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공적영지’를 깨달아서 ‘참나의 고요함’과 ‘참나의 자명함’만 투철히 알고 나면,
① 작용이 본체를 떠날 수 없기에 선정에 들기만 하면 항상 지혜로워지며
② 본체가 작용을 떠날 수 없기에 지혜로워지기만 하면 항상 선정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나의 고요함·자명함’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렇지 못합니다.
① ‘선정’을 닦으면 고요해지기만 하지 사물의 실상을 투철히 꿰뚫어 아는 지혜가 늘지 않습니다.
② 또한 ‘지혜’를 닦으면 이것저것 따지고 분석하는 분별심이 치성해져서 고요함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것은 ‘에고의 선정·지혜’를 닦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요하되 신령스러운 참나 자리를 투철히 안 사람은,
① ‘선정’을 닦아 마음을 고요히 하는 중에 ‘참나의 자명함’이 드러나
사물의 실상을 투철히 꿰뚫어 아는 지혜가 늘고
② ‘지혜’를 닦는 중에 사물의 실상을 자명하게 이해하게 되면 ‘참나의 고요함’이 드러나 고요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지혜를 고르게 챙김’이라는 것이죠.
우리의 참나 자리는 본래 고요하고 본래 또랑또랑하니,
참나 자리만 투철히 알면 ‘정혜쌍수定慧雙修’(선정·지혜를 함께 닦음)가 애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1주 보살의 경지입니다.
‘참나의 고요함’이 ‘참나의 선정’(자성정自性定)이며,
‘참나의 자명함’이 ‘참나의 지혜’(자성혜自性慧)라고 하신 육조 스님의 말씀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봉황동래, 수심결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buddhism&no=109369&page=1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cripture&no=183&page=1
경허,
회광반조와 연구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cripture&no=196&page=1
몰입,
두 가지 몰입과 슈퍼의식(참나)의 각성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cripture&no=337&page=1
대승보살의
길, 1주의 경지 - 정혜쌍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