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맞는 한 수를 두었을 때 상황은 다시 변하니,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1년이고 10년이고 살아 보지 않고서,
'카르마 법칙'을 논하고 '6바라밀'을 논한다는 것은 좀 찜찜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어차피 살아야 하는 인생, 한번 이렇게 살아보시라는 것ㅇ립니다.
보살이나 군자는 별다른 존재가 아니라 이렇게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인욕바라밀'로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서, '선정바라밀'로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반야바라밀'을 써서 냉정하게 판단하고, '보시바라밀'과 '지계바라밀'을 써서 남과 나누면서도
지킬 것은 지키며, '정진바라밀'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런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텐데,
하늘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요? 우리가 늘 행복하게 사기만 바랐다면
하늘이 애초에 고통을 주지 않았겠죠? 단순히 '에고의 행복'이 하늘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통을 듬뿍 주시는 분이 늘 행복하라고 할 때, 그 행복은 이미 '에고의 행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늘은 우리가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6바라밀로 행복하게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닦은 결과물이 여러분의 '영성'입니다.
우주 만물은 모두 하나의 춘하추동, 생장수장을 거치면서 '씨알'을 남깁니다.
이 씨알이 한 해 농사의 결과물인 것이죠.
우리가 한 생을 거쳐 거둔 결실인 '영성'도 우리 생의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이 영성을 가지고 또 다음 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해 봄에 다시 태어나서 그 봄에 맞추어 또 하나씩 배워 가며 자라고,
또 그 생의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마지막에는 평생에 걸쳐 닦은 그 '영성'을 가지고 다음 생을 준비하겠지요.
보살이란 이렇게 수많은 생을 거쳐 '영성'을 닦고 계발하는 분들입니다.
이런 장구한 닦음의 길을 가려는 분이, 역경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나름의 ㄷ바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사정이 이러니, 아무리 글과 강의를 본다고 해도 역경을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하고 보살이 되는 법은 없습니다.
6바라밀이 우주의 대원칙인 줄 모르고서는 절대로 고통을 제대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현상계에서 고통을 겪는 것은 더도 덜도 아니고 6바라밀을 못해서 그렇습니다.
어떤 종류의 고통이건, 6바라밀대로만 경영하면 극복하지 못할 고통이 없습니다.
고통을 6바라밀로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살이 되는 버이 없고,
6바라밀을 못하는 사람이 보살이 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결론을 내려 말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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