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 보이는 철조여래좌상은 그 유명한 남원 실상사의 철조여래좌상이다.
몇몇 선학들은 본상의 양식적 특징을 보고 9세기 초중반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이 동의하기도 하며 내 생각으로는 현존하는 철조여래좌상 중 가장 빠른 시기에 만든거 같다.
이는 신체에 비해 큰 불두. 전체적인 복스러운 이미지의 불안의 표현. 전체적인 불신의 표현에서 하체에 비해 상체가 긴데, 이러한 불신의 표현은 8세기 후반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불좌상의 것과 유사하다. 또한, 옷주름의 표현 중 일부 8세기 중반 유행했던 번파식 옷주름이 표현 등 이러한 통일신라 전성기 불교조각의 흔적들은 본상의 양식적 편년을 9세기 전반까지 올릴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점은 이러한 불상의 존명과 제작 배경에 있다.
존명의 경우 크게 세가지 설로 나뉜다.
우선 먼저 사람들은 본상의 존명을 약사여래좌상으로 봤다. 이는 현재 남원 실상사에서 본상이 약사전에 봉안됐다는 점과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시대 철불을 약사불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이 사람들에게 퍼졌다고 생각된다.
두번째로 본상에서 복장물이 발견됐든데, 그중 지금의 것이 아닌 원래 불수가 나왔다. 즉, 현재 약사전에 따로 보관된 수인은 아미타불이 자주 사용하는 구품인을 하고 있어 본상의 존명을 아미타불이라는 것이다.
이후 아미타불로 굳어오던 존명에 대해 오히려 60권 화엄경의 주존인 노사나불로 인식하는 흥미로운 학설이 제기 됐다. 이는 실상사 사적기에 노사나불이 있었다는 흔적이 있다는 점. 구품인을 취하기에는 팔이 어색하다는 점에서 의문이 시작됐다. 이에따라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한 노사나불로 봐야한다는 견해가 제기됐다.
중요한점은 통일신라에서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한 노사나불이 존재했냐는 사실이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먼저 살펴봐야한다.
첫째.
당시 통일신라에서 유행했던 화엄의 도상은 부석사를 중심으로 하는 의상계의 촉지인 아미타불과 80권본 화엄경의 주존인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지권인 여래상이다.
둘째.
시무외인 여원인은 소위 통인. 즉, 모든 부처가 사용할 수 있는 수인이었기에. 명문 자료가 없어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한 노사나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 당나라의 용문석굴 빈양중동의 노사나불은 시무외인 여원인의 통인을 취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동대사 노사나불도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당시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한 노사불은 중국에서 유행했던 외래적인 도상임을 알 수 있다.
특히나 강릉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상은 명문에 노사나라고 명기한점과 남아있는 부분이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리하자면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한 노사나는 중국에서 유행했던 도상이며 일본에 전해져 국제적인 유행을 상징하는 도상이다. 이는 통일신라에서 자체적으로 창안한 여래형 비로자나와 다른 계통의 불상이다. 따라서 본상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한 노사나라는 사실이 최근 연구성과다.
마지막으로 제작 목적에서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연구된게 없어 추후 연구가 필요한 흥미로운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남원 실상사 꼭가봐라 그곳 보살님들 스님들 모두 좋으신 분이더라.
암특, 자기전에 그냥 생각나는 거 막쓴거라 두서없이 써서 ㅈㅅㅈㅅㅈㅅ
이해안돼거나 궁금한거 있음 댓글로 달아주셈.
오 뭐냐. ㅋㅋ
https://klyp.fyi/jzrvu
나 깜짝놀랐네
불상관련해서 소설쓰세요?
예전에 썼습니당
아하!
http://cm20516cm.btlyi.com/?/etc/evt_calendar_2025.php
여기 가면 달력 준다 AV배우 나옴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