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 말하는 ‘덕德’이 그 바라밀과 정확히 통하는 개념입니다.
‘도’가 밖으로 표현되면 그것을 ‘덕’이라고 하니까요.
우리는 매 순간 절대계의 ‘도’를 현상계에서 ‘덕’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도’가 ‘덕’으로 표현되지 못하면, ‘도’도 ‘덕’도 무의미해집니다.
밖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도’가 ‘길’(道)로서의 역할을 못한 게 되니까요.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유교의 경전인 『중용』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극한 ‘덕德’이 아니면 지극한 ‘도道’가 모이지 않는다!
苟不至德 至道不凝焉 (『중용』)
‘6바라밀’로 인도하는 ‘내면의 길’(근본종자)이 우리 안에 아무리 선명하게 존재한다 해도,
그것이 ‘덕’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 길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덕으로 표현될 때 '도'도 비로소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6바라밀을 구현할 때,
우리 안의 ‘진리’(근본종자)도 빛나게 되고 보다 강해집니다.
우리가 바라밀을 실천하지 않으면,
진리는 본래 강할지라도 현상계 안에서는 그 힘이 약해집니다.
카르마 경영의 6가지 원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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