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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제국은 끝났다.


진실이 된 거짓에 의해 제국은 멸망하리라.


민중 속에서 가장 작은 자들의 왕이 일어나 너희와 너희 후손을 죽일 것이다.


- 검열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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Α΄. 가면의 배달부(1)


함무라비 법전에도 기록된 용병이라는 직업은 우리 인류 역사와 함께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이다. 화이트 컴퍼니의 존 호크우드, 밀라노의 명군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심지어 성경의 다윗까지 용병으로 지낸 적이 있으니, 역사에서 용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종종 이름을 바꾸거나 별명을 사용했는데, 이는 신분 보호 또는 세탁, 타국 의뢰인과 문화적 융화 및 심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속임수 등 다양한 방면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대 용병단 중 가장 비밀스러운 집단 '가면의 배달부'가 그렇게 익명성에 집착하며 활동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점이 아니다. 정보화 시대를 맞이해 이름 변경 정도로는 신분 세탁이 불가능 졌으며, 그들의 평판이 몇백 광년 밖으로도 순식간에 전해지니 말이다.


특히 현대 용병의 대표 격인 민간군사기업(PMC)과 달리 '가면의 배달부'는 그 극단적인 익명성을 활용해 기존의 군사적 서비스를 벗어나 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근현대 용병사 - 얼굴마저 가린 자들 중


* * *


셀 수 없이 많은 철골로 받쳐지는 지하, 그 속에서 한 대의 승강기가 끝도 모르고 하강한다. 만일 일반인이 백화점 지하가 이렇게 깊은 줄 알았으면, 혹여 무너질까 두려워 다시는 매장에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그 밑으로 속절없이 떨어지는 두 사내가 있다.


한 명은 우리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인물로, 그는 팔짱을 낀 채 철제 구조물이 빠르게 사라지는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 이 사람은 잊고 있을 수도 있기에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겠다.


검은 후드, 검은가면, 검은 장갑... 바지를 제외하면 온통 블랙으로 칠한 이 남자는 바로 창호를 구한 가면의 사내로, 자신을 그라즈라고 소개했다.


'분위기가 바뀌었군...'


그라즈는 가면 속에서 눈을 굴려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창호를 몰래 바라보았다.


이곳에 오기 전 방송된 뉴스, 그것을 보자 이 정창호라는 사람은 큰 충격을 받은 듯 분위기가 굉장히 무거워졌다.


뉴스에는 그가 습격한 황녀가 출연하고 있었으니, 이런 변화는 당연히 그것과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라즈는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무례를 저지르거나, 자신이 스스로 뭔가를 추측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완전히 융화된 그는, 어떤 잡다한 사연을 가졌든지 간에 단지 필요한 대답만 입에서 나오면 그만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라즈는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여기까지 별말 없이 오던데, 혹시 궁금한 점이라도 있어?"


그렇게 말한 그라즈는 고개를 돌려 창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무덤덤하게 창밖을 보고 있었다.


"궁금한 점이라..."


잠시 침묵하던 창호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입만을 열었다.


"그렇담 이제 말씀해 주시죠. 저에게 바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입에서 흘러나온 건 그라즈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주였다.


"흠...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 대신 물건 하나를 가져와 줘야겠다."


"물건?"


"제국 쪽에 흘러 들어간 어느 기업의 물건을 회수하는 임무야. 그 기업 대표가 꽤나 짭짤하게 보상을 약속한지라 몇 달에 걸쳐 추적하고 작업까지 다 쳐놨는데... 웬 테러가 일어나서 국경이 봉쇄돼 버려서 말이지."


"..."


테러라는 말에 창호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그라즈를 바라보았다. 아직까진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눈은 불편한 듯하면서 대체 뭘 말하고 싶냐고 묻는 듯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뚫어보려다 제국 시민인 데다 상급 면허를 가진 널 발견한 거야. 내가 호기심에 신발까지 털어보길 참 잘한 것 같아."


"테러는 벌써 2달 전 아닌가요. 그런데도 아직도 봉쇄돼있다고요?"


"뭐,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시가 삼엄해졌다고 해야겠지. 정식 무역도 뭘 가지고 나오기 힘든데, 하물며 밀수라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게다가 내가 전에 저지른 일 때문에 걸릴만한 게 한둘이 아녀서 켕기는 게 많아.


반면, 넌 시민 신분으로 상대적으로 입출국이 쉬우니까 걸릴 확률이 낮지. 그러니 네가 내 일을 마쳐줘야겠어. 그럼 내게 진 빚들은 모두 청산된 걸로 해주지."


