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82년생이니까 나보다 어린 흙수저들도 많을테고

나보다 더 어렵게 흙수저 탈출한 형들도 있을꺼야..


꼴칰 팬인지라 오랫만에 칰갤 눈팅하다가

흙갤 생긴거 보고 들어와서 꼬맹이들 싸질러 놓은 글보니까

괜시리 어릴적 생각나고 가슴 먹먹해서 글 적어본다.


난 사실 어린시절에는 남부럽지 않은 금수저였다.

아버지가 인삼 많이 나는 충남 금산 분이신데

결혼하시며 처음 자리잡은 곳이

경기도 부천이야.. 지금은 일산 분당과 함께 신도시 개발 되며

수도권에선 가장 번화한 곳 중 한 곳이지만

그때 기억에 부천은 정말 논과 밭 뿐인 시골이였지


우리 아버지는 자수성가 한분이셨어..

영업분야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분이셔서

당시에 부천역 앞에 외환은행 건물 위에 있던 K출판사에서

영업력으로 인정받아 승승 장구 하시며

어린나이에 많은 부를 축적하셨지.

난 유복했어.. 내가 국민학교 입학전이였는데

우리집에 패밀리 게임기가 있었고 동네에 2대밖에 없던 비디오도 있었고

미취학 아동이 후레쉬맨과 미래소년 코난을 보고자란 첫세대였어.

(내 세대에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야)

아버지는 내가 입학하고 자라는동안 더욱 더 부를 축적하셨고

덕망을 높이 쌓으셔서 시의원 출마까지 생각 하고 있을때였지.

내가 5~6학년 쯤 인가 TV에서 심은하 누나 데뷔했던 마지막 승부란 드라마가 한참 인기 있을때쯤


그때..

그때부터 집이 급격히 기울었어


죽염이란게 처음으로 등장해서 건강에 으뜸이라며

언론에서 엄청나게 신드롬을 만들때 였는데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면서 죽염공장에 크게 투자를 하신거야

그때 당시에 20억원을 투자하셔서 물건 출하만을 남겨놨었는데

하필 그때 스브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생소금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

죽염 효과 입증 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들이 방송 되면서

그 물건은 공장에서 썩어버렸지 


아버지는 가끔 아직도 술드시면 그때 이야기를 회자하셔

"난 아직도 문성근이 너무 싫다고"

참고로 그때는 성근이 형이 진행하던 시절이였음


6학년 때인가 집에 빨간 딱지 붙는거 봤다.

어머니 아버지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도망가시고 

난 부모님 품을떠나 8촌 친척 집에 살게 되었어.

그나마 친척분들이 인성이 훌륭한 분들이라 스스로 눈치는 봤지만

나를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잘 살펴 주셨다.


부모님과 연락이 된것이 그때 쯤이야

어머니는 인천 계산동에 있는 어느 교회 창고 방에서 혼자 지내시고 계셨고

나도 그 창고 방으로 들어가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했지.


어머니는 그생활에 지쳐 알콜에 의존을 하고 계셨고

매일 자살기도를 하셨는데

그때마다 나는 술취한 어머니 말리며 그리고 울며 학창시절 시간을 다 보낸것 같아

아버지는 어느 절에 계신다고 말을 들었는데


군산에 있는 어떤 곳에서

사실 그 와중에 바람 피우셨더라고..


그렇게 아프면서 고등학교에 들어갔어.

뭐 하지만 이미 공부와는 멀어졌으니

인문계 들가서 공부할 수도 없었으니

당시 실업계중에 유행이 였던 정보 산업고 들어 갔지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가 유행을 하고

다음, 네이버 같은 거대 포탈들 등판할 시기였으니..ㅎㅎ


여튼 그렇게 그럭저럭 비슷한 친구놈들만나 똥통학교 생활 마칠때쯤

앞으로 뭘해먹고 살지 고민 되는거야..

근데 내가 그림을 잘그렸더라고

어떻게 지잡대 시디과라도 가자 해서

어처구니 없이 전화로 대학교에 합격했어


지방에 있는 D전문대였는데 전화하니까

입학하라는거야 ㅆㅂ 이게 뭔가했는데

그때 친구들 역시 모두 갈 곳이 없었나봐..

내가 가자고 꼬셨더니 웃긴게 10명이서 동반 입학 했어.

정말 기안대학교 같은 곳이였어.


그학교에서의 기억은 1학년 365일중 330일 술마시고

2학년 (2002년 월드컵 해였음) 365일 중 363일 술마셨어

그때 동거했던 여친이 아직도 내게는 은인이야

정신이 밖힌 여자여서 웃기게도 함께 편입을 준비했다.

둘다 미술 전공이였어 정말 그때부터 철들어 보자 했지

동대문에 있는 창조라는 편입미술 학원을 함께 다니며

정말 개처럼 그림 그렸다.

집안의 지원은 1%도 꿈굴 수 없었기에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주꾸미집에서 알바하고

2시간 자고 일어나서 아침 10시부터 밤 8시까지

미친듯이 그림만 그렸다.

그러니까 못배운 놈이지만 성과가 나오더라

그래서 편입시험 이곳저곳 봤는데

4군데중 3곳 붙었어.. 시디쪽에서 유명한 곳으로..


근데

근데

돈이 없더라..

어머니가 입학금 등록금 마지막날 울면서 전화하시더라..

알바중이였는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도움 받길 원했어..

해주실 줄 알았어


근데..

근데 전화로 눈물 흘리시더라.

그때 느낀게 그래도 난 다행이도 엄마가 좋은분이였어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하고 군대 갔다.


군대 다녀오니 아버지도 돌아오셨더라.

제대하고 3일만에 광화문에 있는 D면세점 알바들가서

한달에 360시간씩 일하며 학자금 부터 다 갚았다.

그리고 2년동안 모아서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거 해보자 하는 마음에

그래픽 디자인 실무교육 배웠다.

어찌어찌 운이 좋아

좋은 에이전씨 들가서 잘배우고

이제는 그래도 알만한 디자인 에이전씨 디자인 팀장 달았다.

연봉은 아직 넘치게 잘벌지는 못해도

먹고 살만큼은 벌고 있어.


오전부터 클라이언트랑 낮술해서 뭔글 싸지른지도 모르겠고

취해있는데

그래도 희망가지고 살자

그리고

열심히 살자.

살다보니까

하면 할 수 있더라.


미안하다 뻘소리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