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자신의 해탈만을 목적으로 하는 작은 종교가 아닙니다.

나의 깨달음은 물론 일체 중생의 깨달음을 목표로 윤회계가 다하도록 정진하자는 종교입니다.

이것이 '부처의 길'입니다.


세상사의 이치에 나에게 없는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따라서 일체 중생을 구제하여 부처의 길에 이르고자 서원을 세운 이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본래 모습에 대해 투철히 각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돈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참나를 각성한 수행자는, 자신이 세세생생 살아오면서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지은 묵은 업장을 남김없이 정화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도 완전한 해탈을 이룰 수 있으며,

일체 중생도 해탈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에 번뇌, 망상에 허덕이는 중생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때 이 현상계는 완전히 정화될 수 있습니다.


현상계는 우리 마음의 표현일 뿐입니다.

내 마음이 곧 우주라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내 일신이 편안하다고 어찌 중생의 아픔을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중생의 아픔은 곧 우리 자신의 아픔이니, 모든 중생을 행복의 나라로 인도한 뒤에야 현상계는 완전하게

정화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스스로도 완전한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절대계를 깨달았다고 해서 현상계가 그냥 정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상계의 정화는 6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끝없는 배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돈오'(참나의 각성)와 '점수'(업장의 정화, 지혜와 자비의 배양)의 길만이 

우리를 부처의 길로 인도해줄 수 있습니다.


돈오가 없는 점수나 점수가 없는 돈오는 모두 반쪽자리 공부로서, 우리를 부처의 경지까지 인도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봉황동래, 윤홍식의 수심결 강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