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동안 나와 혜주 씨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나는 2시간도 안 돼서 일어났고, 혜주 씨를 깨워 인공 뇌의 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거짓말했다. 겸사겸사 타인의 꿈을 깨우거나 조작하는 일 역시 해내지 못했다고도 덧붙였다.
혜주 씨는 내 말을 의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ABCD 프로덕트의 어떤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해석실에서 내가 드림 워킹하는 동안 상당히 특이한 데이터가 나왔다는 소리를 얼핏 들었지만, 그걸 나와 연관시키지 못했다. 내 작업이 효과적으로 먹힌 것이다.
안빈이 근방의 모든 심층 의식을 모아준 덕분에, 그들이 나에 대해 품은 지각과 인식을 찾기 편했다. 거기에 존재하는 모든 불안과 의심의 이미지들을 쫓아냈으니, 나를 의심하려면 꽤 오래 걸릴 것이다.
“고생하셨어요. 살펴 들어가세요.”
김해 공항에서 나를 내려준 혜주 씨는 아쉽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나 역시도 겉으로는 아쉬운 척 어깨를 으쓱했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네요.”
“뭐, 어쩔 수 없죠. 모든 일이 다 잘 풀리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거 알죠? 그래도 종종 연락하고 지내요. 저도 손님으로 받아주시고요.”
혜주 씨가 눈을 찡긋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안주머니에 챙겨둔 비밀 명함을 건넸다. 혜주 씨는 명함을 받아들고 뒤편에 적힌 요금액을 보자 입을 틀어막았다.
“공무원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으면 연락하세요.”
“지인 에누리 없나요?”
“손님, 그러면 저흰 뭐 먹고 사나요.”
내 농담에 혜주 씨와 나, 모두 빵 터졌다. 혜주 씨는 늦었는데 어서 들어가라며 차를 몰고 떠났다. 내 능력이 형편없다고 믿는 한, 안빈의 사용처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고작해야 타인의 불안과 걱정을 날리는 수준이라면, 전 국민 꿈 상담 서비스라도 만들려나?
저평가된 안빈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잘 모르겠다. 혜주 씨와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이것도 드림 워커로서 맡아야 할 책임인 거겠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어둑어둑한 부산 밤거리를 걷고 있자니, 새삼스럽지만 저녁을 안 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집 들어가는 길에 저녁 거리를 사 가야겠다.
***
혜주 씨는 눈을 떴다. 어두운 공간에서 혜주 씨를 비추는 빛 하나가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빛에 혜주 씨는 눈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이 의자에 묶였음을 깨달았다.
“당황하지 않네요.”
“한민철 씨?”
내가 어둠에서 걸어 나오자, 혜주 씨는 당황한 듯 나를 쳐다보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꿈이죠? 꿈에서 이런 것도 가능해요?”
“당신들이 만든 인공 뇌의 힘을 빌려다 썼죠. 저에 대한 신뢰를 심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더라고요. 협조는 쉽게 구했습니다.”
내 말을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모른다.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우리가 나눠야 할 대화는 시시콜콜한 원리나 현상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하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내 말의 속뜻을 대부분 알아챈 모양이었다. 하긴, 그 정도 눈치와 머리는 있어야 이런 일을 벌이겠지.
“시간은 많습니다. 천천히 대화해볼까요.”
“드림 워킹은 되게 오래 걸린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혜주 씨가 제게 거짓말했듯, 저 역시 제 안전을 위해 거짓말했죠. 거짓말 싸움에선 제가 이겼네요, 혜주 씨.”
혜주 씨는 허탈한 듯 탄식했다.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혜주 씨의 구속이 풀렸다. 혜주 씨는 손목을 감싸며 나를 째려봤다.
“원하시는 거나 빨리 말씀하시죠.”
“아, 뭔가 오해가 있네요. 대화하자는 게 거래하자는 뜻은 아니었는데.”
“네?”
