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동안 훈련도 부족했고 아킬레스건염으로 주중에 체외충격파 두번 맞고 와서, PB인 319를 갈아치우는 건 무리고 목표는 330 언더. A그룹 출발선에 서서 330 페이서 없나 찾아보니 A그룹 제일 느린 페이서가 310? 뒤 돌아보니 B그룹에 320 페이서가? 아니 나 어떻게 A그룹 받은거야?
페이스 450 정도로 뛰려했지만 다들 날 제치고 지나가기에 마음이 급해서 오버페이스로 430 찍히고, 억제해가면서 늦추고 하면서 뛰었다.
5km 쯤에서 첨성대가 나와야 하는데 정작 첨성대를 못 봤다. 주로가 갑자기 좁아지고 돌길이 되어서 바닥만 보다가, 뒤에서 B그룹 320 페이서 팩이 쫓아와서 길 비켜 주느라 주위 풍경을 못봤다. 한참 후에 점심 먹고 나오다가 '첨성대는 어디갔지?' 하는 의문을 떠올림.
B그룹이 나보다 5분 늦게 출발했을테니, 320 페이서를 따라가면 나는 325 나올거고, 퍼져도 330에는 5분 정도 여유 있겠다는 계산으로 팩에 합류해서 1km쯤 갔는데. 320 페이서 풍선에 445 페이스라드만 430으로 가고 있어! 이거 따라가다가는 하프 좀 넘으면 퍼지겠다 싶어서 빠져나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A그룹 바로 뒤에 이어서 B그룹 출발했던 모양. 어째 너무 빨리 만났다 했어.
대릉원 지날때 펜스에 '넌 최고야, 잘하고 있어' 류의 문장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뛰었다. 요즘 본업으로 고민이 좀 있는데 응원하는 듯 했다.
6.5km 쯤 가니까 선두 주자들은 이미 첫 반환점 돌아서 빠져나오는 중이었고, 몇몇 아는 주자들 마주치면 화이팅 외치다보니 나도 빨라져서 420으로 뛰고 있길래 또 억제.
12~13km에서 오릉을 끼고 돌았는데, 옆을 보니 좀전에 지나왔던 한블럭 너머에 다른 주자들이 줄지어 달리는 모습이 웅장하더라. 역시 마라톤은 멀리서 보면 장관, 가까이서 보면 힘들어 죽겠는 비극이다.
이후 한동안 시골길이었고 동네 어린이들이 나와서 응원 많이 해 주던데. 앞에 가던 주자가 어린이 보일때 마다 다가가서 하이파이브 하시더라. 애들이 당황하면 멈춰서서 농담도 하면서 펀런하시길래 나까지 미소가 나왔다. 기와집 폴바셋도 인상적이었고.
비가 살짝 와서 흐릿한 월정교를 보면서 꺾으니 15km 찰보리빵 급수대. 그대로 뛰면서 한입 베어 물었다. 사실 찰보리빵은 경주 바깥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고 여태 먹은 것들이 맛도 밋밋해서 별 기대 안했는데, 이건 달아서 맛있었다. 경주 본토 맛이 좋은 건지, 아니면 이 상황에서 뭘 먹어도 맛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저 입에 다 털어넣었는데 목이 멕힌다. 페이스를 늦추고 급히 급수대에서 포카리 원샷했다.
이후 다시 시내가 나왔고. 19km에서 풀과 하프가 갈라졌는데, 아킬레스건 상태가 안 좋다면 여기서 하프 따라가서 DNF할 생각이었다. 근데 오히려 지난주 서울레이스때 보다 상태가 더 좋은데?
파워젤 전략은 9 19 24 29 34 이렇게 다섯번이라 19km에서 아미노바이탈을 깠는데. 빗물에 미끄러워서 손으로 잘 안 까져서 이빨로 뜯었더니 방향이 잘못되어 젤이 안나와!! 어떻게든 구멍이라도 뚫어보려 송곳니로 이래저래 씹어봤지만 일본의 소부장 공업력은 경이로울 정도로 강력했다! 여태 풀 대회가 늘 그랬듯, 하프쯤 가면 젤 하나씩 나눠주지 않을까 싶어서 새거 하나 더 뜯어서 먹었다. 근데 경주마라톤은 주로에서 젤 안나눠 주더라. 패키지에 이미 포함이 되어서 그런가.
23.5km 반환점까지 마주오는 주자들 보면서 화이팅하고. 이상하게 반환점 가는 길은 페이스가 쳐졌는데 빠져나와서는 또 빨라진다 싶드만, 가민기록 보니 저 반환점에서 고도가 제일 높았네. 의식도 못한 은은한 업힐이었다.
30km에서 출발점인 경주시민운동장 앞을 지나는데. 여기서도 만약에 아킬레스건이 안 좋다면 DNF하려던 지점2. 다행히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여기부턴 쥐와의 싸움인데. 심할땐 하프 뛰다가도 쥐가 올 만큼 쥐가 잘 나는 편이고, 봄에 잘 써먹었던 CEP 카프슬리브를 잃어버려서 장비빨 없이 내 몸과 크램프턴만 믿고 가야하는 상황. 쥐 전조는 하프를 채 지나기 전부터 있었는데 여기까지 잘 버텼고, 크램프턴 투입. 이제 이 식초맛도 좀 적응이 되는 듯. 대구마라톤때 처음 먹다 사레 들려서 호흡이 다 흐트러졌었는데.
