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본인의 경험과 사견, 대회 후기, 대회 사진 등으로 두서없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철저한 개인 경험 위주다 보니, 글의 재미를 절대 보장하지 않습니다.



(볼때마다 느끼지만 서울하프마라톤 메달은 정말 잘 만들었다. 이른 아침에 남산타워를 바라보면 하늘이 참 맑다고 느껴질때가 있는데, 딱 그런 색상이고, 서울 영문명의 S, 누가봐도 서울에서 열린 마라톤임을 잘 나타낸다.)




위와 같이 서울하프마라톤 139 직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것 마저 힘이 나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 매일 반복되는 일상- 회사와 집, 그리고 러닝이라는 쳇바퀴를 굴리다보면 피로해져서 낮잠 아닌 저녁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런 사견 섞인 잡썰을 올려봤자 뭐하겠나.. 누가 관심이나 주겠나,’ 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썰을 올리는 이유는 첫 하프 출전이 너무 순수하고 즐거운 경험이였기에 그날의 기억을 다시 돌아보고 싶다.




- 대회 전 -

2025년, 올해의 목표로는 하프와 풀 마라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동안 러닝이라고 해봤자 나에게 10km 이상은 꿈에도 안중에도 없었는데, 스스로 단정지은 한계 속에서만 살다보니 1)하프, 풀마라톤은 고사하고 2) 10km PB 45분도 넘어서지 못하는게 아닐까 3)이대로 발전없이 정체/퇴보하면 이 취미를 유지할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두려움도 몰려왔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어중간한 실력대에 포진한 수많은 러너들이 정체속에서 한번쯤은 겪어볼 고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가 기록을 위해 러닝을 하는가?, 아니면 행복해지고 싶어서 러닝을 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차원으로 넘어가면 타인에게 생각을 쉽게 전하기 어렵다.

(이런 복잡 미묘한 마음들을 가지고 있는 N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당신은 확신의 S다)


어찌되었든 대회는 가까워질수록, 내가 첫 하프마라톤에서 139가 목표라는 발언을 지인들에게 뿌리고 다녔던것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목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왔고, 그로 인한 ‘나’ 라는 인간에 대한 신뢰하락도 무서웠다. 도중에 DNF를 하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만일의 사고가 있으면 어떻하지 라는 생각도 들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대회 당일까지도 이 불안감은 지울수가 없어 출발 직전까지도 내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대회전까지 여태 해온 훈련은  

월-리커버리 조깅(5km 이상)

화-800~1km 4:20 인터벌

수-휴식

목-5km 조깅

금- 4:30 7km 템포런

토-휴식

일-15km 이상 롱런(대략 4:45~5:05)

이와 같고, 대회시점에 맞춰 조금씩 강도를 높였다.




(추운 초봄부터 시작해서 러닝할때마다 꾸준히 사진으로 남겼다. 차마 얼굴은 들지못해..)


때로는 원하는 훈련강도에 걸맞지 않게 페이스가 부진해서 속상하기도 하고, 생각외로 몸이 잘 받아줘서 좋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다사다난 했던것 같다. 




그래도 3,4월 합쳐 280km는 달렸으니, 나름 짬내서 훈련은 한것 같다. 나름.




- 대회 당일 -


그렇게 지나, 대회 당일이 오긴 왔고, 날씨가 화창했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또 한번 날씨운은 좋다고 느꼈다. (마라톤 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때마다 해를 몰고 다닌다. 암만봐도 맑음 특성임.)


짐보관을 시간에 맞춰 가까스로 맡기고(역시나 코리안 타임은 있다), 좁은 공간 속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가민에서 서하마 gpx를 켜고 대기했다.




하프,10km 도합 러너들이 22000명일 정도로 정말 많이 왔는데, 주최 측에서 도로를 넉넉히 확보해서 그런지 출발 대기선에서 부대끼거나 하는 느낌은 하나도 없었고, 이는 즉시 후술하겠지만 출발이후 주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2030대가 가장 많아서인지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러닝으로 정신이 치유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내 눈에는 선남선녀밖에 안보였는데, 비슷한 나이대를 보며 동질감도, 왠지 모를 선의의 경쟁심도 들었던것 같다. 


본인은 하프 C조에 배속되어, 출발까지 약 10분간의 여유가 있어 같이 온 지인과 대화하며 긴장을 덜어냈다. 

기다리는 사이 혹시나 중간에 애매하게 껴있어 페이스를 올리지 못할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다. 

출발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많은 선수들이 주로를 향해 달려나갔는데 거의 대부분이 5분 초반, 4분 후반 페이스로 무섭게 치고 나갔다.



(쌍권총 모션을 해보려고 했는데, 어째 잘안됐다. 옆에분이 너무 진지한 표정이여서 티에 이름도 런치광이인게 광기가.. 뭔가 웃김.)


그 덕분에 나도 평균 페이스대로(4:42) 주행하는데 무리가 없었고, 넓찍한 광화문 대로에서 자유롭게 왼쪽으로 치고 나갔다. 

코스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니라고 익히 들었으나, 막상 주로를 달려보니 생각보다 큰 언덕들이 여러개가 있어, 업힐 훈련을 반복하지 않았다면 꽤나 쉽지 않은 레이스를 겪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회를 준비하며 춘천에 거주중이던 나로서는 고저차가 꽤 큰 춘천대교를 훈련장소로 많이 달려봐서, 그 덕분에 후반부 마포구청 사거리쪽 언덕도 쉽게 오를수 있었다. 