“제가 당신에게서 듣고 싶은 건 말뿐인 약속이 아닙니다. 어차피 이건 꿈이니까요. 그러니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당신은 당신이 무얼 털어놓았는지조차 모를 겁니다.”
“전혀 위로가 안 되는데, 그래서 저랑 무슨 대화를 하고 싶으신 건지 모르겠네요. 설마 소개팅은 아니죠?”
이 와중에 농담이라니, 이 정도면 꾸며낸 성격이 아니라 천성으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이 일을 기획하고 진행한 건 단순히 그렇게 하라는 명령 때문입니까, 아니면 당신 개인의 욕망이 반영된 겁니까?”
내 질문에 강제성은 없었다. 혜주 씨는 침묵할 수 있고, 거짓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혜주 씨는 생각보다 순순하게 답했다.
“둘 다죠. 요즘은 적극행정 시대거든요.”
진심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혜주 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드림 워킹 능력자 앞에서 거짓말은 의미가 없단 걸 깨달은 것이다.
“타인의 심층 의식을 다뤄서 어떻게 하실 작정이셨습니까?”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없어요. 성공 사례를 증명하기 전까진 생각 안 하기로 했거든요. 망상하는 건 좋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건 싫기도 하고요. 그래서 당신을 부른 거였어요. 뭐, 증명하기도 전에 다 들통났지만.”
“그게 전부입니까?”
“솔직히 말해서 타인의 마음을 멋대로 들여다보고, 주무를 수 있다.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타인의 신이 된다는 거잖아요. 그 정도면 동기로 충분하지 않나요?”
도저히 상종 못할 인간이다. 저런 여자한테서 드림 워킹 능력이 쥐어졌으면 어떤 짓을 벌이고 다닐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양산을 위해 수급할 뇌는 어디서 구하실 작정이었습니까?”
“그거 아세요? 대한민국에 실종 신고는 매년 20만 건이 넘어요. 근래엔 25만 건을 넘어가고 있고요. 거기에 수십 건이 추가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잖아요?”
“그게 국가 공무원이 할 소리입니까?”
진심으로 경멸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그런 말은 혜주 씨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혜주 씨는 긴장이 풀어졌는지 다리를 꼬며 편하게 앉았다.
“이미 당신 말고도 자칭 꿈 능력자들을 불렀었어요. 한 20명 정도? 대부분은 사이비였다고 실토했고, 몇몇은 객기를 부리다가 안빈을 통해 입막음 당했고요.”
“저는 마지막이었군요.”
“당신은 안빈의 원본이니까, 굳이 먼저 테스트할 필요는 없었죠. 돈과 시간은 넉넉하니, 기왕 다른 꿈 능력자를 발견할 수 있으면 샘플 겸 테스트로 좋잖아요?”
“그렇다면 저를 초대하는 모든 과정은 설계된 일이었겠군요.”
“맞아요. 이전의 초청자들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멋대로 꿈을 통해 비밀을 엿볼 가능성을 차단하려고 이래저래 판을 짰죠. 하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혜주 씨는 허탈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는 못 이기네요. 안빈의 꿈 통제 능력이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드림 워킹 능력자에겐 통하지 않을 줄이야.”
“만약 제가 진실을 밝히려고 했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했습니까?”
“뭘 어떻게 해요? 미래의 한민철 씨가 시냅스 재조정 기술과 자기 뇌 설계를 넘겨주기 위해선 지금의 한민철 씨는 반드시 살아있어야 해요. 시냅스 재조정 기술이 감옥에서 뚝 떨어지진 않을 테니 구속도 당연히 안 되고요. 그러니 신변에 위협은 줄 수 없겠죠? 기껏해야 비밀 유지 각서를 강제하는 수준이려나요.”
“정말 그뿐입니까?”
“부트스트랩 패러독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시네요. 이해해요. 사실 저도 미래는 믿어도 부트스트랩 패러독스까진 믿지 않아서 이런 일을 벌였던 거니까.”
혜주 씨는 고개를 내젓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하지 못하셨으면 그저 한민철 씨를 해칠 의향은 전혀 없었다. 그쯤으로 이해해주세요.”
