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어떤 상을 세워놓고 접근하면 안 됩니다.

"일반 중생들은 그래도 뭔가 의지할 데가 필요하지 않나요?"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작은 허용이 지금의 우리 세상을 이런 수준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일반 중생은 언제까지 환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제 눈엔 모두가 뛰어다닐 수 있어 보이는데,

괜히 의사라는 사람들이 와서 "일반 중생은 지금 걸을 수 없어요.

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일단 기어다니는 것부터 가르칩시다." 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간에 사다리를 자꾸 만들면서 도와주는 척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중생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말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이 났다고 하면 모두가 뛰어나올 것입니다.

아무리 다리가 아픈 사람도 진심으로 원한다면 잠깐이라도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간절하게 보살도를 하도록 한 번 내몰아 보지도 않고, 왜 처음부터 중생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일까요?

왜 견성이 안 된다고 하고, 견성은 어차피 안 될테니 염불을 해서 극락에 가자고 할까요?

이것은 중생들은 답이 없으니 그냥 포기하자는 말과 같습니다.


"중생은 6바라밀을 할 수 없다!" "우리는 견성을 못하니까 방편으로 쉬운 기복신앙이라도 하겠다!"

이런 사고 때문에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을 수 있습니다!" 하면 다 나을 분들인데, 고정관념이 안 된다고 하니까 실제로 안 되는 것이죠.


범죄자에게 오래 붙잡혀 있던 사람이 왜 도망쳐 나오지 못할까요?

범죄자에게 수없이 "넌, 안 돼." 하고 세뇌를 당하다 보면, 탈출할 기회가 와도 붙잡힐 거라는 생각 때문에

탈출을 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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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번 그렇게 세뇌를 당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아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모든 것을 걸고 장담하건데, 우리 모두가 1지 보살, 2지 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해도.

"다른 스님들이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고 견성이 어렵다고 했는데, 혼자서 된다고 하는 걸 보니 사이비다."

하는 답을 들어 왔습니다.


그런 말들은 모두 신경 쓸 말이 아닌데, 왜 신경을 쓰는지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지만 그렇대고 해서 좌시할 수는 없기 떄문에 제가 이런 얘기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카르마 경영의 6가지 원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