"... 잔인하시군요. 제가 제국의 황녀를 건드린 테러리스트라는 건 잊으신 겁니까?"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네가 전에 무엇이었는지 난 상관 안 한다고. 내게 보이는 건 오직 너의 신분과 입국 가능성이야. 그리고 걱정하지 마, 높으신 분들이 워낙 널 잘 감춰둬서인지 제국 쪽에서도 널 용의선상에 올려놓진 않았더라고."


여기까지 말하자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닿았고, 문이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하지만 우선, 널 우리 쪽 인원으로 받아들여야겠지? 상세한 건 등록한 이후 알려줄 테니 일단 따라와."


그라즈는 이 말을 끝으로 먼저 문을 나섰다. 창호도 그 뒤를 따라나서자 광활한 지하 광장이 그들을 반겼다.


광장은 사람들이 꽤 붐볐는데, 특이한 점이 있다면 가면을 쓴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마치 노점처럼 좌판을 깐 무기 상점에서 새로 살 무기들을 살펴보거나, 음식점에서 술과 음식을 먹으며 저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거나, 게시판으로 보이는 디스플레이에서 무엇인가 확인하거나, 비즈니스적으로 만난 듯 서로 악수를 하고 있었다.


"가면의 배달부 아우레아 지점에 온 것을 환영한다. 앞으로 네가 이 근방을 지나면서 지점을 방문해야 한다면 이곳이 가장 큰 지점이니 참고하는 게 좋을 거야."


"가면의 배달부라... 가면을 쓰고 배달 일을 하는 겁니까?"


"맞아, 우리는 의뢰인이 원하는 배달을 하지. 평범하게 개인적인 물건을 배달하기도 하지만, 도난당한 물품을 찾아주는 것부터 불법적인 약물, 암시장에 풀린 예술품, 기업 기밀 등등 고객이 원하는 건 모두 배달하지. 심지어..."


그라즈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창호를 바라보았다.


"사람 목숨도 말이야."


"..."


"어때? 들어올 생각 있어?"


창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그를 다들 별 신경을 안 쓰고 지나치고 있었지만, 몇몇 시선이 자신에게 꽂혀있는 듯했다.


"... 본거지까지 끌고 와서 묻는 건 저보고 죽으라는 건가요?"


"으음~ 역시 눈치챘나?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할게요. 여기까지 온 이상 무를 순 없겠죠."


창호가 너무 안일하게 따라왔다고 생각하면서 수락하자, 갑자기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가면을 쓴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자 창호는 소름이 돋으며 모골이 송연해지는 듯했다.


그때 바로 옆을 지나가던 늑대 가면의 남성이 갑자기 창호와 어깨동무를 하며 전방을 향해서 소리쳤다.


"신병 받아라~!"


그리고 가면을 쓴 사람들이 몰려와 수많은 질문 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밖에서 뭐 했냐?"


"네...?"


"여친은 있어?"


"어... 아뇨..."


"짜식, 어려 보이는데 여긴 왜 왔냐?"


"나름대로 사정이... 잠깐! 어딜 손댑니까!"


"어머나 미안~ 누나가 손버릇이 좀 나빠서~"


깃털 가면을 쓴 여성이 창호의 주머니에 손을 대려고 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자신의 주머니를 사수하기 시작했다.


"사죄의 의미로 누나 거도 만지게 해줄까?"


"필요 없어요."


"이렇게 유약해 보여서 배달 일을 할 수 있겠어?"


"그건 해봐야 알죠."


"호기롭네, 사람 죽여보기는 했냐?"


"... 한 명 정도..."


"오~ 경력직!"


이번엔 철 가면을 쓴 사내가 반대편에서 어깨를 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자 창호는 졸지에 성인 남성 둘에게 결박된 상태가 됐다.


"아무튼 들어오기로 했으면 신고식부터 받아야지!"


그사이 앞으로 무엇인가 대령됐다.


500 cc 맥주잔에 담긴 밤 갈색의 액체였는데, 고양이 가면을 쓴 여성이 가져와 그에게 내밀었다.


"자~! 쭉 들이키세요!"


"어... 마셔야 하나요?"


"당연하지! 우리 일원이 되겠다는데 그냥 어서 옵쇼~ 이럴 줄 알았냐?! 술 한 잔은 들이켜야지!"


늑대 가면의 말에 창호는 떨떠름했다. 그는 술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


그때 창호의 시선에 누군가 잡혔다. 베이직색에 푸른 연두색 라인이 그려진 가면을 쓴 어떤 인물이 다들 '마셔라 마셔라'라며 부추기는 사이에서 유일하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남자답지 않게 왜 이래? 에잇!"


"잠...!"


