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손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근원에 관한 질문이다. 자신의 밑바닥, 깊고 깊은 심층 의식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묻는다. 때때로 어떤 손님들은 자기의 근원을 알려달란 식으로 주문을 넣는다.


심층 의식의 가장 밑바닥엔 무엇이 있는가? 그 질문에 나는 고장 난 라디오 비유를 든다. 영원히 반복되는 어떠한 장면들이 파편처럼 잘게 부스러져 있다. 그건 가장 깊고 내밀한 상처일 수 있고, 혹은 어떤 감동이나 기쁨일 수 있다. 대부분은 유년기 시절의 어떤 경험들이지만, 꼭 유년기 경험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그 당시 당사자의 근원을 이룰 만큼 충격적인 경험인가, 아닌가. 그뿐이다. 설령 그게 길 가다가 넘어진 걸 가지고 친구가 놀려먹었다는 사소한 경험일지라도 말이다.


그러한 경험에서 비롯된 지각과 인식의 순간이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 새겨져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복 역시 열화되기 마련이다. 제때 끄집어내지 못한 장면은 그 순간을 구성하는 모든 이미지가 사라지고 지각과 인식만 남아 반복된다.


이유 없이 불안하고, 이유 없이 화나고, 이유 없이 즐거워하는 모든 것들이 마모된 반복의 흔적이다. 이미지가 벗겨진 곳에선 나도 어찌할 방도가 없기에, 나는 내가 느낀 것들을 소상히 전달할 뿐이었다. 


ABCD 프로덕트 건물 내부는 현실의 것과 유사했다. 로비에 붙은 붉은 전자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초 단위가 깜빡이지만,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이곳의 시간이 멈췄다는 의미보다는 반복되고 있다는 이미지에 가까울 것이다.


전자시계에 표기된 연도는 6년 전이었다. 기껏해야 몇 개월 전인 줄 알았는데, 아예 ABCD 프로젝트가 나온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 건가? 안빈의 표층 의식이 없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목적이었던 안빈의 심층 의식은 볼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혜주 씨…….”


나는 잠시 건물 바깥 주차장을 쳐다봤다. 결국 원하던 목적인 혜주 씨의 심층 의식을 들여다보게 되는 건가? 우연이라기엔 유도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만들어질 때부터 자의식이 새겨진 인공 뇌 안빈, 드림 워킹과 상반된 드림 인바이팅, 날 주시하고 있었고, ABCD 프로젝트에 깊게 연루된 혜주 씨. 모든 게 우연인 걸까?


우연이 아닌 게 하나 더 있다. 6년 전에도 존재하는 이 건물이다. 상당한 규모의 건물이 6년 전, 막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스타트업이 가지고 있었다? 그것보단 차라리 정부로부터 연구 시설을 지원받았고, 그 부지와 건물이 이곳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타당했다.


그렇다면 ABCD 프로덕트라는 건 처음부터 위장용 회사일 수 있다는 건가? ABCD 프로덕트를 조사해도 나오지 않았던 이유가 유령 회사라서?


“…….”


건물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남녀가 떠드는 소리였고, 둘 중 여자 쪽은 내가 아는 목소리였다. 이곳에서 내가 아는 여자 목소리는 한 사람밖에 없다.

목소리를 좇아 명패도 안 달린 방문을 열자, 회의실로 보이는 곳에 마네킹 두 명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크기와 가슴께의 각진 부분으로 겨우 혜주 씨와 정체불명의 남자를 분간할 수 있었다.


“선배님, 진짜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진짜로요. 마치 술 먹고 본심이 나오는 것처럼요.”


“업무 중 음주는 좀.”


“아 됐고, 국정원 지하에 외계인 있다는 거, 진짜죠? 아니, 국정원이 아니라 삼성인가? 아니면 어떻게 시냅스 재조정 기술을 떡하니 내놓는 건데요?”


“외계인이 아니라 미래인이라고 몇 번을 말해.”


“미래통신의 미래가 진짜로 그 미래예요?”


“그럼 왜 과기부가 멀쩡한 이름 놔두고 미래과학으로 이름을 바꿨겠냐.”


“좋아요. 기술의 출처는 잘나신 미래가 던져준 거라고 하죠. 그런데 제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이거예요. 선배가 제시한 시냅스 설계에 따르면 뇌를 무에서 창조하든, 기존 뇌의 신경 가소성을 극한으로 끌어다 써서 바꿔놓든, 특정 뇌로 재구성하는 거 아녜요?”


“잘 이해했네.”


“굳이 첫 번째 뇌를 이걸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한텐 없어.”


“기술을 준 쪽의 요청이라는 거네요.”


“그쪽이 말하기로는 본인의 뇌 설계라고 하더라고. 자기가 드림 워킹 능력자인데, 본인의 뇌 설계를 그대로 구현하면 정반대의 꿈 능력자가 나온대.”


그 순간, 두 마네킹의 자세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장면의 끝에 다다른 것이었다.


“선배, 저 할 말 있어요.”


“있으니까 굳이 여기로 부른 거겠지.”


그리고 장면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더 들을 게 없다고 여겨 방 밖으로 나왔다. 진상을 알게 되면 머릿속이 조금은 맑아질 줄 알았는데, 훨씬 더 복잡해졌다. 아니, 아예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안빈의 근원이 미래의 나였다. 이로써 안빈의 자의식이 어째서 내 모습이었는지, 안빈의 꿈 능력이 왜 나와 상반된 것인지, 어째서 혜주 씨가 나를 알고 있었고, 나를 초대한 건지 전부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대체 왜?


