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의 정치권이나 학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지금은 새로운 혁명의 시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국 교수님은 “명예혁명의 시기다.”라고 하셨고,
김용옥 선생님은 “새로운 의식혁명이 필요하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최장집 교수님은 “새로운 정당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하고 말씀하셨지요.
모두가 이렇게 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우리가 도대체 어떤 혁명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그 혁명에 대한 명확한 비전은 어디에서도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식으로 설명해 보면,
한 문명이 도전을 받았는데 정확히 어떻게 응전할 것인지에 대한 그림이 머릿속에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까지는 자명해졌지만,
새로운 방식으로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자명하지가 않은 것이죠.
지금이라도 그 해법을 알아내려면, 국민의 민심 안에서 울리는 ‘양심의 소리’를 열심히 들으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보 야권에 계신 분들도 자기들이 그려 놓은 그림만 계속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 그것도 몇 십 년 전에 그려 놓은 그림을 계속 고집하고 있습니다.
국민들 안에 살아있는 ‘양심의 소리’는 듣지 않고서,
자기들의 양심의 소리 중에서도 아주 부분적인 것만 듣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국민들이 아직 미개해서 못 따라오는 것이지,
우리만 따라오면 나라는 바뀐다.”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다시 토인비 얘기로 가 볼까요? 그러면 문명의 도전에 누가 해법을 제시하는지 아십니까?
‘소수’가 해법을 제시해요. 어차피 아이디어는 소수로부터 나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부분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와요.
그런데 여러 분야의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으니까, 소수 집단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 소수자들을 토인비가 ‘창조적 소수자’라고 부른 것입니다.
즉, 실제로 그 도전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 소수자를 ‘창조적 소수자’라고 합니다.
이게 동양에서 말하는 ‘황극’(국민의 모범이 되는 최고의 양심적인 경영자)에 해당하는 존재입니다.
지금 누구나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도 처음에 무엇을 모방하면서 대중화되었나요?
‘애플사社의 아이폰’을 보고 따라갔었지요? 그럼 애플이 그 영역에서는 ‘황극’인 겁니다.
그 사람 하나의 움직임을 다른 모든 동종 업계에서 지켜보면서,
“저 사람을 따라가면 산다.” 하는, 그런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사람들을 ‘창조적 소수자’라고 부르는 것이죠.
창조적 소수자가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나온다면 우리 국민들이 답을 얻는 것이고,
나오지 않는다면 답을 얻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창조적 소수자의 반대말은 ‘지배적 소수자’예요.
지배적 소수자는 아이디어는 없으면서 지배만 하려고 합니다.
오직, 현재 내가 지배하고 있는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기만을 바라는 것이죠.
그러니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권이 ‘지배적 소수자’인지,
아니면 ‘창조적 소수자’인지를 보면 우리의 미래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배적 소수자들이 “우리가 창조적 소수자다!” 하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 둘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자만의 특징으로서 ‘미메시스mimesis’라는 ‘복사’ 현상을 언급했습니다.
창조적 소수자가 등장하면 그 문명 전체의 구석구석까지,
그 창조적 소수자가 내놓은 해법을 복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야권에서 주장해 온 삶의 모델들을 배우고 복사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진보 진영이 제시하는 삶의 원칙들을 복사하고 계신가요?
애플사의 제품을 줄을 서서라도 사고 싶어 하듯이, 그렇게 배우고 계시냐는 것입니다.
“저것만 쓰면 정말 잘살 수 있겠네.” “저게 진짜 해법이네.” 하는 자각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옆에서 말리고 막아도 그 제품을 사용합니다.
그것만이 답이기 때문에 그 문화를 ‘복사’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런 창조적인 답을 제시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이기 때문에,
창조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 새 시대를 주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설혹 지금 권력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창조적 해법이 없는 자들은 그냥 구시대의 끝물이지, 새 시대의 선봉이 아닌 것입니다.
봉황동래, 양심정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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