그러나 그 몸짓이 무색하게 깃털 가면의 여성이 창호의 입속으로 강제로 술을 들이부었고, 창호는 인상을 찡그리며 난생처음으로 맥주잔을 원샷 때릴 수밖에 없었다.


"끄..."


"뭐야 그 김빠지는 소리는... '캬~' 이런 소리는 못 내냐?"


"자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야겠지?"


입속에 남은 쓴맛이 제거되기도 전에 창호는 또 어디론가 끌려가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은 사격장으로, 방음 처리가 된 커다란 방이 자신의 용도를 말하는 듯 벽면에 다양한 크기의 총상들이 새겨져 있었다.


"총 한번 쏴봐, 잘 쏘면 이 선배들이 좋은 거 하나 선물해 주지."


"우리 꼬마가 너무 귀여워서 누나가 쪼끄만 걸로 골라봤어! 어때?"


창호가 깃털 가면에게 넘겨받은 총은 총신이 조금 뚱뚱해 보이는 분홍색 권총이었다. 듣게 된 말과 달리 조그마하다고 말할 순 없는 그 권총을 이리저리 살핀 창호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이미 그의 주변은 어깨 결박을 풀어준 늑대와 철 가면을 비롯한 많은 가면들이 팔짱을 끼고 어서 쏴보라고 재촉하는 모양새였다.


"휴..."


창호는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소란스럽게 환영받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어쨌든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앞에 있는 사로로 들어가 건네받은 권총을 들어 조준선을 정렬했다. 권총은 쏴본 적 없지만, 훈련소에서 소총을 쏴봤으니 아주 어렵지는 않을 거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


근데 뭔가 이상하다, 약간이지만 눈의 초점이 어긋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저 오늘 컨디션이 조금 나쁘다고 생각하고 지나칠 요소였지만, 민감한 그에게는 굉장히 거슬리는 걸림돌이 되었다.


눈을 비벼본다, 하지만 오히려 초점이 더 엇나간 기분이 들었다. 살짝 어지러운 기분이 들면서 왠지 모르게 머릿속에서 좋지 않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왜 그러세요?"


"킬킬킬 왜 이렇게 느려? 총도 처음 쏴보나 봐?"


그가 쏘지도 못하고 주춤거리자, 옆에 있던 고양이 가면이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 놀리듯이 말하자 창호는 조금 약이 올랐다.


"혹, 처음이시면 도와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총 처음 쏴보는 것도 아니고..."


자신보다 몸집이 한참 작은 고양이 가면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창호는 컨디션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냥 신고식인데 잘하고말고가 어디 있겠어?' 같은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그저 감각으로만 조준한 왼손이 서서히 방아쇠를 당겼고, 곧 섬광이 튀며 실내에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그런데...


"윽...!"


사격과 동시에 총구가 머리 위로 솟구치자, 창호는 얼굴을 심각하게 구길 수밖에 없었다. 권총이라고 믿을 수 없는 총성과 함께 엄청난 반발력이 손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끄읍...!"


창호는 허리를 숙이고 권총을 떨어트렸다. 부들거리는 그의 손은 뼈까지 울리는 듯하여 팔꿈치를 지나 어깨까지 충격이 전해진 듯하였다.


"풋..."


그가 고통에 신음하는 동안 옆에서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고양이 가면이 자신의 가면 입을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크흐흡..."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하나둘 웃음을 새어 나오더니,


"으하하-!"


전원 폭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 바보야! 쏘라고 했다고 그냥 냅다 쏘냐!"


"탄종, 장약량은 확인 안 해? 총기 타입은 확인이라도 했어? 응?"


"이거 완전 생초짜였구먼!"


그렇게 저들끼리 웃는 동안 창호는 홀로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자신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중 창호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는 이는 없었다.


<"÷×@₩₩%÷××+□¤◇◇◇•¥¥¥">


그런데 문뜩, 웃음소리 속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전신에 착 달라붙는 슈트와 이상하게 생긴 헬멧을 쓴 여성이 있었다.


렌즈가 여러 개 달려 마치 거미 얼굴 같은 헬멧은 얼굴 하관을 제외하면 모두 뒤덮고 있었고, 여성은 웃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그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창호 역시 이상한 소리에 이끌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한 번의 손뼉 소리가 울리며 웃음소리가 멎었다.


"자, 이제 그만."


소리가 난 쪽으로 모두가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그라즈가 서 있었다.


"쟨 나랑 가야 할 곳이 많아. 그러니까 이쯤하고 모두 해산해."


"우우~"


"이제 시작인데 눈치가 없다 그라즈!"


"데려갈 거면 제가 준 술값이라도 내고 가세요 선배!"


