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3하고 글 써야 멋진데 싱글따리라 뻘쭘하네. 하지만 싱글도 좋은 기록이고 누군가에게는 당장의 목표이기도 하니깐 그냥 쓴다. 앞으로 서브3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내 생각 알리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깐.


일단 서브4부터 싱글까지 나간 풀코스 대회는 이렇다.


23년

11월 제마 358


24년

03월 도쿄 마라톤 359

03월 동마 345

10월 춘마 319

11월 제마 327


25년

02월 대마 319

03월 동마 308


이렇게 오는 동안 기록 향상을 이끈 요인과 반대로 나락으로 빠뜨린 요인을 알려줄게.


기록 향상

1. 마일리지

내가 가장 크게 실력이 향상된 걸 체감한 게 작년 동마 이후 춘마였다. 이때 뭘 했냐면 마일리지를 크게 늘렸다. 동마 전까지 평균 월 마일리지가 150 정도였는데 춘마 준비하면서 300까지 올렸다. 엄청 덥고 습했던 작년 여름에 땀 뻘뻘 흘려가며 처음 300 찍고 바로 400까지 찍기도 했다. 30km 이상 장거리는 거의 매주 1번씩은 하고. 하지만 힘들게 훈련하는 동안 실력은 그대로였다. 주로 집 앞 공원 달리는데 빨라지지도 않고 심박이 내려가지도 않아서 아무 소용없는 짓인가 싶었지.


신기하게 10월 들어 바람이 서늘해지니 바로 실력이 급상승했다. 4월 서하마 145였는데 10월 서울레이스 131로 들어왔다. 따로 스피드 훈련도 안했는데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더라. 춘마 목표는 330이었는데 무조건 할거라는 확신이 들더라. 러널라이즈랑 가민 풀코스 예상 기록은 싱글 나와서 나 이제 싱글러너 되나? 하면서 자신감 뿜뿜이었다. 


결과는 춘마 319. 싱글 꿈꿨지만 여지없었다. 왜냐면 춘마 1주일 전에 100km 트런 대회 나가서 둔근, 햄스트링 다 털리고 대상포진까지 생겼거든. 춘마 2일 전 대상포진 전구증상으로 39도 고열 뜬 거 갈근탕 먹고 겨우 진정 시킨 후 나갔으니 어쩔 수 없지. 1주일 후 제마는 대상포진 신경통 달고 달리다 30km에서 퍼지고 걸어서 327하고. 


싱글 못했지만 서울레이스 - 서울100k - 춘마 - 제마 4연속 대회 나가서 무사히 완주하고 목표기록도 달성하게 한 힘이 뭐다? 마일리지다. 마일리지를 쌓아라. 물론 본인 몸 상태와 스케쥴에 맞는 적정 마일리지를 찾아야겠지. 나는 300~400 정도인 거 같다. 


2. 트레일 러닝≒보강 운동

작년에 트레일 러닝을 처음 시작했다. 6월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 42K 신청하고 딱 5주 훈련했지. 그동안 둔근, 대퇴사두, 햄스트링, 비복근까지 다 아팠다. 부상은 아니고 그냥 운동 열심히 하면 따라오는 근육통 있잖아. 그걸 5주 내내 달고 살았다. 덕분에 대회 나가서 부상 없이 잘 뛰고 왔다.


23년 제마 때 후경골근건염 걸려서 한동안 고생 좀 했다. 11월, 12월엔 제대로 뛰지도 못했어. 겨우 회복해서 속도 올리려 하면 통증이 다시 올라오고 그래서 러닝 접어야 하나 고민도 했다. 거덜각 피해가며 훈련하고 도쿄 마라톤, 동마까지 완주하긴 했는데 서하마에서 빡세게 달렸다가 통증 재발. 이번 생은 망했다 싶었지. 근데 트레일 러닝 시작하고 나서 부상이 확 줄었다.


