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택한다고 믿는 것조차


자유롭다는 착각이 빚어낸 것일 뿐이죠


모든 게 정해졌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한 줄 요약
바뀌지 않는 건 우리가 행한다는 사실이다




김필산의 장편소설, 엔트로피아다. 장편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여기에 실린 두 번째 이야기인 책이 된 남자는 2022년 한국과학문학상 가작 수상작이고, 세 번째 이야기인 두 서울 전쟁은 브릿G에 올라갔었던(지금은 내려갔다) 단편이다. 실질적으로 엔트로피아가 나오면서 새로 쓰인 건 엔트로피아와 첫 번째 이야기인 거란의 마지막 예언가다.


구조적으로 보면 로마의 장군과 필경사가 제국의 운명을 알기 위해 미래를 알고 예언한다는 선지자를 찾아가게 되는데, 선지자는 1,800년의 미래에서부터 거꾸로 살아가는 자였다. 벤자민 버튼을 생각하면 편한데, 벤자민과 다른 점이라면 벤자민은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었을 뿐, 그가 겪는 시간의 방향은 다른 사람과 같았지만, 선지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테넷에서 나온 엔트로피 역전처럼, 그의 첫 기억은 죽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노인에서부터 시작해 그는 점점 과거로 향하고 있다. 그의 세계는 우리의 입장에서 해석할 때 '역재생되는' 세계인 것이다. 또한 그는 미래에서부터 거꾸로 살아오기 때문에 이미 모든 미래가 정해졌음을 안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로마 장군에게 3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며 결정론적 역사를 그에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엔트로피아의 전체적인 이야기이자 세 작품을 엮는 하나의 줄기다.


첫 번째 이야기인 '거란의 마지막 예언가'는 선지자가 직접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단편으로, 거란의 마지막 순간을 김필산식 팩션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서요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치슈타이와 모리허셔(선지자), 그리고 모리허셔와 애틋한 사랑을 나눈 치슈타이의 여동생 훈후의 이야기로, '이방 민족에 의해서 기록된 역사를 제외하면 민족 자체가 절멸한 민족'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상당히 거시적인 주제를 다루는 만큼 치슈타이나 치슈타이의 아버지, 서요 제국의 황제가 내보이는 거시적 관점은 그들이 가진 지위를 생각할 때 상당히 어울리고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K-SF에선 절! 대! 볼 수 없는 인간군상들인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철저하게 개인의 감정과 내면에 치중하는 K-SF는 거시적인 주제를 다루고자 해도 개인의 감상적인 감성(혹은 감성적인 감상)으로 귀결되거나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는데, 김필산은 그런 점에선 확실히 '거시적인' 시점에서 글을 꽉 붙잡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모리허셔(선지자)와 훈후 사이의 애틋한 로맨스는 개인적으로 일본 로맨스 영화인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를 떠올렸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둘의 사랑이 이 영화의 플롯과 거의 비슷하게 흘러가고 사랑의 절정마저도 같은 양상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발상 자체가 둘이 동일하기에 나오는 유사점인데, 이런 걸 참고했으면 참고했다고 밝히는 작가의 말에 언급이 없는 걸로 봐선 진짜로 몰랐을 수도......


어쨌든 상당히 팩션스러운 첫 번째 작중작이 끝나면 다시 엔트로피아 이야기로 넘어와서 주제를 갈무리하고 로마 장군과 선지자 사이에 문답을 거친 뒤 두 번째 작중작으로 넘어간다.


근데 책이 된 남자는 엔트로피아 내용에 맞게 개정하거나 고친 게 아니라 그대로 고스란히 실었기 때문에 여기 관련 리뷰는 2022 한과상 리뷰를 참고하길 바란다. 나는 개정한 부분이 있나 싶어서 다시 읽었는데, 없어서 이걸 어떻게 엔트로피아의 주제와 엮는 건지 의아했었다. 왜냐면 책이 된 남자는 그 자체로 완결됐고, 독립적인 작품이라 선지자가 개입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김필산의 필력과 그의 사유는 허투루 쌓은 게 아니기 때문에 책이 된 남자에선 '시간 인식의 차이'에 더 집중해서 엔트로피아와 잘 엮어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잘 엮어냈을 뿐인데, 이에 대한 얘기는 잠깐 미루고 세 번째 작중작으로 넘어가자.


