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에서 태어남. 부모 이혼함.
할머니 손에 자람. 장손이라 책임감 강했음.
체육중→운동선수 생활함. 폭행, 구타, 고통이 일상이었음.
국가대표 꿈꿨지만, 무릎 나가고 모든 거 무너짐.
그 이후론 말 그대로 생존이었음.
고졸도 못 한 상태에서 일하러 대전 올라옴.
택배 상하차부터 시작해서 배달, 공익, 보안, 무인경비, 조선소, 도배, 인테리어, 아스팔트, 다시 택배
수십 개 직업 돌았고,
수없이 부상당했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음.
내가 그렇게 벌어서 동생 용돈도 주고, 가족 생계도 버팀.
근데 동생이 한 마디 함.
“나는 형처럼 그렇게 힘들게 안 살 거다.”
그 말이 가슴에 박힘.
동생은 빚 있음.
음주운전 함.
칼 들고 위협한 적도 있음.
그때도 참았음.
신고도 내가 함. 무서웠지만, 형으로서 마지막 책임이라고 생각했음.
가족 앞에서도 존중 못 받음.
식당에서 “그냥 좀 해라!” 소리침.
형한테 친구처럼 말하고,
내가 조용히 자리를 피함. 감정 터질까봐.
그렇게 말 없이 넘기고 또 참음.
그래도 동생 잘되라고 도와줌.
회사도 같이 다님.
내 출근일수 줄여달라고 사무실에 부탁까지 함.
근데 돌아온 말은
“형 사무실에 제대로 말했어? 내 출근일수 왜 줄어?”
결국 깨달음.
내가 아무리 다 줘도, 돌아오는 건 존중이 아님.
난 내가 할 수 있는 선까지 최선을 다했음.
형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도.
지금도 고정 수입 없음.
근데 기술 배우고 있음.
사장님이 기회 주셔서 CAD 학원도 다님.
드론 맵핑 학원도 지원해 주셔서 준비중.
무급임.
근데 감사함.
내가 성장하기 위해 버티는 시간이라 생각함.
내가 살아온 삶을 기록한 PDF임
https://drive.google.com/file/d/1hQFo3YoGdbaC1tgipX0L61eC4thL4Hd5/view?usp=drivesdk
많이 김 적어도 30분정도 읽어야됨.
링크 무서우면 보지 말고 갈길가셈.
이건 내 삶이고, 내 기록임.
불처럼 버텼고,
물처럼 흘러왔고,
부러질 것 같으면 꺾였지만
절대 부러진 적 없음.
나는 그런 놈임.
이 글은 그런 내가 살아냈다는 증거임.
읽은 사람은 그냥 알아줬으면 함.
이런 사람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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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ㅄ같지만 읽다가 눈물났음 나도 형같은 친형 있었음 좋겠다....
근데 흙인성이면 막상 또 모른다 ㅋㅋㅋ 저런 부모를 어이없는 이유로 혐오하는 놈들 많아서 ㅋㅋㅋ
니 같은 동생 나도 있었음 좋겠음...
ㅠㅠㅠㅠㅠㅠ
힘내세요
같이 힘내보는 거임 님도 ㅎㅇㅌ
내용대로 라면 가좃들 연 끊고 살았으면 잘 살았겠구만 왜 헛짓거리 하노? ㅇㅇ?
그게 쉽냐 - dc App
쉽지 않지 천륜인데 그래서 마지막 방법으로 신고까지 가게된거임 이제는 내 인생 살아야지
ㅅㅂ 정독했다... 너보다 20살은 많을 지금 되도 않는 충고 하나 하자면 걔도 내려놔라. 마주치지도 마라. 지금 네 인생은 너 하나도 맘대로 못하는 삶이다. 가족, 동생, 친구 뭐 하나 어떻게 하지 못해. 이건 부자고 가난하고를 떠나서 인생이 원래 그렇다. 이걸 아는데 이마이 세월이 걸렸다. 딴 사람이 네맘대로 안 되는걸 인정하고 그냥 흘러가게 놔두는 순간 네 인생은 달라진다.
형 충고 감사 나도 이제는 쟤가 어캐 되건말건 내 인생 살거임 변하면 좋겠지만 안변한다 해도 이제는 내 소관이 아님
하.... 나도 나름 힘들게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나보다 더한 형이 있었네.... 힘내자 같이
그래 같이 힘내 보는거임.... 그지 같아도
@ㅇㅇ(223.39) 형 힘내자... 다 늙어서 폐지 줍기 싫다...ㅜㅜ 그리고 알아줘서 고맙다 형......