트레일 러닝 하면서 험한 길을 오래 뛰다 보면 부상이 더 심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운탄고도 준비하면서 5주 내내 달고 다닌 근육통이 그냥 아픈 게 아니라 성장통이었어. 하체가 단단해지니까 자연스럽게 부상도 덜 당하는 거고. 꼭 트레일 러닝 하라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하체 근육을 단단하게 만드는 거지. 다른 방법 중 하나가 보강 운동이고. 나는 대신 트레일 러닝으로 했을 뿐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박민호 선수는 보강 운동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오랜 훈련으로 무쇠 다리가 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한다. 순살인 우리는 필요하다 생각해. 


3. 몸 관리

내가 환자 컨디션 볼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잘 먹는지, 잘 자는지, 잘 싸는지. 이 세 가지가 문제없으면 회복력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보고 치료에도 어느 정도 반응하겠구나 예상한다. 물론 나이, 때깔, 의식의 명료함 같은 것도 참고하지만 결국 이 세 가지를 제일 먼저 본다.


그럼 회복력이 좋으면 뭐가 좋을까. 말 그대로 몸이 망가져도 회복이 빠르다. 런갤러처럼 미친 듯이 뛰어도 거덜나지 않고 마일리지를 늘리고 스피드 훈련을 빡세게 해도 버텨낸다. 반대로 회복력이 떨어지면? 바로 거덜난다. 마일리지 올리기는커녕 스피드 훈련도 못 하고 부상만 반복되면서 기록도 그대로다.


그래서 나는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몸을 관리한다. 생활 습관 하나씩 고쳐가면서 셀프로 침도 놓고 한약도 먹고 명상도 한다. 단순히 러닝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인생 전반적으로 정신이 또렷한 상태로 살고 싶어서다. 다만 이런 게 성과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핑계로 결국 자기를 착취하고 소진시키는 요새 흔한 미라클 모닝, 자기계발, 자아성취가 되는 걸 주의해야 한다. 너무 큰 주제라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러닝 잘하고 싶다면 마일리지랑 훈련 계획만 볼 게 아니라 몸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



이 세 가지 요소 각각 따로 노는 게 아니다. 마일리지 무사히 늘리기 위해 보강 운동이 필요한데 장기적으로 끌고 가려면 몸 관리까지 해야만 해. 



나락

1. 부상

장경인대, 신스, 거위발건염, 아킬레스건염, 족저근막염, 슬개건염. 이름만 들어도 짜릿하지 않냐? 부상은 나락이다. 훈련 못 하지, 기량 상승 멈추지, 아프지, 러닝 못 해서 우울하지. 이보다 더한 지옥이 있을까. 러닝 안하는 사람은 무릎 나간다고 걱정한답시고 혀 끌끌 차는데 무릎이 나가긴 뭘 나가. 다른 게 나가서 문제지.


나도 지독한 부상을 몇 번 겪으면서 러닝 인생 끝났나 싶었던 적이 있다. 제일 심했던 건 제마에서 서브4 찍고 얻은 좌측 후경골근건염. 발목만 돌려도 아프고, 속도 좀 내면 시큰거리다 찌릿찌릿. 심할 땐 무서워서 아예 뛰지도 못했다. 마일리지는 그대로 급강하. 그동안 훈련했던 거 도로 토해내고 초기화되어가는 게 느껴지는데 뭘 할 수가 없다. 제일 힘든 건 언제 나을지 기약이 없다는 거다. 불안정한 미래에 멘탈이 와르르 무너진다. 지금도 완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다스리는 법을 알아서 4주 동안 하프 - 100K 트레일 - 풀코스 - 풀코스를 달려도 문제 없었다. 이번 동마는 308로 PB 세웠고. 


부상 안 당하면 좋지. 근데 그게 쉽나. 불강금괴 인자강으로 태어나거나 거덜각을 기가 막히게 피하는 센스가 있으면 모를까 우리 대부분은 아니다. 그러니 부상을 받아들여라. 예방에 힘쓰되 막을 수 없는 걸 부정하지는 말아라. 중요한 건 부상을 어떻게 대처하고, 안고 가느냐다. 현재 컨디션이 안 좋거나 아픈 게 단순한 근육통인지,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지, 아니면 부상으로 이어질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애매하면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한다. 치료 타이밍은 빠를수록 좋고.


