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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호와 레훙은 무너진 에어 셔터 건너편을 보고 떨어질 뻔한 심장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운명의 장난인 건지 그들이 통로에 들어오자마자 천장이 무너져 추적자의 손아귀를 뿌리칠 수 있었고, 학살의 현장에서 겨우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휴... 젠장..."
어떻게든 떨리는 다리와 깊게 울리는 복부를 부여잡고 일어선다.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는 광장과 확연히 대비되는 복도였다.
"이제... 어쩌지...?"
"흡... 하... 글쎄... 후... 일단은 나갈 방법을 찾아야지."
창호가 심호흡하여 폐부가 찔리는 듯한 고통을 진정시킨다. 몇 번 숨을 내쉬자 간신히 일어서 이동할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일단은 벽면을 짚고 이동한다, 차가운 금속의 복도에 마치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발걸음이 울린다.
전등의 불빛마저 어두운 무채색의 공간은 인기척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오직 두 사람이 고통에 끙끙대는 소리만이 그 안을 채우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되지...?"
"나도 모르겠는데..."
곧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뉜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 복도는 갈림길도 단출했는데, 표지판에 어디로 향하는지 명확히 쓰여 있지 않고 오로지 알파벳과 숫자로 이루어진 구역명만이 적혀있었다.
"여긴 층을 ABC로 구분하나...?"
다만 알만한 부분이라면 그들이 위치한 곳이 A 구역이며, 밑으로 내려가는 내리막이 B 구역으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바깥쪽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음... 확실히 바깥쪽은 탈출 포드가 있을 확률도 있으니..."
하지만 그들은 어디가 바깥쪽으로 향하는 길인지 전혀 모른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그저 감으로 한쪽 길을 택해서 가보기로 하였다.
다시 시작된 삐걱거리는 종종걸음. 그 사이 창호는 자신의 먹먹한 청각에 집중해 보았다.
고요 속, 간혹 저 먼 곳에서 폭발음과 비명으로 추정되는 소리가 전해진다.
그 소리를 듣게 될 때마다 오금이 저리고, 아직 위협이라는 공간 속에 남겨져 있다는 게 느껴졌다.
"...!"
어느 정도 걸었을까? 그들은 눈앞 상황을 보고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뭐야... 닫혀있잖아..."
그들이 향한 곳도 에어 셔터가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창호가 에어 셔터에 가까이 다가가 중앙에 난 창을 확인해 보았다.
"... 여긴 못 가겠는데?"
그 반대편에는 외벽마저 뚫려 진공이 되고, 충격으로 중력 발생기가 고장 나 온갖 잔해가 둥둥 떠 있는 광경이었다.
좀 섬뜩한 건 그런 통로 한가운데에 사람이 죽어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안타깝게도 산소마스크를 잡기 직전에 말이다.
"돌아가야겠다..."
"하..."
그들은 결국 지나쳤던 갈림길로 돌아와 다른 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젠장... 여기도... 막혔어..."
쿵
그 이후로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막다른 길을 보자 지친 레훙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계속해서 나오는 다음 갈림길들에서 헤매게 된 데다, 그런 와중에 복도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기껏 찾아간 출구들은 에어 셔터로 단단히 봉쇄되어 있었다.
"이상하네... 보통 셔터들은... 수동으로 열 수 있지 않나...?"
철컥철컥
"크읍... 하... 젠장 안 열려."
창호가 셔터의 수동 개폐기를 돌린 뒤 손잡이를 잡고 올려봤지만, 셔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평소의 그라면 강제로 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폭발 여파로 인해 온몸의 근육이 파열되어 찢어지는 듯했다.
"여긴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그나마 좀 돌아온 시력으로 본 에어 셔터 반대편은 온 사방에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그의 시점에서 시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벽면에 빨간색 물감으로 역동적인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마치 붓으로 그은 듯 에어 셔터를 넘어와 그들 뒤쪽에 있는 또 다른 길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발자국으로 보아 또 다른 누군가가 다친 사람을 끌고 간 흔적인 듯하였다.
