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거짓말은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가 문헌 최초의 고조선이라는 주장
1) 대학역사 교수들이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거짓말은
'기자조선’ 이전의 조선(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떤 문헌에도 발견된 적이 없다.' 는 주장이다
그리고 사마천 사기 송미자세가의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내용도
기자가 한반도 평양으로 오지 않았기에 기자조선을 부정하고 이때 고조선도 부정한다
☞ 사마천 사기 송미자세가 (BC 12세기 내용)
於是武王乃封箕子於朝鮮而不臣也
이에 주 무왕은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기자는 주무왕의 신하(제후)가 아니다
(해석)
주무왕의 신하가 아니니 주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조선은 BC 12세기 주무왕 시기에 존재했다
존재하지 않는 조선이었다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춘추필법을 사마천이 사용했을 리 없다
이후 기자관련 내용은
1) 한서지지지 연나라 영역에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기록이 있고, 한서지리지 닉랑군 조선현에 주석이 있다
3) 기자의 후손으로 전국시대 조선후의 기록은 삼국지 위략과 후한서 예전에 기록되어 있다
2) 죽서기년, 사마천사기, 관자를 교차 검증하면
숙신/식신이 조선으로 고조선(단군조선)은 BC 22세기에 최초로 등장한다
사서간 기록 내용의 교차 검증은 대학 역사교수들의 의무이자 책무이니
고조선(단군조선)이 숙신/식신으로 BC 22세기 부터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것을 대학 역사 교수들이 모를 수가 없다
(1) 사마천 사기 오제 본기의 BC 22세기에 발과 식신이
관자의 BC 7세기에 발과 조선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식신이 조선으로 곧 식신이 고조선이다
(2) 사마천사기 주본기의 BC 12세기에 식신이
죽서기년에 동일한 사건을 숙신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식신이 숙신으로 곧 숙신이 고조선이다
☞ BC 22세기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 순임금
虞舜 : 南撫 交阯 北發, 北 山戎 發 息慎.(우순 : 남무 교지 북발, 북 산융 발 식신)
순임금: 남쪽으로는 교지(交阯)·북발(北發, 북쪽에 있는 발 나라 영토)를,
북쪽으로는 산융(山戎)·발(發)·식신(息愼)을 위무했다
※주) 남쪽에는 '북발식신(북쪽의 발식신 나라 영토)가 아닌 '북발(북쪽의 발 나라 영토)로 표현했으니
'발 식신'은 2개의 나라인 '발'과 '식신'이다
☞ BC 12세기 주 무왕/ 성왕 시기의
사기 주본기와 죽서 기년의 고조선(숙신 식신) 기록
BC 1111년에 숙신이 주나라에게 호시와 석노(정교한 돌 화살촉)를 보냈다
[죽서기년] 周武王 十五年(BC 1111), 肅愼氏來賓. 숙신(고조선)이 국빈 방문했다
[사기 공자세가] 仲尼曰 : 昔武王克商, 於是肅慎貢楛矢石砮, 長尺有咫.
: 공자가 말하기를 엣날 주무왕이 상나라를 이기자
숙신이 초첨단 무기인 호시와 석노(정교한 돌 화살촉)를 보내니 길이가 1자 한척이었다
주나라 시기의 숙신(肅愼)이 식신(息愼)으로 고조선이다(백악산 아사달 시대)
[죽서기년] 周成王九年 有事于太廟, 初用勺. 肅愼氏來朝 王使榮伯「錫 '肅愼氏命'」 .
: 태묘에 제사가 있었는데 술잔을 처음 사용했다
숙신(고조선)이 방문하니 '숙신의 친서' 백색 금속판를 영백이 받게했다
[사기 주본기] 成王九年 旣伐東夷, 息愼來賀. 王賜榮伯 作「賄 '息愼之命'」
: 안양시의 (무경과 삼감의) 동이를 모두 정벌하자 식신이 와서 축하해 주었다
성왕이 '식신의 친서' 선물이라는 시를 영백에게 짓게 했다
☞ BC 7세기 관자의 고조선(조선) 기록
[관자] 管子對曰 : '發 朝鮮之 文皮..然後八千里之 發 朝鮮 可得而朝也'
: 관자가 말하길, 발(발조선)과 조선(진조선)의 특산품은 문피로
,...그러한 뒤에야 '발'과 8천리 거리의 '조선'과 거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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