또 중요한 건 집 근처에 초기 대응 잘해주는 의료기관을 찾는 거다. 검색해서 정보 찾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직접 가서 찍먹해보는 게 답이다. 아픈 곳을 성실히 봐주고 실제로 호전되면 그곳에 정착해라. 핫딜 러닝화 사듯이 가라. 나는 셀프로 치료하면서 구력이 쌓이고 노하우도 생겨 이제는 큰 걱정 없다.


2. 감염병

의외의 복병이다.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훈련 1주일이 날아간다. 근데 감기보다 독한 걸 걸린다? 한 달이 증발한다. 나는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대상포진, 노로바이러스, 독감으로 추정되는 감기를 연달아 앓으며 고생했다. 아플 때도 힘들지만 다 나아도 몸에 찌들어 있는 피로 때문에 기량이 확 떨어져 더 괴롭다. 런린이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600 페이스로 뛰어도 심박이 난리를 친다.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원래라면 훈련하면서 몸이 더 좋아졌어야 할 시기에 기회까지 날아가니 타격이 더 크다.


보온은 확실히 해라. 그리고 남의 말 듣지 마라. '나는 영상 5도에 반팔 입고 뛴다', '영하로 떨어져야 바람막이 입는다' 같은 소리하는 사람 있으면 그냥 추위에 강한 사람인가보구나 해라. 혹해서 ‘나도 반팔 입어볼까?’ 생각하지 마라. 그건 그 사람 기준이지 네 기준이 아니다. 추위에 약하면 보수적으로 입어라. 너무 더우면 가볍게 나가보고 너무 춥다 싶으면 바로 복귀해서 다음번엔 더 따뜻하게 입으면 된다. 자기만의 복장 기준을 만들어라. 나는 원래 추위에 약해서 영상 5도 이하로 내려가면 패딩 조끼가 필수였는데 괜히 견딜 만하겠지 싶어 방심했다가 된통 당했다. 보온은 철저히 주관적으로 생각해라. 아니면 나처럼 벌받는다.


3. 계절

키드 이병도 선수는 겨울 훈련에 강하다던데 나는 정반대다. 겨울엔 약하고 여름엔 강하다. 33도, 습도 90%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최대 마일리지 400을 찍었다. 쉽지는 않았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겨울보다는 나았다. 여름엔 "아오, 뛰기 싫다" 정도지만, 겨울엔 "나가기도 싫다" 수준이다. 특히 장거리를 뛸 때 차이가 더 크다. 겨울엔 몸이 굳고 쫄아버려 망가지는 느낌이 강하다. 반면 여름은 힘들어도 몸이 부서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본인이 어느 계절에 강하고 약한지 파악하고 훈련 방법을 조절해야 한다. 나는 겨울에 최대한 야외 러닝을 줄이고 트레드밀을 활용해야 했고, 밖에서 뛸 땐 보온을 지나칠 정도로 신경 썼어야 했다. 근데 그러지 않았고 겨울 내내 고생했다. 나처럼 실수하지 마라.



가을 서브3까지

1. 스피드 훈련

난 이미 느리게 뛰어도 빨라지는 단계는 지났다. 더 빨라지고 싶으면 심박을 갈궈야 한다. 고심박을 쓰는 인터벌, 레피티션, 변속주, 빌드업, 언덕 질주를 해야지. 여기서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다. 지금 내 상황에 가장 잘 맞는 걸 선택해야 하는데 일단 원래 조금씩이라도 했던 야소800과 언덕질주를 하다 나머지 훈련도 찍먹해보려고. 


2. 마일리지 향상 

이제 따뜻해졌고 다음 풀코스는 가을이다. 지금까지는 마일리지가 300정도였는데 앞으로 400까지 올려서 계속 유지해보려고 한다. 지난 여름 400 찍고 기량이 확 살아났던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다. 



위에서 기록 향상, 나락에서 언급한 것들 지키면서 스피드 훈련과 마일리지 향상만 한다면 가을에는 무조건 서브3 할 거 같다. 서브3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