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날이 있다.

그냥 괜시리 틱틱거리고

별거아닌 일에 언성을 높이게 되는...

어제가 조금 그런 날이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칭얼거리는 회장님 덕에 마님의 분노게이지 까지 높아진 상황

어제도 사케를 못마셨는데 오늘도 못마실순 없다는 마음으로

마님에게 슬쩍 물어본다. 사케 ㄱㄱ?

다행히도 오케이 싸인이 떨어지고 뚜따하고 시음기를 적는다는

생각마저 깜박하고 향한번 맡고 술한잔을 털어넣는다.

야마모토 퓨어블랙은 이번에 두번째 마셔보는데 당시 거의

입문하던시기에 아무생각없이 마셨어서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노무 뇌는 마실생각만하지 기억이라는 기능은 제기능을

못하는것 같다. 아무튼 한모금 술을 넘기자

바나나? 메론? 달달한 계열의 과일향과 찡한 단맛이 느껴지고

이후 산미가 치고 올라와 피니시가 산미로 길게 떨어진다.

지금까지 마신 사케들 중에서 주도가 낮은 편임에도 산도때문에

엄청 달다고 느껴지진 않고 식중주에 아주 잘 맞는 술이라고

느껴졌다. 특히 온도가 조금 올라오니 단맛 이후 신맛에서 잠깐

치고오는 쓴맛이 기분나쁜 씁쓸함이 아니고 입맛을 깔끔히

정리해주는 쓴맛인데 알콜 느낌을 일부로 쓴맛으로 정리한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알콜중독인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씁쓸함마져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는 결국 산미가 다시 치고와서

산뜻하게 피니시가 떨어진다.

야마모토 퓨어블랙을 입문주로 많이들 추천하는데 오히려 나는

입문주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 술로 입문하면 웬만한 수준의

사케가 아니면 만족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마님이 물어본다 이 사케 두번째 마시는거 아니야? 산본?

응. 맞아 야마모토 퓨어블랙이라는 술이야 라고 대답하자
마님은 야마모토! 기억했어 라고 대답한다...

마님의 분노마저 식혀준 고마운 사케지만

사케는 준마이만 기억하는 마님이 어디가서 야마모토 준마이

달라고 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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