주로를 달려가다보니 매 5km,10km지점마다 보급, 급수하는 곳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보급하느라 다들 정신없어보였다.

나는 미리 300ml 생수를 벨트에, 에너지젤은 레깅스 주머니에 차고 있어서 딱히 방문해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그대로 뻥뚫린 왼쪽 주로.. 마구 굴러다니는 종이컵들을 슬쩍 피해주며 열심히 달려나갔다. 

이는 결과적으로 급수대에서 발생하는 페이스 하락과 타임 로스로 인한 시간 손실을 줄일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내가 원하는대로 레이스를 펼칠수 있었다.

그리고 물병은 벨트에 차고 있으니, 목마르고 갑갑할때 한모금씩 마셔주며,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줄수 있었다. 사실 종이컵을 들고 뛰면서 마시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는데, 병목으로 마시면 그런일은 없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나 첫다리인가? 무슨 대교인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사진 작가님들이 엄청 많이 포진해있어 감사하게도 좋은 구도에 여러장 찍힐수 있었다.)


이번 대회만 유독 그런것인지, 메이저 대회를 많이 나가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느때보다 시민분들의 열렬한 응원과 사진 작가분들이 많이 오신것 같다고 느꼈는데, 하이파이브를 할때마다 많은 힘이 났다. 일부러 그쪽으로만 달려가면서 힘받다보니 마치 어릴적 게임했던 카트라이더의 사각부스터(..)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많이 촬영해주시고 함께해주신 사진 작가분들, 응원해주신 시민분들께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 대회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은 수많은 언덕을 제쳐두고, 상암월드컵을 지나 반환점으로 가는 순간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반환점을 돌고 돌아오는 선수들이 너무 부러웠고, 언제쯤 나는 반환점 찍고 돌아올까 그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때만큼은 정신줄을 붙잡고 달렸던것 같다.





드디어 20.5km를 지나, 월드컵 경기장을 향하는 두개의 코너가 보였고, 마지막 힘을 쏟아내겠다는 심정으로 질주했다. 그 순간 만큼은 고통을 잊고 달려서인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결승점에 도착하자마자 가민에 RUN 버튼을 눌러 정지 시켜보니, 1:39:30 이라는 기록이 나왔다. 

(대회가 끝나고 유튜브로 돌려보니 139 대열에 떼로 몰려왔더라. 죄다 같은 페이스였나보다.)


조금 더 앞으로 가보니 미스트존이 있었는데, 또 다시 축축하게 젖는게 싫어서 그냥 지나쳤고, 메달과 간식을 수령받아 그 자리에서 음료를 전부 해치워버렸다. 

그리고선 짐을 수령받고는 한참을 주저앉았던것 같다. 

목표한 기록을 해냈다는 기쁨과, 안도감이 밀려오고, 지난 4주동안의 훈련, 3년동안의 러닝을 다시 소회해보며 오늘을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해온 나만의 기록에 보상받음을 느꼈다. 

비록 1만여명의 선수들 중 1300여등이라지만, 처음으로 하프를 완주했으니 나름대로 변명의 여지는 있고, 나름대로 귀하고 값진 경험임은 분명하다. 

같이 온 일행들을 기다리는 사이, 점차 더 많은 러너들로 상암월드컵 광장이 꽉 차는것을 구경하며 또 다른 생각으로는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안에 이렇게 많은 러너들이 각지 각처에서 달리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나는 우물안 개구리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던것 같다.




대회에서 한가지 더 아쉬운것을 꼽자면, 하프 포토존은 너무 적게 설치가 되어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20,30대인데, 1만명이 참가했으면 그래도 포토존은 8개정도는 설치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도 가장 유명한 하프 대회고, 각종 SNS나 유튜브, 커뮤니티에 인증하고 올리는 세대로서 말이다.


그럼에도, 대회 자체만으로 놓고 본다면 가장 만족도 높고, 국내 하프마라톤으로서는 GOAT 라고 보여진다.



- 대회 이후 - 


대회가 끝난 다음날 월요일, 다리의 모든 근육이 아파왔다. 대회 당일만해도 그렇게 아픈 느낌은 없었는데, 도파민을 비롯한 각종 부스팅이 빠져나가서일까. 집에 있는 폼롤러가 바로 생각이 나서 퇴근하자마자 풀어주었고, 30분간 지압해주니 많이 근육통이 풀렸다.

이렇게 육신이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러닝이 지겹고 재미없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여태 없었다. 행복하다.


그나저나 나는 뛰면서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어떻게 대회에서 웃는 사진만 찍혀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아무 표정없거나 헉헉대는데 말이다. (위에만 보더라도 그렇다)


평소 같이 러닝하는 지인은 ‘평소에는 무표정이여도 달리기만하면 너는 웃고 있어’라고 말한다. 

체질상 러너스하이가 없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달릴때마다 러너스하이가 항시 돌고있나보다.

아니면 힘겨웠고 버티던 일상으로부터 달아나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게 좋아서였을까.


잠시 삼천포로 빠진 생각으로부터 돌아와 다시 세울 목표에 대해 고민해보면, 10km 기록에 대해 다시 도전할 의지가 생긴것 같다.

39분. 정말 쉽지 않겠지만, 벽을 두드리고 두드리다보면 스스로 깨우치고 열릴지도 모른다. 

본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도전해본다. 


두발 달린 평범한 사람도 할수 있는데, 나도 할수 있어, 못할게 뭐가 있니? 라는 생각으로.

항상 글을 쓰다보면 마지막 말이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다음에도 또 재밌는 대회를 나갈수 있기를, 그곳에서 좋은 추억을 가질수 있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