미래의 나는 무슨 목적으로 과거의 미래과학정보통신부에게 시냅스 재조정 기술과 내 뇌의 설계를 넘겼단 말인가? 그런 기술은 어떻게 손에 넣은 거고, 어째서 내가 내 뇌의 설계를 알고 있는 거지? 과거로 정보를 어떻게 전달한 거야? 드림 워킹이 그 정도의 힘이 있었나?


어째서 미래의 나는 내 뇌를 재구성하면 반대의 능력자가 나온다는 걸 알고 있는 거지? 내가 안빈을 겪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건 모순 아닌가?


주위 텍스처가 일그러졌다. 내가 겪는 혼란과 그를 잠재우기 위해 팽배하게 각성한 표층 의식이 이곳의 규격과 맞지 않아 잡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잡음이 너무 심해지면 쫓겨날 수 있다.


아직 이곳엔 숨겨진 것이 많다. 좀 전의 대화가 전부였다면 안빈의 심층 의식처럼 이 건물에 들어왔을 때 바로 그 방으로 이어졌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는 건 다른 반복되는 장면들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로비로 돌아오자, 시계가 2년 전으로 바뀌었다. 역시 말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김찬영과 혜주 씨 목소리였다. 목소리를 쫓으니 위치상 해석실이 있는 곳이었다. 문을 열자 마네킹 두 명과 통유리, 그리고 관만 덩그러니 있는 불친절한 공간이 나왔다.


“주무관님, 드디어 설치가 끝났습니다.”


“설비 제작에만 4년인가요. 참 길었네요.”


“아, 물론 제공해주신 기술에 대한 이론적 검토는 모두 끝났습니다. 이론적으론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실증도 금방 될 거예요. 미래가 그렇게 알려줬으니까.”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광유전학에 대한 접근 방식은…….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더군요. 여기에 동원된 기술 중 하나만 세상에 풀어놔도 대한민국의 기술 수준 평가가 달라질 겁니다.”


“그런 걸로 지금 하는 게 뇌 하나 만들기라니.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만드는 게 초능력을 지닌 뇌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꿈을 지배할 수 있는 뇌가 만들어지고, 우리가 그걸 다룰 수 있다면……. SF 영화가 먼 일은 아닐 테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이 프로젝트 이름인 Artificial Brain's Crafted Dream은 정말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무성의함으론 정말 최고네요.”


“이런 게 젊은 감각이에요.”


“별로 배우고 싶은 감각은 아닙니다.”


“얼른 이 실증된 뇌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이 프로젝트의 끝은 어딥니까?”


“일단 R&D 사업이니까요. 양산화까진 가야 하지 않을까요?”


“어디다 쓸 줄 알고 양산까지 합니까? 그리고 현존 기술로는 뇌를 다른 뇌로 바꿀 수만 있습니다. 뇌 자체를 만들 순 없어요.”


“그러니까 그 방법까지 연구해야죠. 우리가 손에 넣을 건 무려 초능력자 뇌라고요?”


둘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했다. 나는 방을 나왔다. 천천히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 진정하려고 애썼다.


안빈은 처음부터 깨어나면 안 되는 뇌였다. 깨어나지 않아야만 꿈 능력을 지속해서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안빈이 ABCD 프로덕트의 사람들 마음을 걸어 잠근 게 아니다. ABCD 프로덕트가 안빈을 이용해 자기 마음을 걸어 잠근 것이다.


안빈의 자의식이 이런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 리 없다. 안빈은 꿈 능력자로선 경력이 짧은 데다가, 도덕이나 윤리에 대해 배운 바가 전무하다. 당연하게도 성찰 능력은 없다.


지금 안빈의 자의식이 행하는 모든 건 심층 의식, 혹은 설계 차원에서 각인된 것이다. 관 속의 엉성하게 생긴 사람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심층 의식에서부터 각인된 기계적인 수행 의지와 탄생 이후 조금씩 형성된 메타인지가 각각의 자기 인식적 이미지로 나타난 것이었다!


더군다나 혜주 씨는 분명 내 능력의 한계를 테스트하고 싶어 했다. 그건 단순히 인공 뇌를 깨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내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 곧 안빈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그 말은 곧 안빈을 실제로 운용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안빈은 깨우는 일? 깨워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언제든지 다시 재워버리면 되니까. 그런 건 형편 좋은 구실에 불과했다. 나를 꾀어내고, 나의 한계를 측정하고, 실전 데이터를 얻는 것 말이다.


나는 ABCD 프로덕트를 뛰쳐나갔다. 더 알아낼 것도 없었다. 아니, 알아낼 시간조차 아까워졌다. 지금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대책이다. 주차장으로 나온 나는 잠시 숨을 돌렸다.


깊은 심층 의식에선 현실의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기에 고민할 시간은 충분했다. 내게 주어진 고민은 3가지지만, 당장엔 두 가지만 먼저 고민하기로 했다.


첫째, 꿈에서 깨어난 후, 어떻게 대처해야 나의 안전을 보장받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둘째, 사실상 유일한 기회인 지금, 어떻게 해야 꿈 능력자의 악용을 막을 수 있겠는가?


이 두 가지 고민이 해결된다면, 마지막 고민도 언젠가 답을 찾아야 한다.


셋째, 나는 대체 왜 먼 훗날 미래에서 과거로 나를 곤란하게 할 기술과 설계를 넘겨주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