@흙갤러8(222.238) 국비로 배우긴 하지 근데 자부담금은 사장님이 부담해 주심 사장님이 나 신뢰하고 있고 내가 그렇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신뢰 잃지 않을 예정임 누나도 홧팅 하자.... 부딪히다 보면 기회는 오는거임...
@ㅇㅇ(222.238) ㅇㅅㅇ 내가 도움이 되겠냐만은 이야기 들어줄순있음
너 몇살이냐 난 90년생이다. 10년전 형과 사이가 너무 안좋아서 주먹다짐하다가 응급실보내고 집나왔었다. 좆같은 인생 그냥 돈벌다 죽자 생각하고 노가다 형틀목수일 시작했다. 노가다판에서 사람취급 못받고 개병신따라지 취급받으면서 악착같이 살다보니 살아지더라 물론 형하고는 7년 넘게 연락일절 하지않았다
근데 그렇게 멀어지니까 형에대한 분노가 많이 희석되더라 옛날에는 형이 나한테 너무 못되게 굴어서 화장실에서 오열한적도있었다. 정말 죽이고싶었던적도 많았는데 내가 됨됨이가 약해서 그러지 못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간암말기라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는 한달에 몇번꼴로 발작을 일으키시면서 응급실에 실려가셨다 대학병원 응급실 가본적있냐? 한번 가면 8시간 대기는 기본이다. 그렇게 실려가면 응급실에서는 암으로인한 통증이라며 마약성 진통제나 놔주고 끝난다. 8시간 10시간 기다려서 마약성 진통제하나 놔주고 끝인것이다. 보호자는 그 시간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대기만한다
나는 그때까지도 노가다판 따라지였고 기술자도 아닌 그냥 노인네들 따라다니는 덤이였다. 아버지가 아프신데 일을 그만둘수도 아버지가 아플때 장비던지고 달려나가지도 못했다. 주말에나 아버지가 발작할때 차를 몰고 대학병원으로갔다. 하지만 형은 항상 아버지 곁을 지켰다
2년이 조금안되게 투병하시던 아버지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돌아가셨다. 그 2년동안 내가 할수있었던것은 어떻게든 해볼려고 노력하였으나 형의 헌신에는 미치지못하였다. 배운것없는 비천한 노가다꾼이라도 단번에 수긍할정도로 형은 우리 집안의 위기속에서 장남의 의무를 다하였다.
아버지의 사망. 장례식. 매장 절차까지 형과 나는 둘 사이에 평생 해본적없는 생소한 상호작용을 했다. 우리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 곁을 지켰으며 그날 저녁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신앞에서 울었고 연대하여 장례식을 치루고 아버지의 유골함이 들어갈 무덤을 팠다. 그리고 그 일련의 몬 과정에서 비로소 동생은 형에게 순종하게되었고 형은 손윗사람으로서 동생을 품게되엏다
너의 pdf 파일을 모두 읽어보았다. 너는 내가볼때 이미 훌륭한 형이며 강인한 사람이고 진짜 남자다. 그러나 내 경험에서 보자면 동생은 아직 준비가 덜 된것같다. 그 일들이 모두 어떻게든 수습된다면 동생과 거리를 두는게 좋다고 보인다. 나중에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후 동생이 지금보다 더 여물었을때 너를 인정할때가 올것이라 믿는다. 나는 7년이나 걸렸다.
댓글 진짜 고맙다. 나도 90년생이고 지금 이 글 읽으면서 숨 멎는 줄 알았다 겪은 일들, 하나하나 너무 생생해서 중간에 몇 번이고 눈 멈췄다 그 무게랑 진심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음
동생이랑 갈등도 현실도 감정도 전부 얽혀서 도저히 답이 안 보인다 싶었는데너 말 들으니까 조금은 덜 외롭다는 생각 들더라 너가 해준 말 중에 이미 훌륭한 형이다 강인한 사람이다 이거 솔직히 지금 내 삶에서 누가 해준 적 없거든 그 말 한마디가 오늘 나 진짜 버티게 만들었다
너한테 진심으로 고맙고 너 형제 얘기 들으면서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길 바란다는 생각 들었다 진짜 존경한다 고맙다
그래 살아냈으면 됐다 건강해라 항상 - dc App
이 형은..... 진짜다....
파이팅
내가 선 넘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동생만 없더라면 인생이 조금 편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다 들어왔는데 당신의 인생이야기 잘 읽었음 난 스물여섯이고 내 자신도 아버지를 가정폭력, 음주운전으로 신고해 본 경험이 있어서 묵묵히 공감히 되는 글임.. 늦은 저녁밥 먹느라 김치찜 시켜놓고 거진 한시간을 읽었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