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배를 타고 몰더라도 파도에 순응하여 배를 몰면
빈 배와 같아지며, 울고 웃더라도 '에고의 뜻' 대로 하지 않고
'참나의 뜻'대로 울고 웃으면 '무념'인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 자신이 처한 매 상황마다 '에고의 뜻'이 재잘대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서,
어떤 인연에 처하더라도 자유자재하여 걸림이 없으면, 그는 통달한 사람이에요.
우리의 삶이 힘든 이유는 나, 나의 것에 집착하는 '에고'에 의해
우리 삶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입니다.
'빈 배'가 되지 못하고, '무념'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죠.
에고의 잡음에 좌우되지 않는 '참나' 그대로의 삶을 사는 사람! 이런 경지가 바로 선불교에서
말하는 '확철대오'를 이룬 '일을 마친 도인'의 경지입니다.
'참나안주'를 증득한 1주 보살의 경지인 것입니다.
붕황동래 윤홍식의 수심결 강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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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결
참나, 에고의 선정과 지혜
고요하되 신령스러운 참나 자리를 투철히 안 사람은, ① ‘선정’을 닦아 마음을 고요히 하는 중에 ‘참나의 자명함’이 드러나 사물의 실상을 투철히 꿰뚫어 아는 지혜가 늘고 ② ‘지혜’를 닦는 중에 사물의 실상을 자명하게 이해하게 되면 ‘참나의 고요함’이 드러나 고요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지혜를 고르게 챙김’이라는 것이죠. 우리의 참나 자리는 본래 고요하고 본래 또랑또랑하니, 참나 자리만 투철히 알면 ‘정혜쌍수定慧雙修’(선정·지혜를 함께 닦음)가 애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1주 보살의 경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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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학,
단학의 요결
물론 원신갱생 이후에도 갱생된 원신을 더욱 갈고 닦 아 무극無極의 경지를 회복하는 끝없는 수련이 남아있습니다.
근데 계속 닦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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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도
성인을 자처하지 않았다.