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끝나고 찾아온 두 가지 증상인 근육통과 정신적 탈진(아쉬움)에 대해 쓴 글입니다.

공감하실 분이 계실 것이라 생각하여 올립니다.(분명 '일기는 일기장에 '라고 하시는 분도 계실 듯ㅎ)


세줄요약

1. 대회 끝나고 무시무시한 근육통 엄습. 강제 휴식 및 수영 중

2. 스멀스멀 올라오는 sub-3 실패에 대한 아쉬움, 새로운 도전을 내년에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3. 마라톤 완주 순간의 고통과 환희.(feat. 고배우유투브)를 다시 떠올리며 내년 동마 도전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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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마라톤 다음날을 재치있게 표현한 동영상. 지금 내 상태와 같아서 재미있게 보았다.>


대회의 흥분은 금세 가시고, 무시무시한 근육통이 미루었던 숙제처럼 몰려왔다. 가장 걱정하던 부상인 족저근막염이나, 고질적으로 약한 부위였던 무릎관절의 통증은 없었으나, 이 정도의 근육통은 단순한 근육통을 넘어 가히 저 강도의 부상이라 할 만하다. 대회 날 집으로 복귀하는 지하철에서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장애인/노인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였으며, 대회 후 사흘이 경과할 때까지도 정상적인 자세로 걸을 수 없었다.

이러한 근육통은 내 다리가 가혹하고 욕심 많은 주인(뇌)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신호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기쁜 마음이 든다. 다리가 제 역할을 충실히 잘하고 있구나. 둔하게 반응하여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을 가능성은 별로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수개월 동안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는 습관이 인에 박혀서, 달리기를 할 수 없는데도 새벽이면 눈이 떠진다. 출근 전까지의 긴 시간이 심심하기도 하고, 또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요즈음에는 새벽 수영을 다닌다. 항상 수영 중급반에서 멈추었기 때문에 - 정확히 말하면 접영이 안되어 때려치운 것에 가깝다 - 수영 폼은 물어보지 않아도 엉망일 것이고, 그래서인지 속도도 정말 굼뜨다. 그러나 달리기를 통해 길러진 심폐능력 때문인지, 뺑뺑이를 오래 돌아도 힘들다는 감각은 없다. 그래서 항상 1km의 거리를 30분 정도 도는 수준으로 수영을 마치게 된다. 수영장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는 항상 트랙이 보인다. 여름 내내 그 많던 땀을 흘렸던 트랙. T 페이스니 I 페이스니 하며 숨이 턱 끝까지 차게 달렸던 곳. 몸은 수영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내 마음은 온통 달리기에서 헤어 나올 줄 모른다.

여유만 나면 계속 JTBC 마라톤 사진, 영상들을 본다. 유명 유튜버의 DNF 후기.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사진들.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몇 시간 전에 마라톤을 달렸던 것처럼 기억이 생생해진다. 출발 전 추워서 덜덜 떨리던 몸부터, 양화대교를 건널 때 비치던 아침햇살, 종로와 동대문의 아침 공기가 특히 생생하게 떠오른다. 신기하게도 후반부의 기억은 전반부의 그것만큼 강하지 못하다. 아무래도 고통이 찾아와서가 아닐까. 옛 추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힘든 일은 쉽게 잊기 때문이라던데, 마라톤도 힘든 구간의 기억은 쉽게 잊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조금씩 자라는 느낌이다. sub-3에서 2분 12초가 모자란 내 기록. 원래 목표가 싱글이었기에, 충분히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했던 마음은 바람에 흩어지듣 옅어지고, 다시 욕심과 아쉬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마라톤 풀코스 첫 출전, 10km PB 38분 40초대, 하프 PB 1시간 27분대와 같은 객관적 상황은 분명 싱글을 노리는 것이 적정하다는 걸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달리면서도 실시간 페이스의 상한을 4분 15초로 잡았고 충실히 따랐다. 즉 sub-3는 애초에 할 수가 없었던 레이스 전략이었다.

그런데, 과연 sub-3는 정녕 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킬로미터 당 4~5초 정도 더 빠르게 달렸다고 해서, 후반에 펴졌을까? 아니, 4분 15초 수준으로 페이스를 유지만 했더라도, 후반부에 sub-3를 향한 초인적인 의지가 발휘되어 2시간 59분대로 들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번 레이스 이후에 내가 과연 sub-3를 해낼 수 있을까? 내년에 서울로 이사 가고 직장에 복귀하면 지금처럼 한 달에 300km 넘게 뛸 수 있을까? 비록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분명 40대인데, 내년이면 더 심폐 능력이 줄어들지 않을까? 이번 JTBC 마라톤이 sub-3를 할 수 있는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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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연도별 마라톤 기록.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기록이 떨어지는 양상이 뚜렷하다.>


그런 와중에 "고배우"라 알려진 인물의 JTBC 마라톤 영상을 보았다. 그는 첫 출전에 2시간 51분대를 기록한 훌륭한 주자이다. 이번 대회에서 실제로 나도 주로에서 그를 보았다. 싱글 주자인 나에게 2시간 51분대 주자인 그는 마치 폭주기관차 같은 느낌이었다.

각설하고, 그의 유튜브를 흥미롭게 보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그만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주로에서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항상 웃으며 인사하였던 그이기에, 난 그가 조금도 힘들지 않게 골인하였을 줄 알았다. 그러나 골인 지점 전후에서 그의 표정, 순도 100% 진심을 담은 그 표정은 분명 한계치에 다다른 고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과 결합되어 더욱 빛나는 환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도 분명 그 순간이 있었음이 기억났다.


<고배우가 트랙으로 진입하는 순간은 4분 40초 부터 시작한다>


결국, 마라톤은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골인 전 마지막 트랙을 도는 그 400m 말이다. 마라톤 전체 거리인 42.195km에 비하면 비율적으로 채 1%도 되지 않는 거리이다. 그러나 99%의 거리인 42km를 먼저 달려 와야지만 고통스럽고 빛나는 그 순간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본다. 기록적인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마라톤은 완주 자체에 그 의미가 있으며, 또 그것이 즐거움의 원천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번 첫 경험이 내 마지막 경험이 되지 않도록 어떻게든 내 삶은 내가 잘 꾸려나갈 것 - 직장/취미 균형, 건강관리 등을 포함하여 - 을 다짐한다.

물론 기록적인 목표는 이러한 여정을 지속하게 하는 좋은 양념이 된다. 3시간 2분대를 기록하였으니, 이제 주저함 없이 다음 목표를 선명하게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아마추어의 꿈이라는 sub-3를 내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달성하는 것이다. 이제 목표가 명확해졌으니, 남은 숙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리라.

내일 혹은 모레, 안되면 이번 주 주말부터라도 다시 조깅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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