30km 넘어서부터는 서하마의 정신과 시간의 길보다 더한 지루함이었다. 한동안 아파트만 나오더니 뚝 끊기고 시골 풍경. 마주오는 주자들 보면서 곧 마지막 반환점이 나오겠지 나오겠지 나오겠지 하는데 끝은 없고 이와중에 업다운이고. 가민기록 고도 보면 23.5km 반환점보다 고도가 낮은데도 후반이라 더 힘들게 느껴졌다.
34km에서 마지막 파워젤을 먹어야하는데. 남은 건 아까 그 잘못 뜯은 아미노바이탈 뿐. 이래저래 시도해보다가 원래의 단변 방향이 아닌, 손잡이 쪽을 잡고 장변 방향으로 길게 뜯으니 모양은 좀 그래도 어쨌든 먹을 수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업힐에 몇번의 욕을 하고서야 35km 경주빵 급수대가 나왔다. 이건 못 참지. 경주빵 절반을 삼키고, 나머지 절반을 털어넣는데 이번에도 목이 멕힌다. 하필 업힐 중이기도 했고, 시계 보니 330은 하겠네 싶어서 잠깐 걸으면서 물과 포카리를 마시고 다시 출발. 곧 36km 마지막 반환점이 나왔다.
앞에 벌어둔 시간이 꽤 남아서, 남은 거리는 페이스 510만 하면 되겠네- 하면서 쉽게 생각했는데, 올때 평지라고 생각했던 구간들이 돌아갈땐 죄다 업힐이었다. 조금 걸어서 구간 페이스 530까지 밀리기도했지만 어떻게든 330은 해보려고.
마지막 500m 정도 남겨두고 다시 시내로 들어올 즈음, 정신력도 한계라 앞은 보이지도 않고 응원소리만 들으며 뛰었다. 웃으며 사진 찍히고 싶었는데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을 듯. 기록은 3시간 28분.
공식적으로 9번째 풀코스이고, 제마 동마 대구 경주 330 달성. 춘마는 420이라 내년엔 춘마 가고 싶은데 신청 성공할지?
아킬레스건이 버텨줘서 다행이고. 뛸땐 괜찮았는데 밤 되니 그냥 걷다가 뒷꿈치가 찌릿하더라. 보폭을 반으로 줄여서 걷는 중. 4주 뒤 고베마라톤인데 2주는 뛰지 말고 쉬려고.
쥐 안 난 것도 신기한데. 경주 가는 짐 싸면서 CEP 카프슬리브를 못 찾아서 330 실패하면 합리화할 밑밥 하나 더 깔았다 싶드만. 주로에서 스프레이 조차 한번도 안 뿌렸는데도 쥐가 안 났다. 전해질 채우려고 전날 태국음식과 국밥으로 짜게 먹어서 그런가. 출발선에 서 있는데 아는 형님이 보시고는 얼굴이 왜 이리 부었냐고.
전날 경주마라톤 안내책자에 보니 컴프레스포트 부스가 있길래 CEP 말고 급하게 컴프레스포트 카프슬리브 사서 신고 뛸까 하다가, 홈페이지 들어가보니 CEP보다 비싸다? 그럼 업계 1위 CEP를 사지 컴프레스포트 살 이유가 없다 싶어서 아침에 부스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끝나고 가는 길에 컴프레스포트 부스가 보이길래 들어갔드만 30% 할인하더라. 일단 사긴 했는데, 이럴거면 아침에 사서 신고 뛸걸 ㅋㅋㅋㅋㅋㅋ 싸게 잘 사긴 한 듯.
전날 미리 경주로 내려갔고, 숙소 예약을 늦게 해서 시내쪽은 적당한 가격을 못 찾았고 안강읍이라는 곳으로 잡았는데. 행정구역은 경주인데 시내까지 거리는 오히려 포항이랑 가깝다고. 그래도 경주시민운동장 까지 시내버스로 한방에 가니까 괜찮겠지 싶었는데, 시내버스 첫차가 6시 22분이더라. 버스 내리니 딱 7시, 경주시민운동장 도착하니 7시 10분. 다음번에도 숙소를 안강읍으로 잡을지는 글쎄.
짝꿍이 처음으로 응원왔는데 마라톤대회를 처음 본다고. 10시반쯤 부터 봤는데 한동안 주황색 티셔츠 입은 사람들이 웃으면서 들어오다가(첫 완주의 기쁨을 느끼는 하프 후미주자인 듯?), 난닝구만 입은 사람들로 바뀌더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와서 드러눕고 앰뷸런스가 몇대나 들어오고 이 힘든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같이 하고 싶게 만들려했는데 오히려 역효과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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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후기 추! 글을 읽다보니 새삼 여유가 느껴져서 저도 저번주를 돌아보게 되네요~ 다음 대회때는 회복하셔서 좋은 결과 있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