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케노호소미치(酒のほそ道)라는
술에 대해 다루는 유명한 만화가 있다
우리말로는 술의 오솔길 정도가 될텐데
우리나라에는 술 한잔 인생 한입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발간되고 있으니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해
술을 정말 좋아하는 샐러리맨이
비싸지 않지만 계절감 있는 요리들을
단골집에서 먹거나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서
사케, 쇼츄, 맥주 등을 곁들이는 내용이야
맥주를 맛있게 마시고 싶어서
일부러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 마신다던가
사케 댓병을 품에 차고 냇가에 놀러가서
시냇물에 담궈두고 차갑게 마신다던가
더운 여름에 집 안에 에어컨 세게 틀고
따뜻하게 데운술을 마신다던가
정말 소소하지만 술을 맛있게 즐기기 위한
주인공 또는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있지
에피소드 형식이라 술술 읽히는데
읽다 보면 결국 술은 마시기 위한 것이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반성하게 되더라
술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은
술을 사는 즐거움
술을 모으는 즐거움
술을 마시는 즐거움이 있지
본인이 마셔보고 싶었던 술이든
구하기 힘든 술을 손에 넣었을 때의
쾌감은 꽤나 중독성이 있다
갤러들이 무리해서라도
삭출을 다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테고
특히 P사케를 정가에 구했을 때는
잠깐이지만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지
술을 모으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한 양조장의 술을 세트로 모았을 때의
뿌듯한 마음은 나도 잘 알고 있지
냉장고만 봐도 배가 부른 느낌이랄까
계절 한정판을 사계절로 모은다거나
주조미 시리즈를 모두 구한다거나
변주도 다양하니까 즐거움이 끝이 없더라
요즘 사케에 입문한 이들의 상당수가
여기까지의 단계에만 머무는 것 같다
술을 구하고 모으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쓰는 느낌이랄까
그것도 지름길만 골라가려고 한다
어디 지역 어디 주판점에 가서
특정 술을 구하는 것이 매뉴얼화되고
결국은 P사케의 구매 여부가
여행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듯하더라
퀘스트를 받고 그것을 달성하는
온라인 게임을 하는 건가 싶다
뭔가에 익숙해지기 위한 과정으로서
목표를 세우고 접근하는 것은 괜찮지
그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최고의 효용성을 올릴 수 있는
최적의 스킬트리를 검색해서
그것만 몰두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결국 술은 마시려고 구하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게 구한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김장은 먹을려고 하는 것이지
일부러 묵힐려고 하는 것은 아니잖아
마시더라도 한번에 몇병씩
취한 상태에서도 계속 마시는 것은
소주나 맥주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마다 주량이 다르기도 하지만
주량에 대한 기준 또한 조금씩 다르더라
인사불성이 되기 직전까지가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정도까지가
일반적인 주량의 기준이 아닐까 싶네
나는 스스로에게 보다 엄격하게 두는데
이 술을 마시고 그것의 향과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정도까지로 한다
나 같은 경우 사케는 720ml 기준으로
반병에서 2/3병까지가 최선이더라
예전에는 1병까지도 가능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것도 줄어들더라고
그 이후에 마시는 술은
나는 솔직히 의미가 없다고 본다
단순히 취하기 위한 약물일 뿐이지
향도 맛도 못 느끼는 상태라면
뭘 마셔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상태라면
굳이 힘들게 구한 사케를 마실 필요가 있나
그냥 맥주나 위스키로 마무리하는 게 낫지
다음날 숙취와 일에 지장주는 것까지 생각하면
그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최선이지만
사람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기껏 좋은 술을 힘들게 구해와서
새우깡이나 라면에 먹는 것은 너무 아쉽다
술에는 격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술은 그 격에 맞는 그에 어울리는
안주 또는 요리가 함께 갖춰져야
그것의 가치를 온전히 전해받을 수 있다
일본에서 3천엔짜리 니혼슈라고 하면
선물용으로 쓰는 고급술로 여겨진다
쥰다이, 다이긴 정도는 되는 술들이지
5천엔이면 해당 양조장의 최고의 술이다
그만큼 재료, 수고, 기술, 시간을 집약한
양조장의 결정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두배로 정가를 책정한 고큐류는 제외하자)
