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시작되기를 '없음'에서 했고,

시작된 '하나'가 '셋'으로 나누넝지나, '없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


-일시무 시일, 석삼극 무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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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물의 씨알이 되는 '하나'(태극)는 '텅 빔' (무극)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하나'와 '텅빔'이 본래 둘인 것은 아니다. 본래 한 자리이나,

그 역할에 따라 2가지로 불리게 된 것이다.


'만물'의 뿌리가 되는 측면에서 보면 '텅 빔'은 '하나'라고 불리며,

만물을 낳되 만물에 물들지 않는 '하나'의 측면은 '텅 빔'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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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빔'에서 '하나'가 나왔다는 것은,

텅 빔의 허공이 없이는 만물의 뿌리인 태극의 '하나'가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존재 자체'가 없이는 '존재의 작용'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태극과 황극이 작용하고 불어나도 무극은 조금도 손상받지 않는다.

무극은 존재, 생명 그 자체이다.

태극과 황극은 존재의 작용, 생명의 나타냄일 뿐이다. 본래 둘이 아니다.


무극이 '존재의 바다'라면 태극은 '바다의 미묘한 움직임'이며

황극은 '바다의 파도'이다. 바다와 움직임과 파도는 본래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스스로 완벽한 존재인 '텅 빔'과 그것의 움직임인 '하나'는 본래 하나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완벽한 존재인 이 '텅 빔' 안에 존재하며,

'텅 빔'은 모든 만물의 존재 근거가 된다.

'텅 빔'은 언제나 '하나'(한 생명)로 작용하여 '만물'을 창조해낸다.


'창조'는 '텅 빔'의 본성이라 창조가 멈추는 법은 없다.

오직 낳고 또 낳는 것이 하느님의 본성이다.

'텅 빔' (시공을 초월한 있음 그 자체, 0=>1의 뿌리, 1의 텅 빈 모습) 은

'한 생명' (텅 빔의 신령한 작용, 1=> 현상계의 뿌리, 0의 작용하는 모습) 이며,

이 '한 생명'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시공간 안에 있음)의 공통된 뿌리(태극)가 된다.

시간과 공간 안에 표현된 모든 생명은 이 한 생명의 다양한 변주에 불과하다.


이 우주는 그야말로 '생명의 향연'일 뿐이다. 일체의 개체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나

'한 생명'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으니, 그것이 바로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생명인 한에 있어서 소멸하는 법이 없다.

한 개체의 탄생과 죽음은 존재할지라도 생명 그 자체는 소멸하는 법이 없으며,

한 생명이 소멸하지 않는 한 시공간은 늘 다양한 생명들로 약동할 것이다.

그래서 '텅 빔' 즉 '한 생명'은 늘 '하나'인 '생명'의 적극적 표현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 안에서 개체적 생명의 탄생과 소멸이 자리하는 것이다.


결국 탄생과 소멸도 '생의 표현'일 뿐이다.

시공을 초월한 자리에 존재하는 근본 생명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

이 '텅 빔'은 생명 그 자체, '있음' 그 자체이며 '하나'는 '내가 있음' 즉 시공간의 뿌리이자 생명 현상의 뿌리이다.

그리고 이 '하나'가 자라서 '다섯'과 '일곱'이 되면 '황극'이 이루어져 '나는 생각함, 나는 감정을 지님.

나는 오감을 지님'의 시공간 내의 생명 현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있음'은 언제나 '내가 있음'으로 집중되며, '내가 있음'은 언제나 '생각 감정 오감'을 표현하게 된다.

이것이 0에서 1이 나오고, 1은 7로 불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 감정 오감은 모두 '내가 있음'에 근거하며,

일체 수가 1에서 근거하듯이, '내가 있음'은 오직 '있음'에 근거한다.

1은 0에서 나온다. 그래서 '텅 빔'은 모든 것의 근본인 것이다.


봉황동래, 윤홍식의 용호비결 강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