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마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습니다.
완주 직후의 고통은 금세 잊혔는데, 이상하게 감정만은 계속 남아 있네요. 몸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도 그날의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기분입니다.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쉬워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 번 남겨봅니다.



나는 원래 운동을 싫어했다.
땀나는 게 불쾌했고, 햇볕에 조금만 서 있어도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피부가 하얀 편이라, 햇볕에 노출되면 내 얼굴은 꼭 삶은 문어 같았다.
그래서 체육 시간엔 늘 골키퍼를 자처했다.
“팀의 중심은 골키퍼지. 암만!”
그럴듯한 말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최대한 덜 뛰고 싶었던 것뿐이다.

사회에 나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일했고, 퇴근하면 게임, 술, 담배.
짱구를 꽤나 굴려야 하는 일을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짱구가 예전처럼 굴러가질 않았다.
경력은 이제 막 주니어를 벗어난 느낌인데, 몸과 머리는 완연히 시니어가 되어 있었다.
내가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왠지 체력이 먼저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거울 속엔 피곤한 얼굴이 있었고, 허리도, 어깨도, 마음도 함께 굽어 있었다.
건강검진에서는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이러다 진짜 고장 나겠구나’ 싶었다.

그래 결심했다. “운동을 해야겠다.”
퇴근 후 모처럼 운동복을 챙겨 아파트 헬스장에 내려갔다.
어쩌다 가끔 들르던 곳이었지만, 묘하게 생경했다.
기구는 복잡했고, 거울은 지나치게 많았다.
그 앞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니, 왠지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땀은 한 방울도 안 흘렸는데 얼굴이 먼저 뜨거워졌다.
결국 트레드밀 위에서 살살 걷다, 기구 몇 개 만지작거리다 돌아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어색했고, 부끄러웠다.

‘그래, 남들 눈치 보며 운동하느니 차라리 헬스장을 집으로 옮기자.’
그날 밤, 치닝디핑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거면 충분하겠지.”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장비는 점점 늘어났다.
랙이 들어오고, 덤벨이 생기고, 바벨, SBD 풀세트, 맥그립, 심지어 거꾸리까지.
방 하나를 통째로 비우고 직접 매트를 시공했다. 그렇게 내 방은 점점 체육관이 되어갔다.
택배가 도착할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아내 눈치가 조금 보이긴 했지만,
운동하는 모습이 싫진 않았는지 “한 달에 하나씩만 사”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근육보다 장비에 더 진심이 되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다.
“역시, 내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
남들은 마스크를 쓰고 헬스장에서 답답하게 운동할 때,
나는 거의 나체로 집에서 자유롭게 바벨을 들었다.
홈짐은 나의 자부심이자, 나만의 성역이었다.

몸을 만드는 데엔 관심이 없었다. 먹는 걸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이 먹고, 힘이라도 세지자.” 그게 내 철학이었고, 그렇게 파워리프팅에 빠졌다.
적은 반복, 무거운 중량, 그리고 치킨과 맥주.
단백질 보충은 고기로, 회복은 위스키로 했다.
그래도 운동을 해서 그런가, 체중은 꽤나 빠졌고 디스크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2년 남짓 그렇게 살았다.
홈짐은 내 자부심이었고, 한편으론 내 핑계였다.
“오늘은 장비 점검 좀 해야지.”
운동보다 장비 관리가 더 철저했다. 하지만 장비는 나를 구하지 못했다.
어느 날 어깨가 나가고, 운동은 멈췄다. 멈춤은 포기가 됐다.
그러나 이 장비만큼은 여전히 내 자부심이다.
가끔 홈짐에 들어가 먼지 쌓인 바벨을 보면, 묘하게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시간이 지나자 허리와 목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렸고, 집중도 흐트러졌다.
“요즘은 머리가 예전만큼 안 돌아가.”
어느 날 퇴근길에 툭 내뱉은 그 말을 아내가 들었다.
아내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이거 봐. 달리기를 하면 머리도 좋아지고, 허리도 좋아진대.”
헛소리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며칠 동안 그 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진짜일까?‘
그러다 문득 결심했다.
“그래, 한 번 달려보자.” …아니다. “그럼 운동화부터 사볼까?”

그날 밤 유튜브에 ‘러닝화 추천’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마라닉TV를 보게 됐다. ‘왕초보 30일 달리기’ 영상을 보다가 런데이 앱을 알게 됐다. “그래, 나도 해보자.”

