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년(1731년) 이후 출생한 모든 사노(私奴)의 양처(良妻·양인 신분의 처) 소생은 모두 어미를 따라 양인이 되게 하니, 이때부터 위는 약해지고 아래가 강해져서 기강이 무너지고 민심이 흩어져 통솔할 수 없게 되었다."
(정약용의 주석) 임진년(1592) 난리 때에는 남방에서 창의(倡義 의병을 일으킴)한 사람들이 모두 집안의 종 수백 명으로 군대를 편성했는데, 임신년(1812) 난리 때에는 고가 명족(故家 名族 오래된 명문 집안들)들이 창의할 것을 의논하였으나, 한 명의 종도 구하기 어려웠으니, 이 한 가지만 보더라도 대세가 완전히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목민심서 예전육조(禮典六條) 변등(辨等)

다산 정약용도 노비 수급 줄어드니 의병 줄어든다고 우려 표했는데
지들 억압받는 인생임에도 자진해서 의병짓할 호구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