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용과 조화에 안주하라


이 보살은 항상 ‘수용하는 법’을 닦아서 늘 겸손하고 공경한다.92
자신을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으며 모두를 해치지 않는다.
‘나’를 취하지도 않고 ‘남’을 취하지도 않으며 ‘모두’를 취하지 않는다.
‘나’에게 집착하지도 않고 ‘남’에게 집착하지도 않으며 ‘모두’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또한 ‘명예’나 ‘재화’를 탐하지 않으며, 다만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마땅히 중생을 위하여 진리를 설명하여, 일체의 악을 떠나게 하고,
탐욕·분노·어리석음과 교만·감춤·아낌·질시·아첨·속임을 끊게 하고, 늘 ‘인욕과 조화’에 안주하게 할 것이다!”

92 : 유가의 ‘사양지심辭讓之心·공경지심恭敬之心’(양심 중 수용과 조화의 마음)에 해당하니,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상황과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으로, 불가의 ‘인욕바라밀’과 통한다.


2. 인욕바라밀에 안주하라

또한 이 중생들이 하나하나 각자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의 손을 갖고서,

하나하나 손에 각자 백천억 나유타 아승지의 무기를 들고,

보살을 박해하기를 아승지 겁이 경과하도록 쉬지 않더라도,

보살은 이 극심한 고초를 만나 몸의 털이 모두 곤두서고 목숨이 장차 끊어지려고 함에, 이와 같이 생각한다.


“내가 이러한 고통으로 인하여 마음이 움직이고 어지러워진다면,
① 자신의 번뇌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② 자신을 수호하지 못하고, ③ 스스로 밝게 깨닫지 못하고,
④ 스스로 닦고 익히지 못하고, ⑤ 스스로 바르게 결정하지 못하고, ⑥ 스스로 고요하지 못하고,
⑦ 스스로 아끼지 못하고, ⑧ 스스로 집착을 일으키게 되니, 어떻게 능히 남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겠는가?”


3.. 불법가운데 안주하라

그때 보살은 다시 이와 같이 생각한다.
“내가 시작이 없는 세월 동안, 생사에 머물면서 온갖 고뇌를 겪어왔다!”
이와 같이 사유하고 스스로를 거듭 격려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청정하게 하여 환희를 얻고,
스스로를 잘 조복시키고 포섭하여, 스스로 능히 불법 가운데 안주하며,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이 법을 함께 얻게 한다.


4. 진리를 수용하라

다시 사유함에, “이 몸이 텅 비고 고요하니,
‘나’와 ‘나의 것’이 없으며 참된 실체가 없다. 또한 본성이 텅 비어서 둘이 아니니,
즐거움과 고통이 모두 없다. 모든 법이 텅 빈 것(諸法空)을 내가 마땅히 이해하여,
널리 남을 위하여 설명하여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이 견해를 없애도록 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이제 고초를 겪더라도 응당 참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니,
① 자비심으로 중생을 염려하기 때문이며(慈念衆生),
② 넉넉히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며(饒益衆生),
③ 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이며(安樂衆生),
④ 중생을 안타까워하기 때문이며(憐愍衆生),
⑤ 중생을 포섭하고 수용하기 위해서이며(攝受衆生),
⑥ 중생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며(不捨衆生),
⑦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이며,
⑧ 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며,
⑨ 마음을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⑩ 부처님의 도를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제3 무위역행'이라고 한다.


봉황동래, 화엄경, 보살의 길을 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