그리고 2024년 7월 1일.
처음으로 런데이를 켰다. 1분 뛰고 2분 걷기. 숨이 턱 막혔다.
그런데 런데이 아저씨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대단합니다! 멋집니다!”
신기하게도 그 말이 힘이 됐다. 
그렇게 하루 뛰고 하루 쉬는 ‘하뛰하쉬’ 루틴이 생겼다.
단순한 규칙이었지만, 그 단순함이 나를 붙잡았다.

8주가 지나자 30분을 내리 달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곧이어 50분 달리기 프로그램에도 도전했다.
몸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비가 와도, 번개만 치지 않으면, 아프지만 않으면 뛰었다.
운이 좋게도 집에서 10분 거리에 트랙이 있어서 자주 나갔다.

밤의 트랙은 생각보다 활기가 넘쳤다.
하루 종일 고된 시간을 보냈을 텐데도, 조명 아래엔 걷는 사람도 있었고, 뛰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묵묵히 한 바퀴씩 돌았고, 고수처럼 보이는 누군가는 일정한 속도로 트랙을 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리듬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움직였다.
러닝화가 바닥을 치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만들었다. 그 소리에 맞춰 나도 자연스럽게 발을 옮겼다.
달리다 보면 머리가 복잡하지 않았다. 호흡은 거칠었지만 생각은 단순했다.
예전엔 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나도 러너처럼 보이겠네.” 조명에 비친 내 그림자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새벽의 트랙은 달랐다.
밤에는 사람들의 숨소리로 가득 찼던 공간이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조명은 꺼져있었고, 어둑한 트랙 위엔 서너 명쯤 되는 러너만이 묵묵히 달리고 있었다.
운동화가 바닥을 스칠 때마다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호흡이 들리고, 발소리가 이어졌다.
단순했지만 그게 좋았다. 그 시간의 달리기는 조금 특별했다.
하루를 먼저 선점한 기분, 세상보다 반 발짝 앞서 있다는 감각.
그래서 새벽마다 자주 뛰었다.

이쯤 돼서 대회라는 걸 검색해봤다.
국제국민마라톤, 이름부터 거창했다.
마라톤 접수가 어렵다길래 대구마라톤 풀코스도 미리 등록했다가 다음날 취소했다.
취소한 건 잘한 일이었다. 아마 완주하지 못했거나, 크게 다쳤을 것이다.

러닝을 시작한 지 3개월쯤 됐을 무렵엔 몸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체중이 10kg 가까이 빠지면서, 몸은 하루하루 가벼워졌다.
회사 사람들은 놀라워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야, 너 항암치료 받냐?”며 놀렸다.
조금 늙어 보인다는 소리도 몇 번 들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 어느때보다 내장은 건강하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첫 대회. 국제국민마라톤 10K.
대회 날 아침, 공기는 차가웠고 주변은 이미 러너들로 가득했다.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서 있으니 괜히 선수라도 된 기분이었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마자 사람들은 쏟아져 나갔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따라가다가 금세 포기했다.
병목 구간에 갇혀 속도를 내지도 못했다.
어차피 빠르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꾸역꾸역 달려서 결국 50분 48초로 완주했다.
남들이 보기엔 아쉬운 기록이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최선이었다.
평균심박 187, 최대 199.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숨이 턱 막히고 다리는 타들어갔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아내가 피니시 라인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고, 나는 비틀거리며 그 손을 향해 달려갔다.
첫 대회이자, 첫 완주였다.

그 무렵부터였다.
회식 자리에서도, 친구를 만나도 입만 열면 러닝 이야기였다.
"러닝을 하면 머리가 맑아집니다."
"러닝이 얼마나 좋냐면요."
듣는 사람들의 눈빛은 점점 초점을 잃어갔지만,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에잇톤 트럭처럼 전도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러닝에 미친 나는 회사에서도 PT를 진행했다.
월요일 주간 회의 시간.
수십 명을 줌으로 모아놓고 발표를 시작했다.
주제는 단순했다. 그냥 ‘러닝’.
달리기의 효과부터
달리기를 시작하는 법
러닝화 추천까지 열심히 떠들어댔다.
“원펀맨도 10km 달리기를 매일 반복해서 최강의 히어로가 됐잖아요?”
우리라고 못 할 건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화면 속 사람들은 웃었지만, 그 웃음이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몇몇은 초점을 잃은 눈빛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며칠 후엔 몇몇 동료가 DM을 보냈다.
“저 뛰어봤어요!”
"언제 한 번 대회 같이 나가요!"
그때 알았다. 달리기는 전염된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 시작점에 서있었다.