세 번째 작중작인 두 서울 전쟁은 시간열차를 통해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세계의 이야기다. 즉, 시간여행이 개인 단위에서 일어나지 않고 국가의 통제를 받는 거대한 플랫폼으로 세워졌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시간여행으로 인해 밝혀진 '확정된 미래(작품 표현으로는 결정된 역사)'가 국제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사고실험 풀가동을 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논설문 MK-2는 아니고, 시간여행으로 모든 게 결정된 미래란 게 밝혀졌다면 시간여행으로 그 미래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는 엔트로피아의 주제인 '결정된 미래 속에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착각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직결된다. 그 답은 이미 두 번째와 세 번째 작중작 사이 막간에 엔트로피아에서 말한 바 있고, 두 서울 전쟁에서도 다룬 바 있으며, 마지막 에필로그 역시 그 답을 다루고 있다.


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서울 전쟁은 언뜻 보면 풀 수 없는 부트스트랩 패러독스를 해결하긴 한다. 그것도 두 번이나 미래를 바꾼다. 첫 번째로 미래를 바꾼 사건이 두 서울 전쟁이고, 작중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첫 번째로 바꾼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바꾼 미래는 희망차지 않다. 마치 역사를 바꾸려는 시도, 결정된 미래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의 오만한 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벌을 주기라도 하듯 바뀐 미래는 바꾸기 전 미래보다 '낫다고' 믿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는 우리에게 언뜻 시간에 대해 굴종적인 태도를 요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네가 미래를 바꾸려고 하는 그 모든 시도는 무의미하거나, 더 안 좋은 결과만을 불러일으킬 것이니 얌전히 순응하라! 라고 말이다.


하지만 엔트로피아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거기에 있지 않다. 그건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바꾸거나 부정할 수 없는. 그 사실에 압도될 것인지,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것인지는 각자에게 달린 일이다. 두 서울 전쟁에선 이에 대해 '선택이라는 행위가 이뤄져야 실재가 된다'고 말하며 '지금 선택하는 자신'을 긍정한다. 제국의 멸망을 막을 수 없음에도 로마 장군은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지혜와 용기를 다해 제국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하며, 이후에 전사한다.


여기에 대해 이래저래 더 떠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철학하길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이 더 자세히 떠들어줄 것 같으니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다.


엔트로피아에서 이런 대화가 나온다.


"(전략) 선지자여, 그대는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소. 그대의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그런 점 때문에 난 가슴이 뛸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여전히 그대의 말을 전부 믿지 못하오. 그대는 이야기를 통해서는 그대만의 권능을 증명해 보이지 못했소. 선지자께서는 주사위의 눈을 미리 말하고 그것을 던지는 식으로 아주 손쉽게 권능을 증명해 보일 수 있소. 하지만 선지자께서는 길고 긴 이야기를 통해 나를 설득하고 절대적이며 변화 불가능한 우주의 법칙을 이해시키려 하였소. 그 이유가 무엇이오? 선지자께서는 어째서 나에게 감명을 주는 이야기를 통해 나를 감화시키고 설득하려 한 것이오?"


선지자가 답했다.


"장군처럼 현명한 인간에겐 길고 긴 변론만이 이 위대한 진실을 직접 마주하게 할 수 있네."


솔직히 말해서, 엔트로피아의 주제의식이나 이 안의 내용은 논설문 MK-2가 되기에 충분하다. 아마 논설문이 됐다면 그 분량은 (다른 방식으로 길어질지언정) 절대 400페이지에 육박하진 않을 것이다. 심지어 결정론적 역사는 소설에 제시된 설정이자 전제일 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납득할 만한' 주장으로 취급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주제의식은 소설로 전달된 것인가?


그 답은 선지자가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겐 이런 이야기만이 주제의식을 마주하게 하고 그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난 로마 장군처럼 성실하고 지혜로운 인간은 아니지만, 선지자가 정말로 로마 장군 같은 (어느 의미로) 선민만이 이야기의 역할을 충실히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읽는 이가 현명하지 않아도, 지혜롭지 않아도 이야기는 감명을 줄 수 있고, 감동을 주어 감화시키고 설득할 수 있다.


김필산이 이야기를 쓰는 까닭 역시 (당연히 우주선 안 나오는 하드SF를 쓰고 싶어서겠지만)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기 생각과 주장을 전달하고 싶으면 논설문을 쓰고, 칼럼을 쓰면 된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를 썼다. 엔트로피아라는 거대한 이야기 안에 세 가지 재미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엮어서 우리에게 선보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선지자는 설득하려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결론을 내리는 건 언제나 로마 장군이며, 결정을 내리는 것 역시 로마 장군이었다. 김필산에게도 독자는 설득 대상이 아니다. 자기 이야기를 들으러 온 청자일 뿐. 그러니 있는 힘을 다해 이야기를 정성껏 들려주는 것, 그것이 김필산이 생각한 '논설이 아닌 이야기를 쓴 이유' 아닐까?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결정론적 역사나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해 김필산의 해석과 나의 생각이 충돌하는 지점, 합치되는 지점 등 생각할 게 많긴 했다. K-SF의 1황은 김필산이다. 반박은 리뷰로 받겠음.


