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와 같이 사리불아, 시대가 혼탁하고 어지러울 때에는 중생의 업장도 무거워서,
아끼고 탐내고 질시하여 온갖 악한 바탕(不善根)을 이루니,
모든 부처님께서 방편력으로 ‘일불승一佛乘’(오직 한 길인 부처에 이르는 길)을 ‘3승’(성문승聲門乘·독각승獨覺乘·보살승)으로 나누어서 가르치는 것이다.
如是舍利弗 劫濁亂時衆生垢重 慳貪嫉妒 成就諸不善根故 諸佛以方便力 於一佛乘分別說三
2. 사리불아, 만약 나의 제자가 ‘아라한’이나 ‘벽지불’이라고 자처하면서,
모든 부처님께서 보살을 교화하신 일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면,
이는 부처의 제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아라한도 아니고 벽지불도 아니다.
舍利弗 若我弟子 自謂阿羅漢 辟支佛者 不聞不知 諸佛如來但敎化菩薩事 此非佛弟子 非阿羅漢 非辟支佛
3. 또한 사리불아, 여러 비구·비구니가 스스로 이르길 “나는 아라한을 얻었다!”라고 하고,
“이것이 최후의 몸이고 구경의 열반이다!”라고 하면서, 더 이상 최고의 깨달음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무리는 깨닫지 못하고도 깨달았다는 교만을 부리는 자들이다.
왜 그러한가? 만약 어떤 비구가 진실로 아라한을 얻었다면, 이 법을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又舍利弗 是諸比丘比丘尼 自謂已得阿羅漢 是最後身究竟涅槃 便不復志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 當知此輩皆是增上慢人 所以者何 若有比丘實得阿羅漢 若不信此法 無有是處
4. 사리불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내가 본래 서원을 세웠으니,
일체 중생이 나와 똑같이 깨닫게 하고자 하였다. 내가 예로부터 서원했던 것을 이제야 만족하게 되었으니,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여 모두 ‘부처의 길’(佛道, 一佛乘)에 들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중생을 만날 때마다 모두 ‘부처의 길’(보살의 길)로 가르친다면,
무지한 자는 정신이 혼란스러워서 어지러울 것이며, 미혹하여 가르침을 받지 못할 것이다.
舍利弗當知 我本立誓願 欲令一切衆 如我等無異 如我昔所願 今者已滿足 化一切衆生 皆令入佛道 若我遇衆生 盡敎以佛道 無智者錯亂 迷惑不受敎
5. 그러므로 사리불아, 내가 방편을 베풀어서 모든 고통을 없애는 길을 가르치고 ‘열반’을 보여 주었다.
내가 비록 열반이라고 했으나 진정한 열반은 아니었다. 사실 일체의 법法은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열반이었다(본래열반).
불자가 이러한 길(一佛乘)을 걸으면, 다음 세상에는 부처가 될 것이다.
是故舍利弗 我爲設方便 說諸盡苦道 示之以涅槃 我雖說涅槃 是亦非眞滅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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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치마라 결국엔 고통의 소멸을 해야되는데결국엔 그렇게 함으로써 사성제를 통해 고통을 소멸시키고 열반이라는 행복에 다다르기 위한 것인데, 그게 불교의 논리이다.하지만 여러분들은 어떤가.반출생 하나에만 매몰되어 고통을 증폭시키고 있지 않은가?gall.dcins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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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ㅅ이 욕하는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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