ㅋㅋ 그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추추
감사합니다.
페메 ㅋㅋㅋ 쉬마려웠네 - dc App
아니 페메가 그래도 되는거냐고
런갤문학 추 - dc App
페메아조씨 조기퇴근 하고팠음 - dc App
페이스브레이커잖아
그래도 페메 아조씨때문에 기록 땡겼잖어~ 한잔해~ - dc App
간짜장 곱빼기 완뚝했다가 급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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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이런.역할인가요,,,??
작가님 잘 읽었어요. 피비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이젠 그냥 즐겁게만 달리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