하지만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냐면 그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K-SF라는 규격 안에서 1황일 뿐이니까. K딱지 떼고 보면 이 작품은 두 가지 아쉬움이 있다.


첫째는 '엔트로피아'로서의 정체성이 다소 모호하다는 것이다. 작중작 3개가 사실상 이야기의 본체격인데, 이중에 두 작품은 사전에 발표된 작품들이고, 심지어 엔트로피아와 무관했던 걸 엔트로피아가 엮어낸 것이다. 즉, 작중작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일방적으로 작중작에게 어깨동무를 취하는 모양새다.


아예 개별적인 작품이었던 걸 원하는 주제에 맞춰 엮어내고 자기 작품을 재해석한다는 점에선 김필산의 필력과 사유 수준이 낮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도 했지만, 그게 대단한 것과 별개로 결국 하나의 작품으로 놓고 보면 두 작품이 지나치게 독립적인 게 개인적으로 마음에 걸렸다. 첫 번째 작중작은 선지자가 직접 등장하면서 엔트로피아의 주제의식을 다시금 조명하여 작중 인물들을 통해 다양하게 다루지만, 그게 끝이다. 두 번째는 솔직히 엔트로피아 안에 엮기엔 결을 억지로 맞춘 게 아닌가 싶었다.


즉, 김필산 연작집 내지는 단편집의 성격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렇게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왜냐면 작중작 3개 중 2개는 원래 독립적인 작품이었으니까......


좋게 말하면 발췌독도 가능한 장편소설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게 장편소설...?


둘째는 선지자 캐릭터의 아쉬운 소모다. 이는 첫 번째 단점이랑도 연관된 건데, 두 번째 작중작과 세 번째 작중작에 선지자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기에 '선지자는 저때 뭐함?'이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물론 이에 대한 의문을 안 다루는 건 아닌데, 결국 작중작에 선지자가 녹아있질 않으니 이야기가 엮여있다는 느낌보다는 일방적인 어깨동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맨 프롬 어스에서 그 모든 이야기를 엮는 주체가 본인이 직접 다 겪었기 때문에 그 유기적 통일성이 힘을 얻고 매력을 지니게 된 것처럼, 작중작들도 '엔트로피아'라는 규격에 맞춰 선지자의 존재가 방관자 내지는 관찰자 같은 카메오라도 출연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서 솔직히 엔트로피아의 에필로그인 선지자의 최후(혹은 탄생)를 다루는 장면은 그렇게까지 큰 감명이나 여운이 느껴지진 않았다. 선지자의 대부분 대사는 변론에 쏟고 있고, 선지자의 인간적인 매력은 첫 번째 작중작에서 다뤄진 게 끝이라 선지자가 나오지 않는 두 번째, 세 번째 작중작까지 거쳐올 때쯤이면 그 매력은 이미 잊히고 씻긴 지 오래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첫 번째 단점으로 회귀해 두 번째 세 번째 작중작이 '엔트로피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엔트로피아'의 이해를 돕는 두 이야기일 뿐.


그래서 장편소설이라 부르기엔 이게 좀...... 애매한 것이다.


사실 김필산이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결정론적 역사관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카를로 로베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난 다행히 책 나왔을 때 사서 읽었던지라 의도치 않게 이해를 쏙쏙 했지만...... 주제의식에 대한 이해를 위해선 사전지식이 선행돼야 하는데, 선행되지 않은 채 엔트로피아만으로 이해하려면 다소 피상적인 접근에서 끝날 것 같단 게 우려스럽긴 하다.


뭐, 재미 있으니까 별 문제는 없겠다만ㅎㅎ;;


하여튼 '연작소설집'과 '장편소설' 사이의 경계에 있어서 생기는 아쉬움과 문제점을 제외하면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김필산만큼 공부해서 소설 쓰는 SF작가가 국내에 얼마나 더 있나 싶기도 하고.


대체로 팩션 스타일에, 거시적인 관점과 거시적인 관점을 탑재한 인물들이 자주 나오고, 사건 전개 위주에 변론 역시 논증을 착실히 따라간단 점에서 '남성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K-SF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만 이해해도 될 듯.


그러니 조금이라도 K-SF에 희망을 품는다면 김필산의 엔트로피아를 사서 읽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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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기 전에 쓴 리뷰인데 여기에도 올리는 게 좋을 듯해서 여기에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