“그렇습니까.”
“믿지 않는 눈치네요.”
“아뇨, 믿습니다. 거짓말은 소용없단 걸 깨달으셨으니까요.”
혜주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하세요.”
“솔직히 진실을 알았으면 뭔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도 되지 않아요? 협박한다던가, 큰돈을 요구한다던가, 아니면 아예 적극적으로 이 일에 가담할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든 한민철 씨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은 차고도 넘쳐요. 하지만 지금 보이시는 태도는…….”
혜주 씨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입술만 달싹였다.
“본인의 안전만 확보하면 그만이라는 것 같은데요.”
“저의 안전만 따졌으면 이런 것들을 물어보지도 않았겠죠.”
“좋아요. 국민의 안전까지 포함해서요.”
“그야 제겐 직업윤리가 있으니까요.”
“직업윤리요?”
혜주 씨가 어이없다는 듯 날 쳐다봤다. 불법 진료나 하는 놈이 무슨 윤리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뭐, 드림 워커로서 가지는 책임감 비슷한 겁니다. 제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건 맞지만, 그게 곧 제가 타인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상생하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요. 저는 제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정말 착하신 분이네요. 그런 분이 미래에 왜 변심하셨는지.”
비꼬는 투가 역력했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혜주 씨가 생각해낸 반항과 저항이 고작 저 정도라는 뜻이다. 내가 침묵을 고수하자, 혜주 씨는 혀를 차고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이 꿈은 언제 끝나죠?”
“곧 끝납니다.”
“이 꿈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데자뷰 같은 건 느끼시겠죠.”
“저를 믿으세요?”
“당신의 심층 의식을 믿습니다.”
“여자의 비밀을 엿보는 건 악취미예요.”
실없는 소리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손을 위로 까딱였다. 불이 꺼지고, 다시 켜지면서 혜주 씨는 사라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걸로 모든 심층 의식에 대한 조치를 마쳤다. 남은 건 그게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내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혜주 씨를 깨우며 말했다.
“혜주 씨, 일어나세요. 안 좋은 소식 두 개가 있는데 뭐부터 들려드릴까요?”
-끝
읽어줘서 압도적으로 감사!!!
근데 초고가 문제가 많아서 아마 퇴고할 때 꽤 많이 갈아엎고 고치고 할 듯... 제목도 수정해야 하고.
퇴고본은 갤에 전문으로 올리기엔 분량이 너무 많아서 퇴고본 올린 다른 플랫폼 링크로 대체할 예정...
재밌었다 결국 손님으로 와서 당한건가? 아님 초반은 꿈인가? 미래 주인공 떡밥 궁금해지네
그것도 퇴고본에서 어느정도 회수할 예정임... 읽어줘서 고마우이
@창궁 재밌는거 읽어서 나야 고맙지. 퇴고본 기대되네
결말 장면 자체는 이전편이랑 이어서 봤을 때 "심층 의식에서 고민을 끝냄" → "심층 의식에서 사람들 상대로 하나하나 조작함" → "마지막에 혜주 씨 상대로 대화함(이번 회차 중후반 장면)" → "깨어나고 조작당한 혜주 씨는 꿈 내용 기억 못하고 주인공이랑 건전하게 헤어짐(이번 회차 초반 장면)" 이 순서로 진행된 거긴 함.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가 순서 섞은 게 오해의 소지가 있나보네. AI도 똑같이 헷갈려해서ㅋㅋ
@창궁 그렇구만.. 내가 대충 읽었나봄 ㅎㅎ
@불쌍한지미 ㄴㄴ충분히 헷갈릴 수 있고 내가 좀 더 명확하게 쓰지 않은 것도 있음... 안 그래도 꿈과 꿈을 넘어갈 때 장면 전환이 너무 모호하단 지적도 있어서 퇴고할 때 유념해야 할 듯
@창궁 뭐 수정 좋지.. 기대되는구만 화이팅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