그다음엔 기록 욕심을 냈다
지난번 대회에서 50분을 했으니 이번엔 49분을 깨보자 마음먹었다.
약 한 달 뒤, 아내와 함께 참가한 자유민주마라톤 10K에서 45분을 달성했다.
먼저 들어온 나는 피니시 라인 근처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멀리서 힘겹게 달려오면서도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는 모습에 괜히 뿌듯했다.
손을 흔들며 맞이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다음 주 정서진 아라뱃길 10K에서는 44분으로 PB를 또 깎았다.

‘나, 재능 있나?’ 싶던 때,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유전자 검사를 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근육 발달 능력 100명 중 99등, 운동 후 회복 능력 99등,
유산소 적합성, 단거리 질주 능력, 지구력, 발목 부상 위험도...
요약하면 운동 재능 ‘거의 없음’.
아내는 “거봐, 재능은 무슨”이라며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뿌듯했다.
“이런데도 4개월 만에 44분이 나왔다고?”
재능을 이긴 러너라고 생각했다.
검사 결과로 모든 걸 단정할 순 없지만, 적어도 재능 탓은 하지 않게 됐다.

나의 훈련은 단순했고, 어쩌면 무식했다.
‘오늘은 조깅!’ 하며 나갔다가 결국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렸다.
그래야만 ‘오늘도 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몸은 늘 뻐근했고, 무릎과 종아리는 번갈아 비명을 질렀다.
그땐 고통과 성장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했다.
땀만 흘리면, 그게 곧 발전이라 믿었고, 결과는 그 믿음을 부추겼다.

틈날 때마다 러닝 커뮤니티를 기웃거렸다.
핫딜 정보, 대회 소식, 러닝화 신상 소식엔 지갑이 먼저 반응했다.
그렇게 물욕을 채우며 내년 대회 접수도 줄줄이 했다.
해외 마라톤은 모조리 떨어졌지만, ‘마라톤 해외 원정’을 꿈꾼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 좀 멋졌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나,
처음으로 하프마라톤인 서울하프마라톤에 나갔다.
직장 동료와 함께였다.
출발 전 미리 챙겨온 에너지젤을 나눠 먹고 각자도생 하기로 하고 쿨하게 찢어졌다.
10km 지점에서 또 하나를 먹고, 급수대에서 나눠주는 것도 하나 더 챙겨 먹었다.
결과는 1시간 38분. 믿기지 않았다.
기록은 만족스러웠지만 너무 힘들어서 풀은 어떻게 뛰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다음 주엔 제물포 르네상스 마라톤 10K에서 41분대, 또 PB를 갱신했다.
자신감이 넘쳐났다. ‘나도 이제 고통러너 입성인가? 언젠가 40분 언더 가야지’ 다짐했다.

JTBC 마라톤이 6개월 남은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풀코스 준비를 했다.
앞 3개월은 체력을 만들기 위해 5월, 6월, 7월은 월 300km씩 마일리지를 채웠다.
8월 중순부터는 본격적인 장거리 훈련에 돌입했다.
20km로 시작해 매주 거리를 늘렸다.
주말 장거리를 하니 주중 회복이 안 돼 오히려 마일리지는 줄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장거리 훈련은 이상하게도 항상 LSD보다는 지속주로 기울었다.
‘천천히 달리자’ 해놓고도 막상 나가면 주체를 못 하고 속도를 올렸다.
뜨거웠던 여름 훈련은 고통이었지만, 그 고통이 또 이상하게 좋았다.

11월에 있을 JTBC 마라톤에서 앞조를 받기 위해,
장거리 훈련도 할 겸 공원사랑마라톤 풀코스에 나갔다.
처음이라는 말에 70대쯤 돼 보이는 신사 한 분이 동반주를 해주셨다.
달리는 내내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처음으로 42km를 완주했다. 530 페이스로 천천히,
심박이 너무 올라 잠깐 걷기도 했다.
아침을 안 먹어서 그랬을까, 이게 사점이었을까. 그래도 끝까지 버티고 완주했다.
기록증을 받아들며 생각했다. “이제 진짜 준비가 됐다.”
비록 연습 겸 참가한 대회였고, 대회라기보다는 동호회 같은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오늘 나는 어엿한 서브포 마라토너가 되었다.
완주 후 집에 가려는데, 사장님이 라면이라도 먹고 가라 하셨다.
집에 가서 아내랑 먹겠다 했더니, 그럼 챙겨가라며 육개장 사발면을 두 개 넣어주셨다.
같이 달린 주자들과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집으로 향했다.
첫 풀코스를 공원사랑마라톤으로 경험한 건 잘한 선택이었다.