"... 이거라도 따라가 보자."
"뭐...? 이게... 어디로 가는 줄 알고..."
"어쩔 수 없잖아... 계속 헤맬 수도 없고."
바닥에 선명한 핏자국을 따라서 움직인다.
핏자국을 만든 사람은 확실히 길을 아는 사람인지 코너를 도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고, 반복해서 뱅뱅 도는 일이 없어지자 그들의 얼굴은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그리고 찾았다. 멀리서도 확실히 보이는 또 다른 통로는 그들이 지금껏 돌아다녔던 길목과는 다르게 밝고, 널찍해 보였다.
"..."
비록 그 중간 사거리에 죽어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중 여러 명은 창호와 레훙이 입고 있는 우주복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고, 반대로 나머지 2명은 '시큐리티'라고 쓰여 있는 남색의 경비복을 입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바닥에 핏자국을 칠한 사람으로, 총상을 입은 채 끌려온 상태로 누워 있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총상을 입은 경비를 끌고 온 사람인지 온몸에 타인의 피로 칠갑을 했고, 마지막 순간 싸우기로 결심한 듯 총을 쥔 채 미간에 구멍이 뚫려 허망하게 앉아 있었다.
"이 사람들..."
레훙이 자신과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우리... 중대... 인... 가...?"
"글쎄... 그럴 수도 있고..."
하지만 창호는 그들이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보통 이때쯤 머리가 돌아야 하는데, 금속이 울리는 듯한 두통에 사고가 멈춘다.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에 머리가 돌아가는 것도 이상한 거긴 하지...'
대체 왜.
대체 왜 군은 이런 일을 벌이는가.
그러나 그가 아무리 고민을 해봤자 이곳에서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가보자"
어쨌든 이곳에 더 있는 건 좋지 않아 보였다.
참사를 넘어 더 넓은 통로로 향한다.
가까워질수록 마치 출구라도 찾은 듯 걸음이 빨라진다.
하지만 너무 긴장이 풀린 탓일까? 아니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 떨거지 놈들이 저항이 심하네. 좀 곱게 죽으면 안 되나?"
"죽는데 저항 안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 앞을 목전에 두고서야 대화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렇게 잔인하게... 어?"
"응? 왜 그래?"
목소리의 주인들 역시 가로로 뻗은 통로의 왼편에서 나오더니, 좁은 통로에 서 있는 둘을 발견하였다.
바로 얼마 전에 훈련소에서 만나 기싸움했던 백발의 귀족과 리프컷 머리와 함께 에메랄드 눈동자를 가진 귀족이 말이다.
백발의 귀족은 자기 친구가 옆을 바라보자, 자신도 의문스럽게 시선을 따라갔다.
"호..."
그러고는 창호와 레훙을 보고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테러리스트 떨거지들이 여기에도 있잖아?"
뭐지? 뭔가 데자뷔가 느껴지는데...?
"... 저희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저번에 뵙지 않으셨습니까?"
애써 침을 삼키고 침착하게 대응한다.
이곳에서 싹수없던 귀족을 만난 건 예상치 못했지만, 오히려 괜찮은 상황일 수도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너를?"
"예, 훈련소에서..."
"내가 왜 너 같은 걸 기억하는데?"
"..."
아, 이건 조졌다.
창호는 그 싱긋 웃는 얼굴을 보자 반대로 표정이 굳었다.
상대가 정말 창호를 기억 못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직감이 섬찟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 옆에 있던 리프컷 머리의 귀족이 나섰다.
"야, 정말 기억 안 나? 저번에 네가 재밌는 거 보여주겠다면서 만난 병사잖아."
"응? 그래? 근데 리오, 너 정말 모르는 거야? 너희 아버님께 들은 것도 없어?"
