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의 거대 기술 기업들에 필적할 만한 산업을 일구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소련 붕괴 이후 국가 경제 체제를 혁신과 부가가치 중심의 기술 산업이 아닌 석유, 가스, 광물 등 천연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자원 기반 국가(Petrostate)’로 고착화했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가 자본의 유연성과 법적 보호 장치를 바탕으로 실리콘밸리와 유럽의 첨단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는 동안 러시아는 푸틴 정권 하에서 에너지 기업들을 국유화하거나 정권 측근인 올리가르히(신흥 재벌)에게 독점권을 부여함으로써 민간의 자율적인 혁신 동력을 완전히 거세했다.
과거 소련 시절 가졌던 기초 과학과 수학적 역량은 상업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채 군사 기술에만 매몰되었고, 창의적인 인재들은 국가의 검열과 만연한 부패, 그리고 사유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불투명한 사법 체계에 환멸을 느끼며 대거 해외로 떠나는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현상을 초래했다. 러시아판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건설된 ‘스코콜보’ 혁신 센터조차 관료주의와 자금 횡령의 온상으로 전락하며 실패로 끝났고, 한때 러시아의 구글로 불리며 전 세계적 성공 가능성을 보였던 얀덱스(Yandex)마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정권의 통제 하에 쪼개지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러한 러시아 기술 산업에 결정적인 사망 선고를 내렸는데, 서방의 고강도 경제 제재로 인해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등 핵심 부품 공급이 완전히 차단되자 러시아는 자체적인 기술 자급이 불가능한 구조적 민낯을 드러냈다. 서방 기업들이 철수한 빈자리를 중국 기업들이 급속도로 잠식하면서 러시아는 이제 경제와 안보 모든 면에서 중국의 ‘기술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재 러시아 내 스마트폰과 가전 시장의 70% 이상을 샤오미와 화웨이가 장악하고 있으며, 자동차 시장 역시 서유럽 브랜드 대신 체리자동차 등 중국 업체들이 독식하는 등 러시아는 생산 수단과 소비재 모두를 중국에 구걸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것도 이런 이유일것이다. 더욱이 전장에 투입되는 드론, 위성 이미지, 정밀 공작기계의 90% 이상을 중국산 부품과 장비에 의존하게 되면서 러시아는 기술적으로 중국의 하급 파트너이자 자원 공급원으로 전락하는 굴욕적인 지배 구조 속에 갇히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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