모두가 어이가 없다는 듯 야유를 내뱉었지만, 그라즈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다.


"그래그래 나 눈치 없고, 술값도 내줄 테니 이만 놔줘. 자, 가자!"


그라즈가 창호를 향해 한번 손짓하고는 사격장을 나선다.


창호는 다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 사이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그라즈가 한 번 더 가자고 부르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각양각색의 가면들이 응원인지 야유인지 모를 목소리를 그를 향해 부르짖었다.


그 호응에 대답하듯 창호도 어색하게 손을 조금 흔들었지만, 역시 부끄러웠는지 거의 도망치듯 걸음을 재촉했다.


마침내 창호가 입구로 사라지고, 문이 닫히자


"..."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멈추고, 떠들썩했던 목소리가 가라앉아 딱딱한 가면처럼 모든 것이 정적으로 변했다.


그라즈와 창호가 떠날 때까지만 해도 웃음과 야유로 소란스러웠던 이들이 지금은 주변에 깔린 침묵을 조성하여 마치 아까 분위기가 거짓된 환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헤도네, 네 권총 제원이 어떻게 되지?"


침묵 속에서 늑대 가면이 깃털 가면에게 나직이 물었다.


"P 타입 3등급 정도?"


"P 타입 3등급이라... 너무 애매한 걸 줬잖아. 개조한 건지, 아닌 건지 긴가민가한데..."


"그래도 아파하는 건 연기가 아닌 것 같아. 그대로 놓쳤으면 충격이 덜했을 텐데 말이야."


"헉, 정말? 어. 떡. 해... 우리 꼬마 많이 아팠겠다..."


"미친 도S년... 네가 준 총이잖아."


철 가면은 충격받은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리는 깃털 가면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시선을 흘렸다.


"주머니에는 뭐 없었어?"


"아무것도 없었어. 뭐, 헤도네가 처음에 실패해서 빼돌린 걸 수도 있지만."


"꼬마가 생각보다 민감한 걸 어떡해~ 침대에서도 그렇게 민감했으면 좋겠다~"


"..."


이년은 분명 성범죄로 이 바닥에 떨어졌을 거야.


그녀의 방정에 결국 입이 다물어진 철 가면은 그렇게 생각했다.


"또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저요."


늑대 가면이 주변에 묻자, 고양이 가면이 손을 들었다.


"딱히 나쁜 환경에서 자라진 않은 것 같더군요. 제가 건넨 술을 강제로 먹인다고 그대로 받아 마신 걸 보면요."


"음, 확실히 대부분 억지로 먹이면 뱉어내거나, 술잔을 놓치는 척 바닥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지..."


"전 그 순진한 얼굴이 해롱해롱해지는 걸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선배가 가로채 버렸네요."


"너 그러다 언젠가 큰코다친다? 만약 아까 그 녀석이 인공 간 이식이라도 받아서 주저 없이 마신 거라면? 나중에 순진하게 당하는 척하다가 돌변하지 않겠어?"


"그것도 재밌겠네요. 그 순수한 얼굴이 사실은 가면이라니 후후..."


"너희 성적 취향 충족시키지 말고 분석을 하라고..."


이쯤 되자 늑대 가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왜 이곳에 떨궈지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이런 족속들일까?


"... 어쨌든 이번엔 전문가 생각을 들어볼 차례인듯하네. 어때 라닉, 가지고 논 시간이 너무 짧아서 딱히 의미가 없나?"


미간을 짚은 채 고개를 젓던 늑대 가면이 다음으로 바라본 건 바로 전신 슈트와 거미 눈알 헬멧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지금 팔짱을 낀 채 기둥에 기대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 평범치 않아. 아니, 너희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인물이야."


그리고 그녀는 굉장히 의외인 분석을 내놓았다.


"평범하지 않다고? 왜?"


"처음 스캔해 봤을 때는 의체는커녕 뉴럴포트도 없는 그냥저냥 한 떨거지라 생각했는데..."


라닉은 허공에서 시선을 내려 늑대 가면을 바라보았다.


"그 녀석이 날 봤을 때, 내 ICE마저 뚫리면서 모든 장비가 무력화됐어. 심지어 재부팅 후에는 흔적도 없고."


"뭐라고...?"


늑대 가면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라닉은 가면의 배달부 중에서 해킹으로는 톱을 다투는 해커이다. 매년 쏟아지는 최신 해킹 기법과 장비들을 줄줄이 읊을 수 있는 그녀에게 평범한 사람처럼 가장하면서 동시에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니...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흥미롭군, 신원을 알아내지 못한 게 안타까울 정도로."


늑대 가면은 정말 아까웠는지 제 가면 속에서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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