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화를 신고 길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 나는 더 이상 21세기 문명의 부산물이 아니다.

배달앱과 전자결제에 익숙해진 나라는 나약한 인간은 사라지고, 

먼 옛날 울부짖던 수렵채집인과 동조한다.

5분 전까지만 해도 귀찮다고 침대에서 몸부림치던 내가, 갑자기 들소를 향해 돌진할 기세로 달리고 있다.


뺨을 때리는 바람, 땀과 함께 흘러내리는 먼지와 날벌레들.

이 모든 게 문명의 탈을 벗고 야생으로 회귀하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제 회사원이 아니고, 현대인도 아니다.


나는 사냥 중인 호모 사피엔스다.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다.

그것은 아마도 숲속을 가르며 사슴을 쫓고,

돌멩이로 멧돼지를 제압하던 내 먼 조상일 것이다.


“이놈, 나보다 오래 달리면 인정해주지.”


나의 아주 먼 아버지의 아버지가 씩 웃으며 내 뒤를 따라붙는다.

속도보다는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근성, 그것이 승부를 가르는 게임이다.


그렇게 나는 땀에 절어 돌아온다.

편의점 앞에서 포카리를 마시며 헥헥대는 나를 보며, 지나가던 고양이가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괜찮다. 저 고양이는 내가 방금 4만 년 전 황야에서 돌아온 사냥꾼이란 걸 모른다.


욕실 거울 앞에 선다.

얼굴엔 소금기가 끼고 머리는 산발이다.

하지만 눈빛은 다르다.


“나의 오랜 조상이여, 나에게 힘을 주시오”


그들은 말없이 미소 짓는다.


나는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내일 다시 그들과 조우할 약속을 마음속에 새긴다.

달리기는, 그렇게 오랜 인류와의 비밀 회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