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중종中宗이 군자인 조광조趙光祖 선생을 등용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회를 참으로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 그런데 내 신하 중에 누가 군자이고 누가 소인인지를 모르겠다.”
그러자 조광조 선생이 “양심을 닦으십시오.
양심을 닦으면 군자가 보일 것이고, 한 명이라도 군자를 등용하면 그 사람이 또 다른 군자를 알아볼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회에 군자가 넘치게 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진짜 군자가 한 명만 있어도, 군자 세상이 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 군자가 진짜 군자라면, 군자가 널리 퍼지게 되어 있어요.
“왜 그렇게 살아? 이렇게 살면 훨씬 편한데.” 하는 모습을 군자가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양심대로 살면 정말로 편하거든요.
욕심과 꼼수로 살려고 하니까 소시오패스가 부러운 겁니다.
‘욕심’의 관점에서 보면, 소시오패스들이 욕심을 가장 잘 성취하지요.
“왜 난 저렇게 하지 못할까?” 벌써 이런 식으로 꿀리고 들어갑니다.
하지만 ‘양심’의 관점에서 보면, 소시오패스들은 카드 돌려막기를 하며 빚잔치 하는 사람들로 보여요.
“저 빚을 다 갚아야 할 텐데….” “저러다 한 방에 훅 가지.” 하고 걱정할 뿐입니다.
실제로 사회에서 그런 사람들이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문제는 한 사람이 무너져도 그 뒤에 대기자들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회의 타락이 끝이 없는 것입니다. 소시오패스들이 너무 많아요.
이런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양심지킴이들 역시 끝없이 배출되어야 합니다.
우리 한 명 한 명이 비상한 각오를 세우고, 소시오패스들과 싸워야 합니다.
양심세력이 욕심세력을 제압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봉황동래, 양심정치 중에서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