"아버지께 뭘 듣는데?"
"하, 이건 좀 답답하네. 언질이라도 들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한 백발의 귀족은 품속에서 무엇인가 꺼냈다.
검은색에 밝은 초록색으로 빛나는 라인, 마지막으로 조금 총신이 길고 직사각형으로 각져 특이하게 생긴 권총이었다.
"이놈들은 테러리스트라고. 봐봐, 아까 우리가 죽인 놈들하고 같은 복장이잖아? 안 그래?"
그리고 그 총구를 창호에게 겨눈다.
"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창호의 동공이 수축한다.
동시에 전신의 감각이 곤두선다.
이건 위험하다.
그런데...
'모... 몸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왜...?
위기에 순간 자신을 지키려던 육감이 말한다,
이건 못 피한다고.
숙여도 죽는다,
옆으로 피해도 죽는다,
돌진해서 잡아채려고 해도 죽는다.
어떤 식으로 피하든,
어떤 식으로 대응하든,
통하지 않는다, 이길 수 없다.
동시에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가장 오래된 기억, 가장 기뻤던 기억, 가장 슬펐던 기억, 그리고 최근의 일들까지
명재경각의 순간, 뇌가 타개법을 찾으려 저장된 모든 기억을 풀어낸 것이다.
그렇게 생애의 마지막, 주마등에서 그가 떠올린 건...
'저 총... 어디서 봤는데...?'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피해-!"
퓩!
총의 특유의 찌르는 듯한 소리가 아닌 뭉툭하게 낮아진 소리가 울린다.
동시에 창호가 바닥을 구른다. 총에 맞은 것인가?
"끄으윽...!"
아니다, 고통이 신음하는 이 목소리는 창호의 것이 아니다.
"...!! 훙...!!"
바닥에 쓰러진 창호가 벌떡 일어나 옆을 돌아본다.
레훙이 바닥 웅크려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귀족이 강제로 죽음을 내민 그 순간, 레훙이 창호를 밀치고 대신 총에 맞은 것이다.
창호는 곧장 그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복부를 관통해 버린 총상에서 피가 멎을 생각을 안 했고,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얼굴에서 점차 혈색이 사라지고 있었다.
"뭐야, 지금 자기가 맞겠다고 나선 거야? 안 그래도 사이좋게 보내주려고 했는데."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리오라고 불린 리프컷의 귀족도 경악했는지 제 친구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 하긴? 테러리스트 소탕하고 있지. 너도 아까 손수 죽였잖아?"
"이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아는 사람들이잖아!"
"하아 진짜... 네가 그렇게 우유부단하니까 너희 아버님이 믿지 못하고 안 알려주신 거야."
"뭐라고?!"
그리곤 저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창호는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죽어가는 레훙만 있을 뿐이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저들에게서 벗어나 출혈을 막고, 한시 빨리 치료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던 창호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에어 셔터 비상 차단 레버였다.
"큽!"
비상시에만 작동하시오.
그렇게 쓰여 있는 레버를 튀어 나간 창호의 손이 잡아당긴다.
쿵-!
"응?"
그러자 두 통로 사이가 막히더니 귀족들과 그들을 갈라놓았다.
"훙! 일어날 수 있겠어?! 가자!"
"크으으..."
창호가 절뚝거리며 레훙을 일으켜 부축한다. 그리고 다시 뒤돌아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설마 이딴 걸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 사이 백발의 귀족은 에어 셔터의 창을 통해서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그들을 향해서 총을 조준했을 때,
"그만해!!"
옆에 있던 리오가 총신을 잡아채 그를 막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전부 다 설명해!!"
"쯧... 알겠어."
그는 친구를 향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리오는 그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지만, 간혹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 떨거지들! 어디 한번 잘 도망가 봐라! 다음번에 만나면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그는, 코너로 사라지는 두 명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박장대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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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반 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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