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존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나왔습니다.
인터뷰 좀 해줄 수 있나요, 옆에 있던 기자가 말했습니다.
어~, 잠시 망설이다 예 그렇게 하죠, 받아들였습니다.
연세가 있는데 잘 달리시네요.
어~, 네, 그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는지 뜨뜻미지근하게 대답했습니다.
완주 소감 한마디만 해주세요.
젊은 분들과 함께 한강의 두 다리를 오가며 뛰어 놀으니 즐겁고 행복합니다.
앞으로 각오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달릴 겁니다.
몇 년생이세요.
1963년요.
이름은?
신승백입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저에게도 이런 일이 있네요.
검은머리 러너들 사이에서 흰머리 러너가 눈에 띄었는지 인터뷰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며칠전 대기 예보와 달리 공기가 좋았습니다.
기온도 알맞았습니다.
봄 달리기를 즐기기에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봄날 아침의 상쾌함,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광화문광장이 젊은 마라토너들로 꽉 차있었습니다.
젊은 마라토너들의 축제 그 자체였습니다.
마라톤이 좋은 건 뛸 수 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발해서 결승선까지 쭉 한번 내달리는 그림을 그려 봤습니다.
힘차게 질주하는 백이의 달리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오늘은 끝까지 내질러 보자, 결심했습니다.
A그룹 맨 뒤에서 출발했습니다.
초반 병목 구간을 몸을 달궈가며 달렸습니다.
서소문길을 뛰올라 뜀길이 넓게 펼쳐지는 애오개에 이르뤘습니다.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주계로 올랐습니다.
시야도, 숨결도 뻥 뚫렸습니다.
내리막을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달리기가 리듬을 탔습니다.
오늘 달릴 달리기 리듬이 맞춰졌습니다.
부드럽게 힘차게 신나게 달렸습니다.
마포대교를 건너고 KBS를 지나 10K를 찍었습니다.
컵을 하나 집어들고 입을 향해 던졌습니다.
몇 방울이 입으로 들어 가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나머지는 허벅지로 쫙 떨어졌습니다.
순간 짜릿한 시원함이 느껴졌습니다.
짧은 터널을 지나고 긴 터널에 들어섰습니다.
강한 음악이 흘렀습니다.
러너들의 고조된 함성이 울렸습니다.
강한 음악과 러너들의 함성이 한데 어우러 퍼지는 어두운 터널,
그 옛날 닭장에서 갑자기 불 꺼지는 블루스 타임과 같은 진한 해방감을 느끼며 그속을 신나게 질주했습니다.
낮은 오르막을 달려 올랐습니다.
페이스가 살짝 처졌습니다.
양화대교에 올랐습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페이스를 되찾아 양화대교를 내달렸습니다.
플릿러너 화이팅! 응원을 받으며 합정역 코너를 지났습니다.
한 달벗님께서 따라오며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리드미컬하게 달렸습니다.
쭉쭉 내달려 월드컵경기장을 지났습니다.
힘이 빠지고 빠르기가 좀 둔해졌습니다.
더 이상 페이스를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참자, 달리자, 조금만 가면 된다, 좀 처지긴 했지만 기필코 달렸습니다.
플릿러너 힘! 맞은 편에서 들여 왔습니다.
쌍둥이들이 응원해줬습니다.
힘! 화답하며 묵묵히 달렸습니다.
막판에 힘을 내어 달리는 주자들이 연신 추월해 갔습니다.
코너를 돌았습니다.
결승문이 보였습니다.
다 왔다, 플릿러너 화이팅! 응원을 받으며 피니쉬라인을 통과했습니다.
모처럼 힘차게 달렸습니다.
짐을 찾아서 휴대폰을 켰습니다.
1:36:05
기록을 본 순간, 실망스럽고 씁쓸했습니다.
달린다고 달렸는데, 이젠 백이의 마라톤 역설도 끝나 가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곤이 엄습해 왔습니다.
좀 우울했습니다.
기록에 연연하진 않지만 나이 들어감이 서글펐습니다.
나이 들어서 마라톤 기록은 빠름이 아니라 젊음의 상징입니다.
오늘 처음 그걸 느꼈습니다.
이 대회는 1회 때부터 쭉 참가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엔 참가신청 광클릭에 실패해서 이어지던 참가가 중단되었습니다.
재작년에 1:29:27까지 달리며 해마다 기록을 계속 경신했습니다.
2016년 만53세 1:44:19
2017년 만54세 1:39:13
2018년 만55세 1:35:29
2019년 만56세 1:32:35
2020년 만57세 코로나 시대
2021년 만58세 코로나 시대
2022년 만59세 코로나 시대
2023년 만60세 1:29:27
2024년 만61세 참가 실패
2025년 만62세 1:36:05
달리기는 꾸준히 단련하면 나이가 들어 가도 성장한다는 백이의 마라톤 역설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꾸준하게 달리면 어느 나이에 기록이 꺾이는지 매년 같은 코스에서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이 대회를 통해서 몸소 실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벌써 이제 꺾이는 시점인가...
지난 수 개월간 플릿러너 올림픽공원 스토어를 오픈하면서 달릴 짬도 기력도 부족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자산은 달리기입니다.
일에 쪼들려 그 달리기를 근근이 명맥만 이어갔습니다.
결과는 퇴보였습니다.
어찌되었건 2년만에 6분 30초가 후퇴했습니다.
오늘 나름 달리기 리듬을 잘 타며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정점이 낮아졌습니다.
시계를 차지 않고 몸시계로 달리기에 몰입해서 달리는 러너로 달리면서 이 정도면 410에서 420 사이일 꺼라고 느꼈습니다.
몸시계가 그에 많이 못 미쳤습니다.
몸이 쇠퇴한 것일까 아니면 부지런히 정진하지 못한 결과일까...후자일 것이라고 정신승리를 했습니다.
달리기는 단련한 만큼, 부지런히 정진한 만큼 기록이 나오는 거야, 다시 꾸준히 달려 보자, 다시 달리기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난 아직 청춘이야, 잠시 우울했던 감정을 씻어 냈습니다.
나는 오늘 달려서 그만큼 강해졌어, 아직은 더 잘 달릴 수 있을꺼야, 주춤한 백이의 마라톤 역설을 다시 쓰기로 했습니다.
아직 청춘, 반등을 위해 전진!
포토존으로 갔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옆에 있던 TV조선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젊은 러너들과 잘 뛰놀 수 있어서 기쁩니다.
만족스럽습니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달릴 것입니다.
움직임을 저축하세요.'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지인과 애프터 마라톤 막걸리 타임을 가졌습니다.
막걸리가 술술 넘어갔습니다.
레이스가, 달리기가, 인생이 부딪치는 막걸리 잔을 통해 헤롱헤롱 흘렀습니다.
나는 달리기가, 마라톤 놀이가 좋습니다.
인생은 마라톤과 함께 늘 푸르게, 브라보!
모든 마라토너분들 완주를 축하합니다.
그리고 응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힘!
서하마 1회부터 참가자
만 60세에 하프 129 ㄷㄷ
65세 119 할재도 있어 ㅋㅋ
역시 멋진 분이심. - dc App
진짜 대단하시고 글도 잘 쓰신다 와 멋져..
이 분 피드글 보면 글이 다 잔잔하니 좋더라구요
ㅜㅠㅜㅜ미쳤다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