JTBC 마라톤 목표는 3시간 30분으로 정했지만, 내심 욕심이 있었다.
그래. 445-450 페이스로 시작해서 여력이 있으면 밀어보고, 없으면 퍼지자.
결국 목표를 3시간 20분대로 수정했다.
그런데 대회를 얼마 남기지 않고 발목에 부상이 왔다.
냉찜, 온찜, 체외충격파, 약침... 회복이 절실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싶었지만
시작도 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달리는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대회 3일 전부터는 카보로딩. 밥, 빵, 떡, 죽, 파스타 이렇게 먹어도 되나 싶을 만큼 먹었다.
대회 당일엔 몸무게가 3kg이나 늘어 있었다.

그리고 2025년 11월 2일, JTBC 마라톤.
진정한 풀코스 데뷔전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떡과 바나나로 간단히 채우고 화장실로 향했지만, 배변은 영 원활하지 않았다.
한참을 버티다 짐 보관 시간에 쫓겨 일단 밖을 나섰다.
대회장에 도착해 짐을 맡기고 가볍게 웜업.
몸은 무겁고 발목은 욱신거렸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챙겨둔 탁센 두 알을 꺼내 삼켰다.

출발선에 섰다. 초반은 계획대로 450 페이스.
1km쯤 지나니 이상하게 몸이 가볍고 심박도 평소보다 낮다.
심박을 160 근처에 맞추니 얼추 430이 나온다.
‘해볼 만한데? 끝까지 430으로 간다!’ 다짐했다.
업힐도 생각보다 버틸 만했다.
7km마다 꼬박꼬박 에너지젤을 먹었고
모든 급수대에서 물을 마셨다.
혹시 모를 쥐에 대비해 29km쯤 크램픽스를 입에 짜 넣다가 코로 뿜을 뻔했지만, 예방 차원이라 믿고 넘겼다.
36km 지점, 바닥 장애물을 피하다 스텝이 꼬였고 왼쪽 종아리에 생전 처음 쥐가 올라왔다.
속도를 줄이니 더 치받는 느낌이라 다리를 쭉 펴 페이스를 유지했다. 다행히 금세 잠잠해졌다.
마지막 업힐에서 페이스가 5분대로 떨어졌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고, 오르막이 끝나자 다시 속도를 올렸다.
피니시 라인이 보이자마자 스퍼트. ‘조금만 더, 다 왔다.’
마침내 피니시 라인을 통과.
가민을 멈췄다. 3시간 9분 후반.
믿기지 않았다. 내가? 내가… 싱글이라고?
숨을 고르는 사이 기록 확인 문자가 도착했다. 꿈이 아니었다.

피니시 구간을 멍하니 걸어 나오는데, 끝에서 아내가 달려왔다.
“왜 이렇게 빨리 들어왔어?”
“나… 싱글했어.”
“진짜? 3:30 목표라며! 미쳤어! 미쳤어!”
아내가 나보다 더 기뻐했다. 나는 괜히 엄근진한 척,
“경거망동 금지. 아직 쿨다운 중이오~” 하면서도 입꼬리는 자꾸 올라갔다.
“이제 서브스리 도전이지. 오늘이 시작이야.” 같은 말도 툭툭 튀어나왔다.

작년 여름, 런데이 30분 프로그램 켜놓고 1분도 제대로 못 뛰던 내가 이제는 어엿한 풀코스 마라토너가 됐다.
다음 목표는 서브스리.
생각만 해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른다.

그날 밤, 축하 파티로 동네 한우집을 예약해 부모님을 모셨다.
고기 굽는 소리와 건배 소리가 번갈아 오르내렸고,
나는 레이스 중간중간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고기와 술을 연거푸 비웠다.
한참 먹다 말고 혼자 히죽 웃는 나를 보더니 아내가 말했다.
“이제 진짜 미쳤나 봐?”
나는 잔을 입에 대며 들릴 듯 말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도, 건강하게 미쳤으니까.”

10k - 41분 (2025-05-04, 제물포)
Half - 1시간 38분 (2025-04-27, 서울하프)
Full - 3시간 09분 (2025-11-02,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