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선’(至善)이란 저 멀리 있는 것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최고의 선(至善)이다.
그래서 군자는 항상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니, 그것이 곧 최고의 선(至善)에 머무는 방법이다.
이러한 노력에는 끝이 있을 수 없다.
목표를 향하여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머무름’(止)이란 반드시 여기에 이르러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극한 선’(至善)이란 사물의 ‘원리’(보편법칙)의 마땅히 그러해야 할 극치이다.
이것은 ‘밝은 덕을 밝히는 것’(明明德)과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이 모두 마땅히 지극한 선(善)의 경지에 이르러 옮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생각건대 반드시 저 ‘천리’(天理)의 극치를 다하여 터럭만큼의 ‘인욕’(人欲)의 사사로움도 없게 하는 것이다.”
(止者 必至於是而不遷之意 至善 則事理當然之極也 言明明德 新民 皆當止於至善之地而不遷 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 而無一毫人欲之私也, 주희, 『대학장구』)
대학, 인간의 길을 열다 중에서
몰입,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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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항상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니, 그것이 곧 최고의 선(至善)에 머무는 방법이다.
이러한 노력에는 끝이 있을 수 없다.....
공자도 성인을 자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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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아, 여러 비구·비구니가 스스로 이르길 “나는 아라한을 얻었다!”라고 하고, “이것이 최후의 몸이고 구경의 열반이다!”라고 하면서, 더 이상 최고의 깨달음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무리는 깨닫지 못하고도 깨달았다는 교만을 부리는 자들이다. 왜 그러한가? 만약 어떤 비구가 진실로 아라한을 얻었다면, 이 법을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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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방편품」에 나타난 대승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