그런 술을 구했고 마신다면
어떤 요리가 어울리는지 찾아보고
그 요리를 내는 업장에 가져가서 마시자
안주 없이 온전히 술만 마셔보고
안주와 함께 술을 즐겨보고
배가 어느 정도 찬 상태에서 마셔보고
술이 가진 모습을 다양하게 즐겨보자
요리가 마음에 들었다면
주인장한테 한잔 나눠주기도 하고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사정 상 집에서 마셔야 하는 경우
일단 빈속에 먼저 마셔보자
취기가 빨리 오르는 단점이 있지만
술의 향과 맛을 정확히 캐치할 수 있다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는
이후 본인의 요리와 함께 즐기면 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텐데
마리아쥬랍시고 아무거나 곁들이지 말고
그냥 밥은 밥대로 먹고 이빨 닦은 다음에
치약의 기운이 사라지면 그때 다시 마시자
그동안 술이 풀어지기도 하고
빈속에 마실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르다
사케를 즐기는 방법에 대한 정답은 없다
위의 내용들은 조금 먼저 경험한 입장에서
사견을 적은 것이니 참고만 하면 된다
요즘 갤에 술을 샀다는 글들만 올라오고
정작 술을 제대로 즐긴 글은 줄어들어서
아쉬운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적어봤네
나름 오랫동안 사케를 즐긴 까닭에
수많은 사케 입문자들을 만나보았는데
사케의 지름길을 쫓는 사람치고
오래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갤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고닉들이
종종 증발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본다
지름길을 쫓아서 게임 클리어하듯이
특정 사케를 구하고 마시는 것에만 몰두하면
아무래도 금방 물리게 될 수 밖에 없다
엔딩을 본 게임에 손이 가지 않는 것처럼
사케를 오래 즐기고 싶다면
지름길 말고 오솔길을 걸어보자
결승점을 향한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산책 중에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느끼는 것 또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여러 사케를 다양하게 접해보고
그 술을 온전히 느껴보도록 하자
어떤 향과 맛을 가진 술인지
양조가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느긋하게 감상해보는 것도
사케를 마시는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P사케가 아니더라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케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술이 될 수 있다
돌아가는 길이 때론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는 법! 그런거보면..나는 오늘의 안주를 먼저 고르고 거기에 알맞는 술을 고르는 편인데..오솔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부니가 좋아졌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생각보면 저도 사케에 빠지게 된 계기는 일본갔을때 잔술 5가지를 깔아놓고 비교하고 음미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순수하게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었네요. - dc App
술의 엔딩은 술이 아니라 오히려 궁극의 제철요리라고 생각함 ㅋㅋ
맥주와 위스키 멸시를 멈춰주세요
ㄹㅇㅋㅋ - dc App
앗..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맥주, 위스키, 와인 다 좋아합니다
ㅋㅋㅋㅋㅋ 위트에 웃고감
좋은 정보를 공유하는게 공략집처럼 되는건 좀 안타깝습니다
요즘은 니혼슈 구하는거보다 페어링 찾는게 더 머리 아픈거 같음 ㅋㅋ
ㅇㅈㅋㅋ 처음엔 막 먹었는데 요즘은 계속 상상해보면서 까다롭게됨ㅋㅋ - dc App
잘모르는 맛의 술이면 더 어려웡 ㅠ - dc App
근데 이 아조시 요리 잘하셨던거 같은데.... - dc App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 dc App
입문부터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뭐든 서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 즐긴다면 결국 즐기는 방법은 뭔가 수렴하는 느낌..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초기때 좀 더 다양하게 마셔볼걸.. 하는 부분은 있네요
어어 이거 저 저격인가요 - dc App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ㅜㅜ
사람마다 취향도 다르고 즐기는법도 다르고 쾌감을 느끼는 포인트도 다르니 ㅎㅎ 공통적으로 선배들에게 얻는 교훈은 끝판왕만 쫓다보면 빠르게 질린다.. 낮게 나는 새가 두루두루 본다 ㅋㅋㅋ
어제 꽐라돼서 글쓴것때문에 찔리는데.. 반성하겠습니다 ㅠ - dc App
딱히 특정인을 지칭한 것은 아니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