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1945 이거 하나 제대로 못 누른 제 자신이... 왜 손꾸락을 삐끗해가지곤.. 죄송합니다ㅜㅡㅠ 꼭 기억해야 하는 년도를 이렇게 참..ㅜ



광복절이기에 이회영 선생님 기념관을 가보고 싶었는데 10시부터라기에 다음 기회로 남겨두고, 상시개방인 효창공원으로~~ 도중 잠수교 못가서 815런을 하고 계시는 션님, 이영표님, 권은주 감독님을 봤습니다. 옥수역에 사람들 붐비고 카메라 두세대가 있기에 인플루언서들 뭐하나 싶었는데 그게 션님 일행일 줄은ㅎ 원효대교에서 한방~~





현충일에 이어 나름 두번째라 그런가 지도 안켜고 수월하게 왔습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고, 몇몇분들은 묵념중이셨습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기념하고 있는 것 같아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사님 의거... 당시 나이 31세, 24세라더군요. 제가 배운 국사 교과서엔 일본이 세계대전에 패해 항복문서에 싸인하는 사진이 담겨 있었는데 이 때 서명한 자가 시게미쓰 마모루란 자로 절름발이인데, 이는 윤봉길 의사님의 투탄으로 인한 것입니다. 세계대전에서 패해서 우리가 광복을 맞이한 것도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 안엔 이렇게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 노력이 있다는게 그 사진 이면에 담겨있다라고 설명해주신 교양수업 교수님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더 어린 그 때 이분들은 어떻게 이런 결기를 지니셨는지,,, 부끄럽지만 전 여기 계시는 분들처럼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까지 하지는 못할 거 같더군요. 이봉창 선생님 동상 앞에서 꽤 많은 시간을 서성이면서 최소한 을사오적과 같은 그런 부끄러운 행동은 안하겠다란 다짐은 했습니다. 


연휴의 시작이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잠깐 시간을 내어 묵념을 잠시라도 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윤봉길 선생님이 가족에게 남긴 유서로 마지막을 갈음코자 합니다.



    강보에 싸인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 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공자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